자식학대, 가정폭력, 대물림, 도망 가정 집안문제








가정불화가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







[이은석 사건]

2000년친부모를 토막살해한 범죄자.1994년에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인박한상과 세트로 묶어서 패륜아의 대명사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아래 설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박한상과는 그 배경이 전혀 다르다.

해군사관학교장교출신인 아버지와 명문 여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어머니,
즉 전형적인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모범적인 학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부모를 비롯한 이은석의 가정은 그리 화목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이자 원리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도 군대식 교육을 시켰으며
자신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면서도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완벽주의자이자 히스테릭 증상이 심해 특히 아들들에게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엄격한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
[9]부부 사이도 매우 좋지 않아 각방을 쓰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이은석의 형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 부모가 한 방을 쓰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부부는 원래 각방을 쓰는 것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부부싸움이라도 했다 하면
한 달 이상 대화 한마디도 없는 일이 예사였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부부싸움의 여파가 단 며칠만 간다고 해도 집안의 그 쌩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운데
한 달 이상이라면 어땠을지 상상 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부모 양쪽 모두 아들, 특히 이은석만 보면 항상 불만을 표시했고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자주 퍼부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다.
[10]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카락을 잡아뜯는
식의폭력이었다. 이씨의 부모는 늘 남들과 비교했고 성적,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광적인 히스테리와
폭력을 행사했다. 뭔가 못하면 당연히 혼나고 잘해도 왜 더 잘하지 못하냐며 혼이 났다.
이은석이 어릴 때는 만약을 대비해 야구 방망이까지 숨겨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부모, 특히 어머니는 그를 매번 심하게 질책하고 모욕을 주기만 했다.
그에 딸려오는 폭력은 덤. 그리고 이는 이은석이 성인이 된 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나 웃긴 것은 어떤 일이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고 혼을 낸 후에는
항상회개 기도를 강요했다는 것이다(...)밥을 늦게 먹은 죄를 용서해 주소서

이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씨는 내성적으로 변해가고 대인 기피증이 생기게 되었으며
학창 시절에는 이러한 성격에 작은 키 때문에 놀림까지 받으며 속칭왕따가 되었고
그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친구까지 있었다. 어찌나 그 친구를 증오했는지
사건 후에도 그 친구를 언젠가는 죽여버릴 거라며 이름을 되뇌일 정도였다.

군입대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흔히 알려진기수열외처럼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후임병들에게도 무시당했고 심지어 그의 한달 후임이 그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 광경을 본 선임들이 이은석 쪽을 혼낼 정도였다.

하지만 부모는 이은석의 고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군인이라는 직업상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오면서 아들을 본체만체했고 그런 아버지를
기피하면 "사내놈이 왜 그러냐", "굼벵이 같은 자식" 이라고 쏘아붙였다.
[11] 이씨가 군대에 가있는 3년동안 부모는면회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으며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도 인격적 모욕과 멸시는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이은석은 부모로부터 "네가 뭘 잘 하냐? 공부나 해라, 공부도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한다"
"너 같은 놈은 사회생활 못한다", "너 같은 자식 필요없다" 는 식의 상처 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경찰조사를 받다 흐느끼는 이은석


이은석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이 형은 이은석과는 달리 꽤 과격하고 불같은 성격이라
부모의 막장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사춘기에는 이은석과 달리 계속 반항하면서
부모와 충돌하곤 했다. 부모는 이러한 형을 골칫거리로 여겼지만 이은석에 비해
형이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데미지는 훨씬 적은 셈이다.
반대로 이은석은 모든 것을 그저 꾹 참고 넘기기만 했기 때문에
형에 비해 부모와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는 편이었지만 그만큼 속으로 쌓인 것이
형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결국 형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는 이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형에게 화해를 청하며 독신자 아파트를 마련해주고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12] 그런데 이 아파트를 마련할 돈을
이은석의 명의로 대출받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마음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태인데 형의 아파트 이사를 도와주고 온 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은석은 어머니가 또 혼을 내자 결국 참았던 것들이 모두 폭발하면서
[13] 어머니와 무려 4시간에 걸친 말싸움을 했다. 이 때가 살해를 저지르기 열흘 전이며
이은석에게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한제대로 된반항이었다.말싸움을 하면서 그동안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냈지만 어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냔 말이냐?" 라며 오히려 이은석을 못된 자식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사건 일주일 전 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모두 전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야단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그 동안의 분노를 울면서 모두 쏟아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그런 건 그때그때 이야기해야지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
사내놈이 한심하게도 이 모양이니"이라는 멸시와 모욕 뿐이었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단절을 느낀 이후에는 6일동안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14] 식사 등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놀라울 따름...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부모가
그런 이은석을 보고도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죽어야지만 정신을 차릴 모양이로군
6일간 방에서 혼자 지내면서 그는 부모와 잘 지내기는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동안 쌓인 분노가 폭발하면서 살인을 결심했다.

사건 당일 새벽 양주를 연거푸 마신 후 어머니부터 망치로 때려 살해하고
약 4시간 후 아버지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어머니를 먼저 살해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막상 어머니를 죽인 후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는 죽이지 못하고
4시간 동안이나 방 앞을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했지만
날이 밝아오자 아버지가 잠을 깨서 이 광경을 보고혼낼 것을걱정한 나머지 결국 아버지도 살해한다.
둘을 한번에 죽이지 않고 4시간의 시간차를 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그리고 무려 이틀에 걸쳐 시신을 토막내 여러 곳에 유기하고 청소 및 뒷처리를 했다.

이씨는 사건 직후 경찰서 진술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
라며 울먹였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이은석의 형이 했던 말인데
부모를 죽인 동생을 원망하기는 커녕"그럴 수도 있다. 나는 동생을 이해한다"는 말을 하면서
공범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기도 했다. 결국 공범은 아닌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부모를 죽인 동생을 두둔하고 나선 것을 보면 같은 집에 살아오면서
동생이 당해오던 폭력을 보며 자신도 느낀 게 많았던 모양이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는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책이다.

부모를 죽인 행동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기는 하지만 그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배경을 살펴보면
매우 씁쓸한 사건이라 하겠다. 사실 이런어이는근성,정신력을 강조했다.
천조국한테 깨진어느 막장 국가나어느 막장 군대의 영향이대한민국에 아직 잔존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모들의 집안 환경을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되는데
우선 어머니의 경우 자신의 성깔을 아득히 능가하는 친정 어머니(즉, 이은석의 외할머니)로부터
더 심한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아버지는 알고 보면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이은석과 유사하며 어린 시절 형(이은석의 큰아버지)만 편애하는 아버지(이은석의 할아버지) 밑에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을 증오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를 강요한 이유도 바로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었다. 즉, 이은석 사건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룸으로써
생긴 비극이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정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며
아동학대의 되물림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9]고인드립성이 강하지만 당시에 보도되었던 사실에 기초해서 적자면 죽은 이 아줌마가
군인 장교와 결혼한 이유가어떤 29만원 찌질이의부인처럼영부인이 되어보겠다는 게 목적이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러나 본의아니게 남편이 일찍 전역하는 바람에 남편에게는 기대를 끊어버렸고 그게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다.
남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대신 아들의 출세에 더욱 매달렸다고 한다.
죽은 사람이지만 군사 독재를 오래 겪었던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으로서는 이 부부가 출세 못한 게 천만다행이다.
솔직히 29만원이나 그 마누라도 자기 자식은 저렇게 홀대 안했으니 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출세했으면
찌질이 뺨치는 악랄한높으신 분들이 되었을 듯

[10]이 젓가락에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유리창에 금이 갔다고 한다.
당시 이은석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11]물론 집이 부대에서 지나치게 멀다든지 형편이 어려워 365일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면회 갈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등 특별한 사정 때문에 아들의 부대에 면회를 가지 못하는 부모들은 많이 있다.
이런 경우 사정상 어쩔 수 없어 전화로 목소리를 듣거나 휴가 나온 아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위에 서술했듯이 이 집 부모는 형편이 어려운 집도 아니고 직업상 바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은석은 이 일로도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12]형의 아파트가 어땠는지 어머니한테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어물어물댔다는 이유라고 알려졌다.

[13]반항 자체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그저 조용한 반항일 뿐이었고 이 정도로 적극적인 반항을 한 것은 처음이다.

[14]부모가 잠깐 외출한다든지 둘 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 해결했으며 굶는 일도 예사였다.
어떤 경우에도 부모와는 전혀 마주치지 않았다.





'이 군 제대 후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 놓은 기록 중 아동학대 사실만을 발췌한 것'



1. 밥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 던진 것, (유리창 금감)


2. 무슨 일인지 형과 같이 팬티만으로 베란다에 손 들고서 있었음


3. 다리에 피멍이 들도록 맞은 것 (초 3 쯤)


4. 전화 메신저 역할 미숙에 따른 즉흥 구타, 따귀, 손바닥 (초 후반, 중고전반)


5. 새에 대한 논쟁끝에 물건 집어던지고 주워오라며, 컵을 깨고 형을 쟁반으로 찍은 일(중2)


6. 키가 작아서 사회생활 힘들 것이라는 모욕 (고3) 등이다.





이은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아직도 복역중이다.







[표창원의 사건 추적] 자녀 학대가 부른 끔찍한 패륜 범죄
부모를 망치로 때려 살해 후 사체 토막 내 유기 2000년 5월 과천 토막 살인 사건

표창원│경찰대 교수 ㅣ | 승인 2012.10.16(화) 11:50:08




"어릴 적부터 멸시 당해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살해했다"자백 중2때 일기장엔 "나는 사탄의 종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잘못 태어난 쓰레기인가. 어머니의 말대로 싹수가 노란 구받데기인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고 씌어 있기도


훼손한 시신 유기한 장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

공원에서 사람의 발목이 발견돼

지난 5월 24일 오전 7시께 경기 과천 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따르릉!" 당직 근무를 하고 있던 강력 1반의 장금규 형사가 전화를 받았다.관내 별양 파출소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관내 중앙공원에서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봉투 속에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발목을 발견했습니다." "예. 알았습니다.곧 현장으로 출동하겠습니다." "반장님, 중앙공원 쓰레기통에서 사람 발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이강극 반장은 상부에 보고하고 즉시 현장에 출동했다.현장은 과천 중앙공원 내, 소각할 쓰레기봉투를 모아두는 곳이다.이렇게 모아 둔 쓰레기는 과천 쓰레기 소각장 차량이 매일 아침 실어간다.현장에는 100리터 짜리 쓰레기 봉투 13개가 한군데 모아져 있었다.

 

현장을 확인한 결과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목이 비닐과 종이로 겹겹이 포장된채 쓰레기봉투 속에 들어있었다.포장을 뜨고 안의 내용물을 끄집어냈다.사람의 발목을 자른 시신의 일부분이 틀림없었다.경찰은 13개의 쓰레기봍투 속의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했다.그 결과 여러 개의 쓰레기봉투 속에서 절단된 사체가 여러 점 발견됐다.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오른쪽 발, 팔뚝 좌측 발,좌측 손,좌측 대퇴부 등 5점, 여자 것으로 보이는 오른쪽 발 ,몸통(가슴부위), 대퇴부(당시 좌우 모름) 등 3점, 모두 8점의 절단된 사체가 쓰레기봉투 속에서 발견됐다.다행히도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좌측 팔이 발견되어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는데 결정적 단서가 됐다.즉시 십지 지문을 채취한 경찰은 인편으로 경찰청 지문계에 감식을 의뢰했고, 같은 날 오후 사체의 신원이 파악됐다.



피해자는 과천시 J 아파트에 사는 이모(남 600씨로 부인 황모(50)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었고, 세 식구가 관내에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수사는 급진전 되었다.개인별카드에서 피해자의 가족들 사진을 입수한 경찰은 피해자 가족들이 사는 J아파트로 향했다.

 

당시 아파트 입구에서 근무중인 경비원을 상대로 현재 피해자 가족들의 근황을 물었다."세 식구가 사는데, 부부가 요즘 보이지 않고 아들만 보이던 데요." "아들은 뭐 하는 사람인지 아십니까?" "제대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군대가기 전에는 대학교에 다녔는가 본데 제대하고서는 아직 복학을 안했는지... 근데 어제 하루 종일 뭔지는 모르겠지만 짐을 들고 들락날락 하더라고요." "아저씨, 인터폰 좀 해 주시겠어요?" 경비원이 이씨의 집에 인터폰을 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가 본데요. 안 받아요." 경비원의 말을 들은 경찰은 형사 특유의 법죄 직감 능력 때문이었는지 피해자의 아들에 대해 석연치 않은 점들이 발견됐다.이를테면 경비원이 말한 '작은 짐을 들고 하루 종일 들락날락했다는 점과 현재 놀고 있다는 점' 등이다.일단 피해자의 아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한 형사들은 피해자의 집을 찾아갔다.인터폰을 했으나 받지 않았다.열쇠를 취급하는 사람을 데리고 피해자의 집으로 갔다.그리고 잠긴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한 남자가 문을 열었다.바로 피해자의 아들 이모(24)씨였다.

 

형사들이 부모의 행방에 대해 물으며 행방불명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를 캐묻자 이씨는 '일요일아침 교회에 간다면서 엄마 아빠가 같이 나갔는데 3일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서 따로 살고 있는 형하고 같이 오늘 실종신고를 하려고 했다'는 내용의 말을 하는 이씨의 표정이 상당히 어두웠다.

 

말씨 자체도 떨려 나왔으며, 굉장히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나 형사들은 '설마하니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했겠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씨의 행동과 표정에 의문을 품고, 이씨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씨를 경찰서로 데리고 온 형사들은 이씨의 최근 행적에 대해 자필진술서를 쓰게 하고, 피해자가 살고있는 집 주변을 수색했다.대상은 쓰레통서부터,어둡고 음침한 곳까지 탐문을 시작했다.그 결과 이씨의 부모의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 몇 점이 발견됐다.옷은 깨끗이 세탁이 된 상태였다.이씨는 사건 발생 시간대에 혼자 집에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이씨에 대한 혐의점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경찰은 피해자의 집 거실과 욕실 등에 혈흔반응을 검사했다.

 

그 결과 목욕탕과 방안에서 혈흔 반응이 나왔다.그동안 줄곧 집에만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씨를 상대로 집중 추궁을 시작했다.물론 이씨의 집 주면에서 피해자의 옷가지가 발견됐다는 것과 거실과 욕실에서 혈흔반응이 나온 사실을 밝혔다.이씨는 형사들이 집중적으로 범죄사실에 대해 추궁하자 3시간만에 범행을 자백했다."제가 엄마,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이씨는 범행도구는 집안에 있던 칼과 뼈를 자르는데 사용한 쇠톱이었고, 쇠톱은 자신의 집 입구에 있는 쓰레기 분리 수거함에 버렸다고 자백했다.경찰은 이씨를 데리고 범행도구를 버린 장소로 갔다.

 

이씨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쓰레기 분리 수거함에서 쇠톱을 찾아 '이것입니다.'고 말했다.경찰은 이씨가 자신의 친부모를 살해하고 토막냈다고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물 확보에 최선을 다했다.그러나 범행도구를 서슴없이 찾아내는 이씨를 보면서 범인으로 단정지었다.경찰은 이씨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체를 유기한 장소에서 절단된 사체를 수거하기 시작했다.과천 쓰레기 소각장에서 이씨의 어머니 것으로 보이는 좌측 손을 찾아냈고, 과천 청사 옆 하천에서 부모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 두 점을 발견했으며, 사울 중구 한 폐기물 창고에서 아버지의 것으로 보이는 몸통,경마장 부근 한천 변에서 아버지 골반 등을 찾아냈다.

 

그러나 아버지 시신 중 우측 팔과 상 하박부 2점,우측 대퇴부 3점등과 어머니의 시신 중 골반부위와 좌측 다리 등 3점과 모두 6점은 회수하지 못했다.조사결과 이 6점은 과천 쓰레기 소각장에서 버린 것으로 확인됐고, 소각장에서 소각처리 된 것으로 판명됐다.경찰은 이씨의 집에서 범행도구로 이용한 식칼 3점과 작은 칼 2점, 옷을 찢는데 사용한 가위 2점,망치등을 증거물로 수거했다. 친부모를 살해한 후 토막내 버린 이씨.그는 고려대 산업공학과 2년을 휴학하고 군대에 갔다 왔고 현재 복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명문 대학생이 왜 그처럼 잔악한 범죄를 저질렀을까?그는 당시 집안에 있던 양주 5-6잔을 마셨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만취상태도 아니었다.사건 당일 부모를 살해할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정신병력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부모의 멸시와 무시,자신을 자식으로 취급하지 않는 부모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고,이번 기회로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도대체 부모가 아들을 얼마나 미워했으면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일까? 살해동기는 이랬다.이씨의 아버지는 해병대 중령으로 전역한 전형적인 군인이었다.자식들도 군대식 교육을 시켰다.어머니 또한 자식에 교육에 대해서는 아버지 못지 않게 엄격했다.이씨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도 엄하지만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했다"고 한다.부모는 이씨만 보면 불만을 토로했다.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부모는 기뻐하지 않았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중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2-3등 아래로 성적이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줄곧 우등생이었고 부모가 원하는 명문대에 진학도 했다.이씨는 말했다. "아버지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나만 보면 꾸중하셨어요. 어렸을 대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집에 오면서도 인사를 받지 않았고 밥을 늦게 먹으면 '굼벵이 같은 자식'이라고 항상 멸시했으며 내가 군에 복무하던 3년 동안 면회 한번 오지 않았습니다.어머니는 남과 비교하면서 툭하면 머리를 쥐어박았고 '너 같은 자식은 필요없다.나가 죽어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어요. 도서관에 갔다가 늦게 집에 오면, 늦게 온다고 구박,아예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방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한다고 잔소리, 잔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을 했어야 합니까?부모와 같이 밥을 먹고 나면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모두 토해버렸습니다.그렇지 않으면 체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부모는 나를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군에서 제대한 이후에도 인격적인 모욕과 멸시는 여전했습니다.내 부모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저런 사람이 내 부모인가' 하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습니다.

 

 

나를 자식이 아니라 원수로 생각하는 부모가 너무 미웠고 사건 당일 술을 마신 뒤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끝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죽고 싶을 뿐입니다.괴물같은 자식을 낳은 부모님께 죄송하기 그지없고,그때 어떤 심정으로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키 162센치 저도 되는 이씨는 어려서부터 작은 키때문에 집과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키 때문에 친구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고,친구들에게 '왕따'도 당했고 여자들에게도 무시를 받아 상처를 많이 입었다고 한다.대학교때도 미팅 나갈때 주선자에게 왕따 당해 미팅도 해보지 못한 서러움에 상처가 컸다.그는 항상 외톨이였다.그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고려대도 들어갔지만 마찬가지 였다.그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했던 이씨는 폭력성이 짙은 비디오를 탐닉하기 시작했다.'텔미 썸딩''거미의 계략' '킬러' '전사의 후예'등 잔혹한 살해장면이 나오는 비디오와 공포서적을 즐겨 본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저 사람들이 과연 내 부모인가' 하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다고 말한 이씨.밥 먹을 때도 눈치와 눈총을 받아가며 밥을 먹었고, 밥알이 모래알 같았던 날이 수없이 많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어려서 부터 부모에게 받은 멸시와 천대는 원망과 증오를 키웠다. 사건발생 일주일 전에 사상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씨는 아버지에게 반항했다.'왜,사람을 벌레 보듯 하십니까? 나도 사람이고 이젠 성인입니다." "내 까짓 새끼가 무슨 성인을 따지면서 아버지한테 말대꾸를 하느냐. 학원에 간답시고 가방만 들고 왔다갔다하면서... 아니면 집구석에 쳐 박혀서 비디오만 보고...남자답지도 못하고 쫴끔한 비실비실한게... 남자 자식이 왜 그따위로 사냐." "어버지가 저한테 잘해 준 게 뭐 있습니까?당신이 정말 내게 아버지였나요?" 그러자 거실에 있던 어머니까지 들어와서 이씨를 야단쳤다."네가 뭐가 잘났다고 아버지한테 말대꾸냐,말대꾸가." 이씨는 울면서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쌓아뒀던, 어릴 때부터 부모한테 멸시받은 이야기들을 하나 둘 뱉어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왜 그때 그때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꽁하고 있다가 이제야 꺼내는 거냐. 남자 새끼가 그 모양이니 한심한 새끼!" 어머니의 잔소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그제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오랜 감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부모와 잘 지내고 싶었던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했다.여기서부터 걷잡을 수 없는 심경의 변화를 느꼈고 서서히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사건 당일인 5월 21일 범행직전에 부모와 다움이나 언쟁은 없었다.그러나 일주일 전부터 폭발하기 시작한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같은 날 새벽 5시.이씨는 아버지가 아끼던 양주를 3-잔정도 마셨다.자신의 방에 있던 공구 함에서 쇠망치를 꺼내 들고 어머니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갔다.부모는 몇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었다.이씨의 방을 가운데 두고 양쪽 방을 부모가 사용했다.어머니는 아버지 방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이씨는 쇠망치를 들고 아무 망설임 없이 자고 있는 어머니의 머리를 내리쳤고, 한차례 꿈틀거리자 다시 한번 내리치는 등 3회에 걸쳐 살해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 왔다.그리고 4시간 동안 양주 2-3잔을 더 마시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이미 어머니를 살해한 상태였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같은 날 오전 9시께 어버지의 방으로 갔다.같은 방법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부모의 시신을 훼손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매트리스 위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상태에서 양손으로 어머니의 발목을 잡고, 방바닥과 거실 바닥에 피를 묻히면서,욕실까지 끌고 갔다.같은 방법으로 아버지의 시신도 욕실로 옮겼다.먼저 어머니 시신부터 훼손 작업을 시작했다.목,우측 팔, 우측 다리등 시계 반대 방향으로 토막냈다.같은 방법으로 아버지의 시신도 토막냈다.이씨는 부모의 시신을 훼손한 뒤 부피를 줄이기 위해 내장을 꺼내 가스레인지에 열을 가하는 잔악한 패륜법죄를 저질렀다.또 이씨는 시신을 훼손하면서 피가 많이 나오자 물을 틀어놓고 작업했다.부모의 내장은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서 과천 음식물 쓰레기 분리 수거함에 유기한 것으로 확인됐고, 과천 쓰레기 소각장으로 옮겨져 소각된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부모의 시신을 풰손한 이씨는 절단한 시신들을 거실로 전부 옮겨놓고 포장 작업에 들어갔다.골목시장에서 검정 색 비닐봉투 100장을 사왔다.그리고 신문으로 싼 뒤 검정 색 비닐로 몇 겹씩 싸서 집안에 있던 박스용 테이프로 단단하게 옭아매었다.최대한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였다.이씨는 보모의 시신을 21개의 봉투에 담아 서울과 과천 등지에 분산하여 유기 했으며,봉투에 시신을 담아 지하철로 운반하기도 했다.그런 다음 세제를 이용해 피가 묻은 부모의 옷과 자신의 옷을 빨아 말렸고, 침대시트도 깨끗이 빨아 말린 뒤 원상태로 해놓았다.방과 욕실도 깨끗이 청소했다.포장 작업만도 하루가 걸렸고,이틀에 걸쳐 청소와 사체를 유기했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온 딸이 아버지를 토막살해하고 검정 비닐 봉투에 담는다.

이는 영화 '텔미 썸딩' 줄거리의 일부분이다. 최근 영화에서 보았던 잔악한 패륜범죄가 발생해 주위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자신의 부모를 망치로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내 공원 쓰레기통 등에 버린 고려대생 부모토막 살해범 이은석씨 그는 액션이나 범죄비디오를 즐겨 봐 왔다는 진술에 따라 최근 본 영화를 분석해 보았더니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이 잔악하게 그려진 영화이다.그런 범죄 비디오를 보고 시신 훼손 과정등 모방한 것이다.그는 '비디오를 보고 직접적으로 범행을 흉내낸 것은 아니지만, 비디오를 보면서 '저렇게 하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관련 서적 :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관련 서적 서평

 

이 책은 세상에 나오자 마자 '출판 가처분 신청'으로 절판이 된 책이다.

그러니 서점에서 구할 수 없는 책.

 

갖지 못하는 것은 더 간절해지는 법. 잠시 생각을 해봤다.

도서관에는 있겠지? 지역 도서관에는 없었다. 인근 카이스트 도서관을 검색하니 책도 없었고, 관계자 외엔 대출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아하...남편이 다니는 학교 도서관에 검색하니 책이 3권이나 등록되어 있어서 기분 좋게 대출을 부탁했다.

대출 기간도 60일.! (나는 지역도서관에서도 2주, 문화센터 대여는 1주. 책을 빌리는 것보다 반납일 스트레스가 더 커서 차라리 사서 보자로 의식 전환을 했을 정도다. 나는 성격상 반납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로는 연체료와 수수료를 꼽는다.)

 

(사설이 길었다. 그만큼 구하기힘든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음)

 

이 책은 2000년 5월에 명문대생이 부모를 망치로 내리쳐 죽이고, 토막을 내어 유기한 이은석군에 대한 심리학적인 분석 기록이다.

나는 왜 기억이 안 날까? 2000년 5월 21일에 무얼 하고 있었을까? 대학원 생활에 적응한다고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던 때였구나.

어떻든 나는 이 사건이 기억나지 않고, 다만 존속살해사건이고 패륜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잊고자 했을 때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고, 무엇이 이 24살 청년의 마음에 부모를 죽여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인지, 그걸 분석한 이훈구 교수의 얘기가 궁금해졌다. 또한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후 이은석군의 형이 출판금지 신청을 하여 지금은 이 책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궁금함을 증폭시켰다.

 

사건만을 얘기하면 이렇다.

2000년 5월 21일 이은석군은 새벽에 망치를 들고 엄마방으로 가서 망치로 머리를 내리쳐서 엄마를 죽이고, 4시간 뒤 아버지가 깨어나서 이걸 보고 자기를 꾸짖을 것이 두려워 아버지도 살해한다. 그리고는 좀 뒤에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하다가 욕실로 옮겨서 사지를 절단하고, 비닐봉지에 넣어서 지하철 쓰레기통이나 하천, 이런 곳에 유기했다. 욕실과 집 청소를 했고, 4일인가 만에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은석군이 형이 기자들의 질문에 "동생을 이해한다" 라고 대답한 것이 더 화제가 되었고 이런 반응이 경찰에게는 형도 공범이 아닌지 의심이 들게했다. 이은석군은 1심에서 사형을 받았고, 2심에서는 무기징역이 선고 되었고 최종으로 무기징역을 받아 지금도 복역 중이다.

 

저자는 왜 이은석군이 유교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인 한국에서 부모를 살해하고 토막을 내어 유기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부모를 살해하는 것도 세상 사람들은 혀를 차고 놀라지만, 부모의 신체를 훼손했다는 것에서 더욱더 끔찍함을 느끼는 듯 했다)

 

책은 이은석군의 일기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은석군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밑에서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다. 어머니(이은석군의 외할머니)로부터 엘리트여성이 되길 강요받았고, 억압과 복종의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에서 여성의 한계를 깨닫고 대통령 영부인으로 목표를 수정하고, 당시는 군부독재였던 시절이라 본인의 꿈을 이뤄줄만한 해사 출신의 장교와 선을 보고 결혼을 한다. 그런데 남편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사람이어서 진급에 실패를 하고, 퇴역하여 대기업 간부로 내려앉는다. 여기서 그녀의 두번째 꿈이 무산된다. 부부 사이도 좋지 않아서, 자식들에게 너희 때문에 내가 이러고 산다는 말을 계속하여 자식의 마음에 죄책감과 원죄를 갖게 만들었다. 남편이 꿈을 이뤄줄 대상에서 탈락하자, 그녀는 그녀의 꿈을 아들들에게 주입시키기 시작한다. 두 아들 중 첫째는 자라면서 반항도 하고, 본인의 의지도 굽히지 않아서 그녀의 꿈은 둘째에게 내려가서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받았던 그것을 그대로 전수한다. 근데 그 내용을 보면 아동학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겉으로는 신학대학을 다니고 철저한 신앙을 가지고서 종교 생활을 했지만, 자식에게는 폭언, 폭력, 비하, 외면, 무시, 인격모독으로 아들을 키웠다.

 

그럼 아버지는? 아버지는 형제 많은 집의 차남으로 장남과의 차별 속에서 성장하여 혼자서 성공하겠다는 신념으로 군 생활을 하고, 경제적으로 먹여살리면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로는 충분하다고 하여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무관심했다. 본인이 차별 속에서 자라왔으면서도 두 아들 중 차남인 이은석군을 차별하면서 키웠다.

 

또한 부모의 성격탓으로 친척들도 이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가 친척들을 다 싫어함)

 

집에서는 아동학대, 학교에는? 왕따였다.. 학교에서는 왕따였고, 군대에서도 왕따였다.

이은석군은 중학교 이후로 키가 자라지 않아 작은 체격에 상당한 컴플렉스가 있었고, 이런 작은 키는 자기가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덩치가 큰 녀석에게 지속적인 왕따를 당하고, 군대에서는 쫄병에게 야단을 제대로 치지 못한다고 상급병에게 욕을 먹고 나서는 상급병과 쫄병에게서도 왕따를 당한다. 그의 일기를 보면 고교 졸업과 대학 입학의 그 2달을 교회에 나가고 좋아하는 여성이 생기면서 사회적인 "관계 맺음"에 발전이 보이기도 하나, 사람들을 만나면 좋긴하지만, 관계 맺음을 할 줄 모르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갈등하고 괴로워하고, 언젠가는 자식은 버림받고 패배할 것이라고 두려워만 한다. 결국 교회도 접는다.

 

이은석군은 상당히 명석해서 수능으로 특차로 고려대에 입학했지만, 논술까지 치르면 서울대도 갈 수 있는 실력이었으나 단지 1달이나 더 학교에 남아있는게 싫다는 이유로 빠른 입시 종결을 원한다.

 

고교 시험 시간에 공부하고 있는 아들을 거실에서 "밤샘 지킴이"를 하고 있던 엄마.

아들이 공부를 하다가 깜박 잠이 들어버리자, 새벽까지 기다리던 그녀는 "말도 하지 않고 잠을 잤다"고 아들을 폭행하고 모욕을 줘, 이때 은석군은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고 몇 시간이지만 가출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그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줬다)

 

그럼 이렇게 자라다가 대학에 입학한 후 이은석군은 왜 형처럼 독립을 하지 못했나? 이 점에 저자는 관심을 둔다.

지속적인 학대 환경 속에서 이은석군은 길들여져버린다. 이 상황을 탈출하는 것보다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에 안주하려고 해버린다.(이건 전기충격 실험에서 지속적인 전기 충격을 받은 개는 탈출구가 눈 앞에 있어도 탈출 의지를 잃고 그냥 그 고통에 안주해버리고,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증명도 있다) 게다가 형이 독립을 한 이후 어머니의 학대는 차남에게 더욱더 집중이 되었고, 은석군의 불만은 내부로부터 쌓이고만 있었다. 본인도 언젠가는 엄마에게 따져보겠다는 이유로 성인이 된 후에 어린시절의 학대 내용을 contents라는 목록에 적어놓는다.

 

형이 이사를 나가고 나서 이사를 도와주고 온 은석에게 엄마는 이사한 집이 어떻냐고 물어보고 대답을 잘못하는 은석에게 그녀는 또 모욕을 준다. 이 사건이 빌미가 된다. 이러고 나서 은석은 4시간에 걸쳐 엄마와 말싸움을 한다. 어린 시절 자기에게 왜 이렇게 했냐는 내용에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모른체하고, 이제와서 과거의 일로 째째하게 따진다고 아들을 더 야단을 친다. 이 싸움은 아버지의 귀가로 휴전을 맺지만, 엄마는 아버지에게 싸움 내용을 말하게 되고, 그걸로 아버지는 은석을 1시간이나 꾸중을 한다. 이후 은석은 본인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부모가 외출하거나 잠든 시간에만 화장실을 이용하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요기만 해결하고, 심지어는 나올 수가 없어 깡통에 소변을 보기까지한다. 어떻게 한집에 살고 있는 아들이 부모와 싸운 이후 방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은석의 부모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아니 이해가 되었다면 그런 일은 벌어졌을까? 

자기 방안에 갇혀 은석은 부모가 잠드는 시간만 기다렸고, 부모가 외출하는 시간만 기다리며 침대에서 숨죽이며 자기의 존재를 숨긴다. 이렇게 5일을 있으면서 은석은 자기를 이렇게 괴롭게 만드는 원인을 차라리 제거해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망치로 부모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다.

 

또한 은석은 비디오와 영화를 매우 많이 봤고, 저자는 그가 본 영화가 그의 행각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특히 '매그놀리아' '택시 드라이버'가 큰 영향을 줬다고 판단한다.

 

은석은 제대 후 창녀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그걸을 매우 중시여겼는데, (창녀를 만나려면 돈이 필요했고, 이 돈을 준비하기 위해 그렇게 아끼던 영화 비디오 테잎들을 처분하면서까지) 일기에 창녀에게 특별 서비스를 요구한 내용을 적어놓았는데, 그 특별 서비스가 가학적인 성 행위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전문가와 달리 은석이 창녀에게 요구한 특별서비스는 "포옹"과 "입맞춤"이었다.

 

이렇다면 과연 형은 사랑만 받았을까? 은석의 형은 조사에서 자기는 사랑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부모는 두 아들에게 미움만 보여주었나보다. 그리고 동생을 이해한다고 했다.

 

은석은 아동학대의 시절과 학교와 군대라는 사회집단에서의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였고, 그로인해 사회적 관계 맺기를 할 수가 없었다.

또한 미디어의 영향(영화와 비디오), 게임(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은석이 스타크래프트를 즐겨 했는데, 적과의 전투가 끝나면 자기 병사를 죽이는 것로 마무리했다고 한다.....-->본인은 게임이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의 무관심 등으로 원인을 내린다.

 

은석이 엄마에게 대들었을 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들었어도 이런 사건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은석이 무죄라고 주장한다. 지속적이고 꾸준한 환경 속에서 노출이 되어 이걸 피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전문 용어가 나오는데 기억이 안남). 미국이었으면 아동학대로 인한 무죄가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

 

+

은석의 부모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으나 자신이 선택하고 싶었던 부모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걸 방기함으로써 자식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갔다.

 

 

 

 

 

 

 

 

3줄요약

 

 

일게이처럼 여친도없고 루저인 고대생이있음

 

 

그 고대생은  어린시절부터 부모의 강압적인 교육을받음

 

 

어느날 술처먹고 빡친 고대생이 부모 운지시켜버림  

 


이은석(범죄자) - 나무위키

https://namu.wiki/w/이은석(범죄자)
2017. 11. 29. - 이은석은 1976년 8월 29일생으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해병대 장교(최종 계급은 중령)[2] 출신인 아버지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어머니를 둔,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진학한, 겉보기엔 매우 훌륭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모범생이었다. 

이은석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이은석
이은석(1976년 8월 29일 경기도 과천시)은 부모를 토막살해한 대한민국의 살인자이다. 그러나 부모의'가부적 양육태도'에 의한 아동학대의 희생양으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으며 이 사건은 가정환경의 중요성과 극단적인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알렸다.
사건 · ‎사건의 배경 · ‎재판

그런데 이은석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혹한 학대를 자행한 것은, 사실은 이들도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의 성장 환경을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되는데 우선 어머니의 경우 자신의 성깔을 아득히 능가하는 홀어머니(즉 이은석의 외할머니)로부터 더 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소설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맞았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알고 보면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이은석과 유사하며 어린 시절 형(이은석의 큰아버지)만 편애하는 아버지(이은석의 할아버지)[28]밑에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을 증오했다.[29]

그래서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를 강요하고 자신은 가족들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 부부의 정신나간 학대행위는 절대로 동정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모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이은석 사건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룸으로써 생긴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에게 있어서 제대로 된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고 극단적인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은석의 부모는 그들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에, 자식에게 사랑을 베푸는 방법도 몰랐던 것이다. 

물론 아동학대 피해자라고 모두가 사랑을 줄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내 자식한테만큼은 나와 같은 경험을 겪게 하지 않겠다, 나는 부모와 다른 인간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서 훌륭한 부모가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은석 형제에게 불행하게도 이들은 그런 부모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이은석의 형은 스스로 도망쳐서 살 길을 찾았지만, 이은석은 도망치지 못하고 패륜아에 중범죄자가 되어서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으며,[30] 부모들 역시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가 낳은 친자식 손에 끔찍하게 살해당한 후 시신마저 토막토막나 유기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비극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


내 인생썰 및 일본에서의 사진들.jpg(씹스압)

안녕 게이들아 
나는 89년생인 아재게이야
나의 인생 썰 과 현재 일본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썰을 풀고 시작할게

나는 2살 때 부모가 이혼하셔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손에서 성장했다. 
우리 집이 예전에는 못해도 은수저 정도는 됐었다
그 당시 과수원이 4개 정도 있었고 여인숙2개 식당2개 그 외 땅이 정말 많았음

어릴때 기억났던게 할머니,할아버지가 해외에 이틀정도 간다고 하셨고, 
집에 가정부도 있었지만 5살 정도였던 나에게 직접 100만원을 사용하라고 
100원,500원짜리로 모두 바꿔서 주시고 가셨던게 기억난다.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둘, 아버지 친인척들에게 정에 약한 할머니가 악착같이 모은 돈을 다 퍼주셨고 
치매에 걸리셔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자식들 모두도 부유하게 성장해서인지 돈을 정망 흥청망청 썼었다.
 
그 후 할아버지,아버지 손에서 성장하게 됐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먹고
알콜중독 병원에 가도 다시 탈출해버려서 답도 없었다.
대략, 초등학교 2~3학년부터
아버지는 돈이 많았던 적을 회상하며 돈을 돈같이 안 보고 정말 물처럼 써버렸다. 
택시를 타고 택시비가 5천원이 나오면,  십만원 짜리 수표를 주고 어렸던 내가 거스름돈 달라고 해도,
아버지는 거스름돈 받지말라고 하면서 날 때렸었다.

아버지는 조폭이었고 온몸에 칼자국, 문신 정말 많이 있었고 
목욕탕같이 갈 때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정말 부끄러웠었다.

뉴스에도 많이 나왔었다. 마약을 정말 많이 하셨다.

전과가 정말 화려하고 많았지만, 우리집은 모두 돈으로 해결하고 아버지를 교도소에서 나오게 했었다

아버지는 재산들이 점차 사라져서 매일같이 술을 먹고 이유없이 나와 할아버지를 때렸었다.
나는 어릴 때맞으면서도 절대 아버지처럼 되면 안 되겠다 다짐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마시더라도 절대 술주정 부리지 않고 화장실 변기 잘 열어서 토하고 집에 가서 꿀잠 잔다.

다행히 엄마를 닮아서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짐

경찰을 불러도 이제는 지겹다는 듯이 그냥 잘 해결하라고 하고 다시 돌아갔다.

나는 아버지가 올라오는 계단 소리만 들어도 새벽에 잠이 깨고 
온몸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버지에게 두려움을 느꼈었다.

그런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려고 중학교부터 복싱부를 들어가게 되었다.
정말 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정말 좋았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운동하고 원하는 체육고등학교를 갔지만,

17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나에게 평소에도 칼로 위협만 했었음

그날 새벽은 달랐다.
자고 있는 나에게 칼로 팔을 그어버렸다. 피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정말 더 있으면 죽겠다.. 싶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부산으로 가출을 했다.혹시 아버지가 찾을까봐 핸드폰도 버리고 가출했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지내옴 (형제도 없음)


가진돈도 없고 잘곳도 없어서 지하 주차장에서 잠을자며 남의집 짜장면 배달시킨것들을 주워먹으며 연명했음
아무 식당가서 배고파서 그런데 남은 음식들 없냐고 해서 음식도 얻어먹다가 어떤 아주머니께서
내 사정이 너무 불쌍하다고 고시원을 구해주셨다.(아직도 연락하면서 지낸다)

그 후로 리니지오토사무실,공장,주유소,미용실,서빙,요리 기타 등등 여러가지 힘들일들을 해가며 살아왔고,
최근까지는 잠실에서 양식점 셰프를 맡아서 했었다.요리를 하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었다.

그리고는 20살이 되자마자, 육군을 지원했는데 전투경찰로 착출되어서
처음에 따로 불러서 청와대경비대 인원에 뽑혔다고 했는데
키가 작아서 떨어짐.ㅍㅌㅊ?

그리고는 서울 기동대 진압중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노짱운지,평택쌍용자동차,용산참사 등등 
폭동 진압이 힘들고 고참의 갈굼과 구타가 
아버지보다는 견딜만해서 잘 참고 무사히 전역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돈 모아서 살다가 할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전세집을 빼고 할아버지 병원비로 올인했다.
하지만 수술은 잘 됐지만 몇달 못가서 돌아가셨다.

그렇게 다시 원룸을 잡고 돈을 모으다가 현재 와이프를 만나게 됐다

지금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결혼하고 일본에 거주한지 이제 5개월 정도 됐다.
아직 일본어도 모르고 비자도 없어서 일도 안하고 있지만 나름 재밌게 살아가고 있다.

만나게 된 계기는
잠실에 거주하고 있을 때 휴무날이라서 모처럼 기분 내려고 과자를 잔뜩 사려고 슈퍼에 가고 있었는데
일본인 관광객이 나에게 와서 롯데월드, 석촌호수 어디냐고 한국어로 어설프게 질문하게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라 그냥 데려다 주기로 하였고 그렇게 걷다가 친해져서 얘기 나누고 
가이드 해주다가 결국은 현재 와이프가 되었다. 와이프는 96년생이고 나와의 나이차이는 7살 차이다.

그리고 장인어른 장모님이 정말 친자식처럼 잘해주신다.
어릴때 못받았던 사랑을 나에게 주시는것 같아서 정말 고마운것같다.


한국여자들도 만났었지만.
물론 좋은 한국여자도 있었음
내 기준에서는 일본여자가  더 좋고
왜 좋아졌는지도 알것같다. 남자를 하늘로 생각하고 와이프가 일하면서도 내조를 잘하고 
물질적으로 부족하고 가진것도 없는 흙수저인 나를 사랑해주는게 보이더라 
그리고 처음 만났을 당시에 운동도 그만둬서 172cm에 90kg 파오후인 나를 사랑해주더라


나 같은 흙수저 게이들도 살다가 갑작스럽게 
인연이나 귀인을 만나서 도움 주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니까  인생 포기하지말고 잘 살아보자 




3줄 요약.

1. 17살부터 가정폭력 당하고 집나오고 12년간 혼자 독립해서 생존을 위해 살아감 

2. 우연히 길묻는 일본인 관광객과 연인으로 발전, 결혼해서 재밌게 살아가고있음

3. 기분조타~!



 


노트3라 화질도 안좋고 사진도 못찍지만 이해해줘









아무도 소년의 손을 잡지 않았다

문을 열자마자 달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머니의 사체가 누워 있던 8개월의 흔적은 냄새로 남았다. 지난 3월20일 서울 광진구 ㄱ고교 3학년생 하승우군(가명·18)은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 박 아무&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2011년 12월 14일 수요일 제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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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마자 달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머니의 사체가 누워 있던 8개월의 흔적은 냄새로 남았다. 

지난 3월20일 서울 광진구 ㄱ고교 3학년생 하승우군(가명·18)은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어머니 박 아무개씨(51)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하군은 8개월 동안 사체를 안방에 둔 채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녔다. 

사건은 5년 전부터 별거 중이던 아버지가 집에 찾아온 11월23일이 되어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지난 12월1일 찾은 승우네 집은 거대한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105㎡(32평) 빌라의 거실 바닥에는 과자 봉지, 주전자, 이불, 책 따위가 한데 엉켜 너저분했다. 

그 사이에 그동안 승우가 잠을 청한 2인용 전기매트가 놓여 있었다. 

집 안 세간은 모두 승우를 위한 것이었다. 

책상 두 개, 책꽂이에 꽂힌 위인전기, 해리포터 시리즈, 성문종합영어, 교과·토익 문제지….


벽에 붙은 서울대 캠퍼스 그림

집 안 벽에는 ‘17세 공부법’ ‘청해·문법·어휘·독해 공부법’ ‘신문→독서→사탐 공부…’ 등 학습 요령이 적힌 종이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승우가 일곱 살 때 부모와 함께 서울대에 놀러 갔다가 그렸다는 서울대 캠퍼스 전경 그림도 ‘서울대학교’라는 글씨와 함께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가족사진도 보였다. 승우와 어머니, 단둘이었다. 

나무 기둥에 기대어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 박씨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시사IN 윤무영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하승우군(가명)이 12월1일 서울 성동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승우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머니의 바람대로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승우가 다니는 ㄱ고등학교 부장 교사는 “승우는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기대가 컸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성적우수상, 고등학교에서 시행한 영어경시대회를 비롯해 외부에서 주관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도 수없이 입상했다. 2009년에는 광진구청장이 주는 모범학생 표창장도 받았다. 한 이웃 주민은 “인사도 잘 하고 예의가 발랐다”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잘했던 승우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영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다. 영어 신문을 만들면서 모든 친구의 영어 기사를 검토해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장래 희망도 영어 선생님이었다. 

어머니는 승우가 외교관이 되기를 바랐다. 한 학교 친구는 “승우는 영어만은 다른 선생님보다 잘 설명해줬다”라고 말했다.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한 친구는 “영어 동아리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모임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후배들에게 특히 잘해줬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승우는 마냥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 

승우의 한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속을 잘 알 수 없었다. 가끔씩 이해 못할 행동을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학교에 화약을 가져와 복도에서 불을 붙이는 바람에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같은 반 친구들이 체육복을 갈아입으면서 승우의 피멍 든 다리를 보았다. 

이유를 물었지만 승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같은 학교 출신인 한 친구는 “그때부터 승우가 집안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인 3월19일에도 어머니는 승우를 때렸다고 한다. 

“너 맞아야겠다.” 잔소리는 어머니의 체벌을 알리는 신호였다. 고3인데도 너무 나태하고 의지가 약하다는 게 이유였다. 

승우는 자연스럽게 ‘맞을 때 입는 솜바지’로 갈아입고 거실에 꿇어앉았다. 

체벌은 밤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이어졌다. 

어머니는 골프채를 두 손으로 쥐고 수직으로 승우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승우는 새벽 1시·4시·6시 3차례에 걸쳐 40여 대씩 총 120여 대를 맞았다. 

솜바지의 왼쪽 엉덩이 부위가 찢겼다. 살점이 떨어져나가 피가 나면서 골프채에 피가 묻었다.


기나긴 매질이 끝나자 어머니는 아침잠이 들었다. 승우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오전 11시, 부엌에 있던 칼을 들고 안방에 들어갔다. 경찰에 따르면, 승우는 안방 문 가까이에서 잠들어 있던 어머니의 얼굴을 칼로 찔렀다. 

잠에서 깬 어머니는 승우의 머리를 잡으며 “너 왜 이러느냐, 이러면 잘못된 삶을 사는 거야”라고 말했다. 

“엄마는 몰라. 내일이면 엄마는 날 죽일 거야.” 목을 조른 뒤 다시 목을 찔렀다. 

어머니가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승우는 칼을 두고 방문을 닫았다. 일주일 뒤, 이불을 꺼내기 위해 안방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피가 흥건한 이불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옷장에서 이불을 꺼내 나왔다. 엄마를 보았으나 무섭지 않고 오히려 덤덤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다음 날 피가 묻은 옷가지를 세탁했다.


어머니는 늘 좋은 성적을 원했다. 승우도 따랐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토익 900점을 넘겼다. 중학교에 진학해 반에서 1∼2등을 했다. 중3이 되면서 달라졌다. 점수가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승우는 두려워졌다. 성적표를 조작했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어머니가 이를 알아챈 것이다. 승우는 “죽도록 맞았다”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전국 모의고사 등수는 매번 편차가 심했다. 

첫 시험 결과가 전국 4000등이었지만 다음 시험에서는 2만 등이었다. 어머니가 무서웠다. 승우는 성적표를 계속 위조해야 했다. 

2500등, 1500등, 700등, 500등, 250등, 67등, 62등으로 점차 향상되는 성적표를 어머니 앞에 내보였다. 

어머니는 더 기대했다. “우리 승우는 전국 1등도 할 수 있는 애야.” 승우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승우가 어머니를 살해한 3월20일은 학교 학부모 총회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과 면담하면서 자신의 실제 성적을 알게 될 것이 두려웠다. 승우의 두려움이 살인을 낳은 것이다.


   
ⓒ시사IN 윤무영
하군의 어머니가 웃고 있는 사진은 비비탄 총에 맞아 금이 갔다.

승우가 처음부터 어머니에게 맞았던 것은 아니다. 매질이 본격화된 건 5년 전 즈음이다. 

아버지와 별거가 시작된 시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요청한 올해 초부터는 체벌의 강도가 한층 강해졌다. 

승우의 아버지 하씨(가명·52)는 승우에게 먼 존재였다. 승우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가출해 6개월을 떨어져 살았고, 그 뒤로도 이따금씩 집을 나갔다. 


승우의 이모(41)는 “그럴수록 언니(박씨)가 아들과 아들 성적에 집착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족 모두 친인척과 인연 끊고 살아

승우의 어머니 박씨는 일찍이 모친을 여의었다. 

열다섯 살이던 박씨가 다섯 살 막내를 포함해 세 동생을 모두 돌봤다. 박씨의 아버지는 두 남동생만 극진히 아꼈다고 한다. 

박씨의 막내 동생인 승우 이모는 “언니는 고집이 셌다. 

혼자 힘으로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도 다녀왔다. 하지만 그만큼 외로웠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따금 승우 아버지와 싸울 때면 박씨는 벽에 머리를 찧는 등 분을 삭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승우가 태어난 직후 친정과 인연을 끊었다. 승우 아버지 역시 승우가 네 살이 될 무렵부터 친인척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한 가정에서도, 다른 친척들 사이에서도 철저한 외톨이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결국 승우가 중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인 별거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승우는 추석이나 설날에도 어머니와 단둘이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 박씨는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고가 난 3월20일부터 아버지가 실종 신고를 한 11월18일까지 그녀의 자취를 궁금해하거나 수상히 여긴 사람은 없었다. 

박씨는 승우가 태어난 경기도 부천에서 시작해 안양, 서울 청량리·잠실·신림동·둔촌동·구의동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연고 없이 자주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승우가 “엄마는 가출했다”라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승우 아버지는 아내가 외부 사람과 관계 맺기를 꺼려하는 성격이어서 한곳에 오래 정착하려 들지를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외부와 관계가 단절된 박씨에게는 오직 승우밖에 없었다. 

승우 역시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어머니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승우를 만난 이모가 “차라리 도망가지 그랬니?”라고 묻자 승우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를 죽이고 3개월이 흐른 지난 6월, 자전거를 타고 가던 승우는 자동차 사고를 크게 당했다. 

병원 측은 치료를 위해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승우는 “엄마는 전화 안 받을 거고, 아빠는 소용없을 거다”라는 말로 연락을 거부했다. 

결국 병원 측이 알아낸 아버지의 연락처로 소식을 전하고 나서야 부자가 만났다. 2년 만이었다.


   
ⓒ시사IN 윤무영

하군이 8개월 동안 지낸 집 안. 표창원 경찰대학 교수는 하군 집의 내부 사진을 본 뒤 “삶 자체에 대한 흥미를 상실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죽인 뒤 이틀 동안 승우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4월에는 한 달 중 보름 이상을 결석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갔을 때 담임 선생님에게 “엄마와 따로 살기로 했다. 성적과 이성 친구에 대한 고민이 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방치된 지 3주쯤 지나, 안방 문틈 사이로 시체 썩는 냄새가 새어나왔다. 

문구점에서 공업용 본드를 사서 안방 문틈에 발랐다. 한 이웃 주민은 “승우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와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놀았기 때문에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승우는 안방에서 죽은 엄마를 그대로 두고 바로 옆 거실에서 친구들을 불러 컴퓨터 게임을 하고 라면을 끓여 먹고 피아노를 치며 놀았다. 그 사이에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꿈도 못 꿨을” 여자 친구도 두 명이나 사귀었다.

승우는 여자 친구에게 집착했다. 지난 5월 여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요즘 투검술 연습을 한다. 누가 내 여자 친구를 건드리면 투검 3개와 수리검 5개를 배에 꽂아주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여자 친구와 다퉜을 때에는 “안 만나주면 네 앞에서 죽어버릴 것이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 “정신적 문제 없다”

승우는 ‘무기 마니아’이기도 했다. 살인을 저지른 뒤부터 아버지가 어머니 통장으로 매달 150여 만원씩 보내온 생활비로 활·일본 칼·서바이벌 총·야구방망이·투검·수리검·표창·비비탄 따위 무기를 사 모았다. 

특히 수리검과 투검으로 ‘다트 게임’을 즐겼다. 게임판이 된 방문에는 사인펜으로 그린 사람의 형상이 선명했다. 

인터넷 총 판매 사이트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전동 핸드건용 파워스프링’ 재입고 여부를 묻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범죄심리학자)는 “타인에 의해 남성성이 훼손된 사람이 무기류에 집착하는 경향이 높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무기를 소장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사체로 발견되기 직전인 지난 11월22일 밤 11시30분께, 승우가 끝까지 집 문을 열지 않는 점을 수상히 여긴 아버지가 119 구급대를 불렀다. 

경찰이 함께 출동했다. 승우가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엄마가 안에 있니?” 아버지가 물었다. 

승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 전기 매트 위에 털썩 주저앉은 승우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이미 반 이상 넋을 잃은 상태였다.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 안 버릴 거지?” 승우의 목소리는 크게 떨렸다.

12월1일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승우를 조사한 경찰관은 “프로파일링 조사 결과 아이에게 정신적 문제 등 특이 사항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머니가 학교에 가면 위조한 성적이 들킬까봐 심한 압박을 받아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와의 최초 면회에서 승우는 “아빠를 못 믿었다. 버려질 것이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승우에게 어머니는 자기를 때리는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유일한 애착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이기도 했다. 

어머니 시신과 동거한 8개월 동안 승우는 매일 밤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고 했다. 


승우는 뒤늦게 “후회한다. 자살도 떠올랐지만 뻔뻔스럽게 살아왔다”라고 말했다. 

이젠 승우 곁에 어머니 외의 다른 가족이 있다. 아버지, 큰아버지, 고모, 이모, 그리고 승우를 걱정하는 학교 선생님과 친구, 이웃들까지.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열여덟 살 소년이 살인범이 되는 동안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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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살해뒤 8개월 방치…그 아이를 만났다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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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9. - [토요판] '엄마 살해뒤 방치' 지아무개군의 검찰기록 엄마 빈자리를 여자친구로… “행복 깨기 싫어 ... 지난해 11월25일,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서울 광진구 구의동 집 앞에 도착한 지군이 경찰들 함께 차에서 내리고 있다.(왼쪽) 현장 .... 집에 혼자 있기가 두려워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 먹고 게임을 했다. 지군의 집 ...



엄마 살해뒤 8개월 방치…그 아이를 만났다
등록 :2012-03-09 20:35수정 :2012-03-09 22:48

지난해 11월25일,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서울 광진구 구의동 집 앞에 도착한 지군이 경찰들과 함께 차에서 내리고 있다.(왼쪽) 현장검증이 끝난 뒤 창문을 통해 들여다본 지군의 방 입구에는 교육방송에서 들은 공부법을 정리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토요판] ‘엄마 살해뒤 방치’ 지아무개군의 검찰기록

엄마 빈자리를 여자친구로… “행복 깨기 싫어 자수 안했다” 

‘학대와 패륜.’ 존속살해를 바라보는 불편함은 이 두 단어에 갇혀 있습니다. 핏줄로 꽁꽁 묶인 관계는 의존적입니다. 동시에 사랑한 만큼 배신감도 클 수밖에 없는 적대적 관계가 사건에 녹아 있습니다. 

존속살해의 시작과 끝에는 ‘엄마, 아빠’라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해야 할 존재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엄마, 아빠입니까? 자녀에 의해 부모가 살해당하는 극단적 형태의 가정폭력, 결국 우리 가정과 사회의 숙제입니다.

주검 옆에서 삶을 놓아버렸다
술과 게임에 빠져들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와 찍은 사진들은
거실에서 치우지 않았다

치료감호소에서 검사한 지군의 지능지수는 131로 ‘최우수’ 수준(K-WAIS 기준)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내 경시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타고, 학교 밖에서도 한국과학창의력 경시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는 전 과목에서 ‘수’를 받으면서 전교 1등을 세 번 했고, 제일 못한 때가 전교 4등이었다. 

고2 때는 텝스(TEPS) 영어능력 검정 시험에서 가장 높은 1+ 등급(900점 이상)을 받고 국제영어대회(IET 주관)에서 서울지역 은상을 받았다. 학원을 다닌 적은 없었다. 고2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영자신문을 제작하는 데 뛰어난 열의와 자질을 보였다. 

부반장으로서 리더십을 가지고 부원들을 이끎”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군의 꿈은 고1 때는 외교관, 2, 3학년 때는 교수였다.

검찰기록에 따르면, 지군은 어머니가 만든 틀 속에 갇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지군을 감시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지군이 자신의 방이 아닌 거실에서 공부하도록 시켰다고 한다. 

지군은 중학생 때부터 매일 새벽 1~2시까지 공부했다. 

어머니는 지군이 부족한 과목을 공부하라며 독서, 영어 공부, 피아노 연주를 금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머니 박씨의 친구 오아무개(49)씨는 “한번은 지군이 학교 끝나고 친구들하고 농구를 했는데, (이 사실을 모른) 박씨가 아들이 평소에 오는 시간보다 늦는다며 학교에 전화하고 울고불고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지군 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지군 집에 놀러가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 박씨는 지군을 어린 시절부터 체벌한 것으로 보인다. 지군이 7살 때 어머니에게 맞아 종아리와 엉덩이가 멍든 것을 보고 지군의 아버지가 아내를 나무라자, 아내는 “간섭하지 마”라며 받아친 일이 있었다. 

지군은 초등학교 때도 체벌을 받았고, 아버지가 집을 나간 중2 이후로 어머니의 기대는 더 커져 체벌이 심해졌다. 

고2 때는 지군의 컴퓨터에 음란 동영상이 있는 것을 어머니가 보고 학교에 가서 교사와 학생들이 보는데도 지군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이웃집에 사는 한 남성은 “6년 전부터 지군 옆집에 살았는데 엄마가 툭하면 애를 잡는 게 말도 못했다. 내가 빌라 앞마당에서 담배 피우고 있으면 그 집 엄마가 소리치는 게 다 들렸다”며 혀를 찼다. 

지군은 “욕설 섞인 어머니의 잔소리를 30분 동안 들으면 살기가 싫어졌다”며 “평생 누가 날 소중하게 대해주는 걸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9년 체벌 중 홍두깨로 어머니 때린 적도

어머니의 체벌을 견디다 못한 지군이 어머니께 반항한 적도 있었다. 지군이 고1인 2009년에 체벌을 받던 중 홍두깨로 어머니를 때렸다. 

어머니는 머리를 꿰매고, 금이 간 오른쪽 팔꿈치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지군은 “어머니에게 오랜 시간 혼나다가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다”며 “어머니를 때리면 기절하실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남편과의 별거는 어머니 박씨가 지군에게 더 집착하는 계기가 됐다. 

결혼 직후부터 성격 차이로 별거를 거듭하던 부부는 2006년부터 남편이 집을 나와 다른 여자와 동거하면서 완전히 갈라섰다. 

지군은 “이때부터 아버지가 완전히 싫어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거를 시작하자 지군에게 “네가 가장으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네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야 날 버리고 나간 친가 쪽 사람들이 굽실거리고 들어오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건 발생 두달 전인 지난해 1월부터는 협의이혼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지군의 사이가 항상 나빴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하루에 한두시간씩 대화를 나눴다. 어릴 때부터 겨울방학이면 매년 함께 강원도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강원도에 가지 못해 도시락을 싸서 집 근처에 있는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소풍을 가기도 했다. 

이웃집 남성은 “두 사람이 잘 지낼 때는 손잡고 집을 나와서, 아들이 엄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저녁 먹으러 가곤 했다”고 기억했다. 지군은 어머니가 죽은 뒤에도 거실에 놓인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담은 액자 5개를 치우지 않았다. 

지군은 “어머니가 변덕이 심하고 완벽주의적이라 정이 안 갔지만, 절약해서 매일 고기반찬을 해주시는 등 생활력과 교육열은 존경스러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중학교 때처럼 좋게 나오지 않았다. 

수학이 1학년 때부터 2학년 때까지 70→83→62→48점으로 점점 떨어졌다. 

수능 모의고사인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선 전국 1만~3만등으로 어머니가 원하는 서울대에 갈 수준은 되지 못했다.

어머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 나오자 지군은 고1 때부터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전 과목 100점에 전교 1등으로 내신성적표를 고쳤다. 

수능 모의고사는 전국 2700→1200→700→500→250→62등으로 성적표를 위조했다. 

전국 석차를 추정할 수 있는 백분위를 90.58%에서 99.58%로 고치는 식이었다.

어머니는 ‘전국 62등’ 성적표로도 만족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전국 1등도 할 수 있다”며 지군이 고2가 되어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지군이 더 공부에 전념하도록 매의 강도와 빈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체벌용 야구배트도 새로 구입했다. 한달 중 안 맞고 지나가는 날이 두세번밖에 안 될 정도였다고 했다. 

지군은 “어머니가 한번 체벌하기 시작하면 7~8시간 동안 때리고, 잔소리하고, 다시 때렸다”고 말했다. 

지군은 잠을 못 잔 상태로 엉덩이에서 나는 피를 지혈하기 위해 바지에 수건을 넣고 학교에 갈 때가 있었다. 

친구 김아무개(19)군은 “지군과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지군의 허벅지·엉덩이·등에 피멍이 든 것을 보고 놀랐다”며 “종아리가 피멍이 들고 부어 있어 정말 두꺼웠다”고 말했다. 

지군이 견디다 못해 가위로 자신의 손목을 그은 적도 있었다. 지군은 “고등학교 입학한 뒤부터 엄마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장검증이 끝난 다음 들여다본 지군의 집 거실은 옷과 쓰레기 등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지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뒤 집을 거의 치우지 않고 지냈다. 경찰 관계자는 “지군을 검거할 당시부터 집안이 심하게 어질러져 있었고, 현장검증을 하면서 집안 상황을 거의 그대로 보존했다”고 말했다. 지군의 변호사는 “지군이 어머니를 살해한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류우종 기자 <a href=wjryu@hani.co.kr">

현장검증이 끝난 다음 들여다본 지군의 집 거실은 옷과 쓰레기 등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지군은 어머니를 살해한 뒤 집을 거의 치우지 않고 지냈다. 경찰 관계자는 “지군을 검거할 당시부터 집안이 심하게 어질러져 있었고, 현장검증을 하면서 집안 상황을 거의 그대로 보존했다”고 말했다. 지군의 변호사는 “지군이 어머니를 살해한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류우종 기자 <A href="mailto:wjryu@hani.co.kr">wjryu@hani.co.kr</A>


“그때 잠만 잤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

지군은 주변에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었다. 지군은 “(어머니한테 심하게 체벌당한다는 이야기를) 선생님한테 했다가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면 더 혼날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았고, 친구들한테 말해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며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군의 고2 담임교사는 검찰 조사에서 “지군이 맞고 다닌다는 느낌을 받았다거나 지군의 친구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은 바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군은 대학에 진학하면 어머니와 따로 살 생각에 하루하루 버텨나갔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어머니 박씨는 평범한 성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군의 아버지는 “내가 노점상을 할 때였는데, 아내가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니 에쿠스를 사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샀다가 6개월 뒤에 1000만원 손해 보고 판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수면제를 먹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10년 전 자신의 아버지와 싸운 다음 친정과 연락을 끊고 지내다, 2010년에 아버지와 동생을 한번 만난 뒤로 다시 왕래 없이 지냈다.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선 지군과 가족 진술을 토대로 박씨가 “친척이나 이웃과 왕래가 없었고, 친구 2명과 가끔 왕래하는 정도로 인간관계가 협소해 대인기피적인 모습이 있었다”고 봤다. 

지군은 “어머니가 누군가 자기를 아껴주길 원했는데 그런 게 충족이 안 되다 보니 상당히 변덕스러웠다”며 

“‘왜 나한테는 신경 안 써주냐’고 하셔서, 신경써 드리면 ‘공부나 하지 왜 나한테 신경쓰냐’고 혼내셨다”고 말했다.



지군이 범행을 저지른 날도 지군은 어머니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았다. 

지군이 어머니를 살해하기 3일 전인 10일부터 지군의 어머니는 지군에게 “정신력을 길러라. 밥의 감사함을 알아야 한다”며 단식을 시켰다. 

11일에도 공부하다 존다고 밤새 매를 맞았다. 






12일 밤 11시부터 범행 당일 아침 8시까지 잠도 자지 못하고 지군은 5차례에 나눠 200대가량을 골프채로 엉덩이를 맞았다. 

지군은 “잠을 못 자니 누가 건드리면 주먹이 나갈 것 같고, 짜증나고, 짐승처럼 됐다”며 

“그때 잠만 잤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지군이 매 맞을 당시 입었던 바지의 엉덩이 부위에서 지군의 피가 검출됐다.


감정을 내보이긴 싫었지만

경찰에게 범행을 고백할 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혼자 속죄의 기도를 했다

지군은 어머니를 죽인 이유를 “다음날 학부모 총회에서 어머니가 성적표 위조한 것을 알게 되면 나를 때려서 죽일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학부모 총회는 22일로 살해한 날보다 9일 뒤에 열린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검사는 “성적표 위조가 발각당할 두려움보다는 어머니로부터 받는 통제와 체벌에 대한 분노감이 표출된 것”이라며 지군이 의지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담당 변호사는 “지군이 살해를 결심할 당시 학부모 총회가 다음날 열린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지군이 성적을 조작한 일로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죽이고 난 뒤 지군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놓아버렸다. 잠이 들면 꿈에 엄마를 죽이는 순간이 반복 재생됐다. 어머니가 웃으면서 어린 시절의 지군에게 달려오다가 눈과 목에서 피를 흘리고 얼굴이 검게 변해서는 지군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악몽도 꿨다. 잘 때도 불을 다 켜놓고 잤다. 벗어놓은 옷과 이불과 쓰레기로 집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질러져 있었다. 

술과 담배도 시작했다. 소주 반병을 마시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어머니의 사체를 처리할 생각은 못했느냐”고 묻는 검사의 질문에, 지군은 “그 일 있고부터는 삶의 의욕이 없어서 막장처럼 살았고, 시체 처리나 이런 거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고 답했다.

안방에서 썩어 들어가는 어머니의 주검을 잊기 위해 영화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같은 온라인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 빠져들었다. 

100만원짜리 모형 총을 3자루 사고, 모형 검을 수집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지만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제대로 해보지 못한 취미였다. 

집에 혼자 있기가 두려워 친구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 먹고 게임을 했다. 

지군의 집에서 한달에 두세번 같이 잤다는 한 친구는 “처음에 집에 갔을 때부터 조금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는데, ‘집 안이 워낙 더러워서 나는 냄새인가 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꿈은 ‘평범한 삶’… 어머니 유산 기부할 예정

지군은 고통의 근원이었던 공부를 주저 없이 포기했다. 

내신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1, 2학년 때 90점을 항상 넘었던 영어도 3학년 1학기 때는 48점으로 주저앉았다. 

수학 점수는 28점, 한국지리는 18점이었다. 

시험 기간에 학교를 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태연히 수능을 보러 갔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지군은 수능시험도 보러 갈 생각이 없어 학교에서 수험표도 받아가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지군이 수험표를 받아가지 않았다고 알려줘, 아버지가 지군에게 전화해 화를 낸 뒤에야 지군은 수험표를 받아 수능을 쳤다. 

수리영역 시간에는 잠을 자서 7등급이 나오고, 언어영역은 4등급이 나왔다.

지군이 어머니를 살해한 뒤 곧바로 자수하지 않은 이유는 여자친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군은 1학년 때부터 좋아하던 같은 학교 동급생과 범행 이후인 6월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어머니의 빈자리를 여자친구로 채웠다. 

지군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여자친구 집 앞에 가서 자전거에 태워 등교했고, 수업이 끝나면 밥을 사주고 자전거에 태워 집으로 데려다줬다. 

지군 여자친구는 검찰 조사에서 “왜 성적이 떨어지는지, 왜 학교에 자주 빠지는지 지군에게 물어봤는데, 지군은 ‘삶에 미련이 없다. 너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말을 해서 그러지 말라고 다독이곤 했다”고 말했다. 

지군은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살해 후 바로) 자수했을 것 같다. 같이 있는 행복한 시간이 꿈만 같고 깨고 싶지 않았다”며 울먹였다.


지군을 조사한 경찰과 치료감호소의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엄마 살해에 대한 죄책감은 결여되어 있었다”고 봤다. 

하지만 경찰 조서에는 지군이 어머니를 죽이는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의 중간에 “(이때 피의자는 눈물을 흘리며)”, “(피의자는 심하게 흐느끼며)”라는 경찰관의 묘사가 적혀 있다. 

지군은 검찰 조사에서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며 “혼자 기도할 때는 (어머니 생각에) 감정이 격해지면서 제가 죄인이고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으니 평생 속죄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재판을 앞둔 현재 지군의 꿈은 ‘평범한 삶’이다. 지군은 보호관찰관에게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지군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남긴 유산의 일부를 기부할 예정이다. 

어머니 박씨는 3억원의 유산을 남겼다. 지군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집과 생활비다. 

유산을 상속할 권리는 아버지 지씨에게 있다. 지씨는 “3억원을 다 기부할지 아니면 아들의 출소 후를 위해 절반은 남겨둘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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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남매 父 엽기살인...이전 패륜범죄들을 살펴보니
존속살인은 죄의 유무를 떠나 행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글 | 이상흔 조선pu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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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10일 오후 광주 북구 오치동 북부경찰서에서 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를 받고 있는 용의자가 조사를 받기 위해 얼굴이 가려진 채 이동하고 있다.

가족을 상대로 한 패륜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광주에서 어버이날 40대 남매가 여든 가까운 아버지를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 남매는 평소 아버지와 왕래가 없었고, 아버지가 자신들의 어머니를 괴롭히고 평소 폭력적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범행을 촉발시킨 직접적 동기는 기초수급자인 아버지 소유의 작은(18평)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패륜(悖倫) 사건을 두고 경중(輕重)을 나누기가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정도로 만으로도 이번 사건은 가히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역대급의 패륜범죄로 기록될 만하다. 먼저 범죄 방법이 너무나 끔찍하다. 아무리 아버지가 밉다고 해도 계획적으로 낮에 아버지와 대면한 상태에서 다양한 흉기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해 잔인하게 죽인 경우는 흔치 않다. 더구나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40대의 남매가 사전 작당을 해서 80이 가까운 힘없는 아버지를 이토록 끔찍하게 죽인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 남매는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억하는 최악의 패륜사건은 1994년 일어난 ‘박한상 부모살해 사건’일 것이다. 박한상 사건은 지금까지도 패륜사건의 대명사처럼 오르내릴 정도로 당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어학연수 시절 박한상(당시 23세)은 부모가 보내준 돈을 도박으로 탕진했다. 이후 아버지에게 ‘호적을 파 가라’는 등의 질책을 자주 듣자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박한상의 부모는 약재상을 운영하던 100억원대의 자산가였다. 박한상은 부모만 없으면 그 재산을 독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부모가 잠든 사이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증거 인멸을 위해 불을 질렀다.
 
이 사건을 접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박한상 이전에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존속살해 사건이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 우발적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박한상의 경우는 재산을 노리고, 길러준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는 당시만 해도 유례를 찾기 힘든 잔혹한 패륜범죄였다. 신문과 TV는 연일 박한상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각종 TV토론도 수없이 열렸다. 조기유학의 문제점, 인성교육 부재, 황금만능주의, 1등 제일주의 등등 나올 수 있는 문제점이란 문제점은 죄다 나왔고, 진단이라는 진단은 모두 쏟아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사회가 그토록 큰 집단충격에 빠졌던 것은 진심으로 이 사건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자식이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계획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당시 기준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패륜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안타깝게도 박한상 사건은 서막에 불과했다. 박한상이 이후 벌어진 일련의 패륜사건을 보고 자신이 저지른 패륜은 패륜 축에도 들지 못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한상 사건 이후 패륜범죄는 급증하였으며, 존속살해가 특별한 뉴스로 취급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이 되었다.
 
부모를 살해한 후 방화한 혐의로 구속된 박한상이 1994년 11월 4일 서울 지방법원에 선고공판을 받으러 입정하고 있다. 박한상 사건은 그동안 패륜사건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조선DB

급증하는 존속살인사건
 
흔히 패륜범죄라고 하면 직계 존속(尊屬)이나 비속(卑屬: 아들과 손자 등)을 상대로 한 범죄를 말하지만, 비속 범죄는 일단 제외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인 존속살인의 경우만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00년 5월 고대생 이은석이 부모를 살해한 후 토막 내 큰 충격을 주었다. 이씨의 범행 동기는 가정불화였다. 해군장교 출신의 엄격한 아버지 아래서 자란 이씨는 아버지의 잦은 체벌과 잔소리, 부모가 형을 편애하는 상황 등을 참지 못하고 양부모를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2005년 9월 충북 진천의 박모씨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에 살해당했다. 아들은 친구 2명과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인근 공터에 암매장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행패를 부리는 데 홧김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2005년 2월에는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과 자신의 친어머니, 오빠 등을 수면제를 먹이고 눈을 찔러 실명시키거나 살해한 엄모라는 여인이 검거되기도 했다.
 
2011년 3월 서울 광진구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 우등생으로 알려진 지모군이 공부하라고 나무란다는 이유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후 8개월간 안방에 내버려뒀다가 검거됐다. 지군은 8개월 동안 어머니의 시체를 숨긴 채 생활하며 친구들과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이 사건은 어머니의 과도한 체벌과 공부에 대한 압박이 원인이라며 언론의 큰 동정을 받았다. 지군은 심신미약 상태에서 어머니를 죽였다 하여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밖에도 지난 10여 년간 존속살해 사건을 보면 도박 빚 때문에 아버지를 살해한 후 가방에 넣어 버린 사건, 술값을 주지 않는다고 어머니를 때려죽인 사건, 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제초제를 먹여 살해한 사건,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사건, 외손자가 할머니를 폭행해 살해한 사건, 돈을 노리고 친구를 동원해 친할머니를 살해한 사건 등 일일이 사례를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존속살인 및 존속폭행, 부부 사이 폭행 등 패륜범죄는 9만4,766건이다. 이 가운데 부모를 살인한 사건은 544건이었고, 부모를 폭행한 사건도 5,537건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번 광주 남매 아버지살해 사건은 지금까지의 모든 패륜사건을 합쳐놓은 ‘패륜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패륜사건의 대명사로 꼽히는 박한상 사건이나, 고대생 이은석씨 부모 토막살해 사건의 경우 부모가 잠든 사이에 범행을 저질러 이들 부모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아들 손에 죽는다는 끔찍한 사실을 몰랐다. 범행 당시 20대 초반이던 이들은 범행 후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버지를 살해한 남매는 조사과정에서 스스로 얼굴을 공개하겠다 거나 아무 죄가 없다고 하는 등 지금까지의 패륜범죄 공식과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어 보는 사람을 당혹게 하고 있다.
 
존속살인을 가중처벌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형법은 존속살해 사건의 경우는 가중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반살인의 경우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지만,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조항이 들어간 것은 우리의 도덕과 법 감정이 존속살인을 일반살인보다 중한 범죄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조선 500년 동안 존속살해 사건은 열 손가락에도 꼽기 어려울 정도로 사례가 희귀하지만, 일단 존속사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사형으로 다스렸다. 이는 사고든, 고의든, 실수든 예외를 두지 않았다. 세종대왕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패륜사건을 보고 받고는 자신의 부덕(不德)을 자책하며 몇날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세종은 백성이 제대로 교화가 되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느냐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펴내 백성의 도덕과 인성교육에 힘쓰게 했다.
 
우리는 그동안 천인공노할 엽기범죄와 패륜사건에 대해 가정폭력이나, 개인성격, 재산 다툼 등의 가정사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대해왔다. 그 결과 패륜사건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 지고, 오히려 일반 살인사건보다 더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측면도 있다. 실제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어머니와 딸이 모의해서 살해한 사건의 경우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많은 사람은 이들 모녀에게 응원을 보냈고, 아버지는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이번 남매 아버지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이들의 범행동기를 가장 손쉬운 가정폭력에서 먼저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천륜을 어긴 패륜행위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나 우려가 끼어들 틈이 점점 사라진다. 
 
존속살인은 법률적인 죄의 유무나 정당방위 논의를 떠나 범죄 자체에 대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중대사건이라는 것을 먼저 인식할 때다. 즉 단순히 법의 판결을 기다린 후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형법이 근대 다른 나라에 형법에는 없는 패륜범죄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을 둔 것은 단순히 형을 1~2년 더 살게 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닐 것이다. 존속살인은 인간이라면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인간성 혹은 천륜과 관계된 범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 각자가 세종대왕처럼 패륜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진정으로 부끄러워했다면 오늘날 광주 남매와 같이 부모를 죽이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보그들 자식들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동학대의 대물림에 대해서 날 짜 : 2015-05-21 조회수 : 1,002


2000년 친부모를 토막살해한 범죄자. 현재 무기수로 복역 중. 
이은석은 패륜아의 대명사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 배경이 전혀 다르다.

이은석은 해군사관학교 장교출신인 아버지와 명문 여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어머니,
즉 전형적인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모범적인 학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가정은 그리 화목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이자 원리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도 군대식 교육을 시켰다.

또한 자신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면서도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완벽주의자이자 히스테릭 증상이 심했다.
특히 아들들에게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 (영부인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음)
부부 사이도 매우 좋지 않아 각방을 쓰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이은석의 형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 부모가 한 방을 쓰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부부는 원래 각방을 쓰는 것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부부싸움이라도 했다 하면 한 달 이상 대화 한마디도 없는 일이 예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부모 양쪽 모두 아들, 특히 이은석만 보면 항상 불만을 표시했고 말도 안 되는 잔소리를 자주 퍼부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다.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집어던지고(초등학교 4학년, 이 젓가락에 맞은 창문에 금이 갔다)
만화를 그린다고 머리카락을 잡아뜯는 식의 폭력이었다.
그의 부모는 늘 남들과 비교했고 성적,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광적인 히스테리와 폭력을 행사했다. 
이은석이 어릴 때는 만약을 대비해 야구 방망이까지 숨겨 놓았다고 할 정도로 부모,
특히 어머니는 그를 매번 심하게 질책하고 모욕을 주기만 했다. .

하나 웃긴 것은 어떤 일이든 이렇게 심하게 때리고 혼을 낸 후에는 항상 회개 기도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는 내성적으로 변해가고 대인 기피증이 생기게 되었으며 학창 시절에는 이러한 성격에 작은 키 때문에 놀림까지 받으며 속칭 왕따가 되었고 그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급우까지 있었다. 어찌나 그 급우를 증오했는지 사건 후에도 언젠가는 그 급우를 죽여버릴 거라며 이름을 되뇌일 정도였다. .

공군 입대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군대에서는 기수열외급 대우를 받아왔으며 그는 후임병들에게도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그의 한달 후임이 그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 광경을 본 선임들이 이은석 쪽을 혼낼 정도였다.

하지만 부모는 이은석의 고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버지는 군인이라는 직업상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오면서 아들을 본체만체했고 그런 아버지를 기피하면 "사내놈이 왜 그러냐", "굼벵이 같은 자식" 이라고 쏘아붙였다. 그가 군대에 가있는 3년 동안 부모는 면회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으며 군대에서 제대한 후에도 인격적 모욕과 멸시는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이은석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이 형은 이은석과는 달리 꽤 과격하고 불같은 성격이라
부모의 막장 행동에 염증을 느끼고 사춘기에는 이은석과 달리 계속 반항하면서 부모와 충돌하곤 했다. 
부모는 이러한 형을 골칫거리로 여겼지만 이은석에 비해 형이 부모로부터 받은 정신적 데미지는 훨씬 적은 셈이다.

결국 형은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는 이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형에게 화해를 청하며 독신자 아파트를 마련해주고
나름대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아파트를 마련할 돈을 이은석의 명의로 대출받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은석은 어머니가 또 혼을 내자 결국 참았던 것들이 모두 폭발하면서 어머니와 무려 4시간에 걸친 말싸움을 했다. 

이 때가 살해를 저지르기 열흘 전이며 이은석에게는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한 제대로 된 반항이었다. 

말싸움을 하면서 그동안 쌓이고 쌓인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냈지만 어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면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냔 말이냐?" 라며 오히려 이은석을 못된 자식으로 몰아갔다. 

또한 아버지에게도 그 동안의 분노를 울면서 모두 쏟아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그런 건 그때그때 이야기해야지 왜 이제 와서 꺼내느냐, 사내놈이 한심하게도 이 모양이니" 이라는 멸시와 모욕 뿐이었다.

이 마지막 대화에서 단절을 느낀 이후에는 6일동안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부모는 그런 이은석을 보고도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은석은 6일간 방에서 혼자 지내면서 그는 부모와 잘 지내기는 틀렸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살인을 결심했다.

이은석은 사건 당일 새벽 양주를 연거푸 마신 후 어머니를 망치로 때려 살해하고 약 4시간 후 아버지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어머니를 먼저 살해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막상 어머니를 죽인 후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는 죽이지 못하고 4시간 동안이나 방 앞을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했지만 날이 밝아오자 아버지가 잠을 깨서 이 광경을 보고 "혼낼 것"을 걱정한 나머지 결국 아버지도 살해한다. 

둘을 한번에 죽이지 않고 4시간의 시간차를 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다. 

그리고 무려 이틀에 걸쳐 시신을 토막내 여러 곳에 유기하고 청소 및 뒷처리를 했다.

어머니의 경우 자신의 성깔을 아득히 능가하는 친정 어머니(이은석의 외할머니)로부터 더 심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아버지는 알고 보면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이은석과 유사하며 어린 시절 형(이은석의 큰아버지)만 편애하는 아버지(이은석의 할아버지) 밑에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와 형을 증오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를 강요한 이유도 바로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었다. 

즉, 이은석 사건은 결코 행복하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룸으로써 생긴 비극이었다고도 할 수 있으며 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며 극단적인 아동학대의 대물림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은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방법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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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범죄방지대책 시급해

작성일 : 2016-06-22 10:48



김용준 법학박사(국제문화대학원교수, 한국범죄방지사협회장)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오늘날 왜 지경이 되었는가? 

정말 한심한 일이다. 

이번 2009년 마지막 한해를 보내는 끝 자락에 전남영암에서 큰아들에게 무참히 살해 된 전남 영암 군청직원 김모(51) 씨 부부의 살해 사건은 또 한번 우리에게 경악과 허탈감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범죄 중 세간을 놀라게 한 주요범죄를 살펴보면 94년 부모를 죽이고 불을 지른 박한상(23세)사건이나 95년 김성복 교수의 살부(殺父) 사건이나 2000년 이은석(당시25세)의 부모 토막살해사건, 2002년 아버지와 친할머니를 살해한 이모씨의 사건, 2004년26세의 딸이 어머니와 공모하여 평소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폭행 후 토막살해한 사건, 2005년 신용불량자 27세의 자녀가 거액의 재산을 노리고 어머니를 목졸라 살해 후 사체를 유기한사건, 2006년 5월 12일 군입대를 앞둔 28세의 아들이 도박 빛을 꾸짖는 아버지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사건, 2008년 6월7일 범인 김모(당시20세)가 선배인 조모(당시21세)와 공모하여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하여 친어머니인 강모(당시42세)씨를 살해한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2009년 30일 정성국 강원지방경찰청 검시관 등이 최근 한국법과학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1734건의 살인사건 중 존속살인은 72건으로 4.2%를 차지하고 연평균으로 보면 매년 50건 내외의 존속살인이 발생, 전체 살인사건에서 약 5%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 이는 미국 2%, 프랑스2.8%, 영국 1% 등 외국보다 많게는 5배나 많은 수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가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는 한 「우리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그동안 외쳐대던 교과서적인 말을 우리는 어떻게 또 다시 사용 할 수 있는가 나를 나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을 살해하는 것은 짐승이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이런 범죄가 일어날 때 마다 우리나라 특유의 유교적 사상에 얽매여 「세상이 말세다 」라고 한탄만 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본다. 

이러한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요인과 그 대책을 필자 나름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요인과 대책으로는 

첫째, 이번 정검시관이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범죄는 정신분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외국에서 발표한 논문에서도 이러한 통계수치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바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국가차원의 각별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본다. 

둘째, 자녀의 과보호와 자녀에 대한 지나친 기대심리로 부모의 잣대나 눈높이에 맞추어 어느 한 방향으로 가기를 강요하기 때문에 자녀가 설자리가 없는 불안감으로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서 범행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따라서 자녀의 개성이나 적성 등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진학이나 진로선택 등에 있어서 자녀자신들에게 선택권을 주어 자신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본다. 왜냐면 우리인간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숙해 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제대로 된 인성교육과 윤리교육의의 부재가 범죄의 주요요인 이라고 볼 수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리던 시대는 정말 윤리교육과 인성교육에 바탕을 둔 교육제도였다. 당시인 조선시대의 교육과목은 유아시절에 배우는 4자소학 은 물론 명심보감,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의 교육과목이 대부분 효와 예절 도덕교육과 인성교육에 바탕을 둔 교육이었던 것에 비하여 오늘날은 이러한 교육과목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보니 이러한 범죄가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성에 바탕을 둔 교육과 윤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이러한 패륜범죄가 근절될 수 있다고 본다. 


이동철 admin@klpnews.com <한국법정,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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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멋진만남 2018/06/05 20:15 # 삭제 답글

    오죽했으면 이은석씨의 친척들이 단한번도 찾아오지않았던거 이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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