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중유中有의 존재는 음식 냄새를 맡음으로써 생을 이어간다고 보면서 조령제를 수용하였다. 귀신은 맛은 못봐. 대신,흠향 이라고 냄새를 맛보지. + 골목길의 향냄새 괴담, 체험담, 옛날이야기




천도재


한자명
薦度齋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갱신일 2016-10-19

정의

망자亡者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



역사
천도재薦度齋는 고대 인도의 조령제祖靈祭를 불교에서 수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인도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프레타(preta)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조령祖靈이 되는데, 조령이 되기 위해서는 제를 지내야한다고 보았다. 

이때의 프레타는 귀鬼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굶주려 있고 미혹과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라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생전에 지은 선악과 무관하게 조상으로 좌정하는 유교 조상신과 달리, 종교적 구원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불교에서도 중유中有의 존재는 음식 냄새를 맡음으로써 생을 이어간다고 보면서 조령제를 수용하였다. 




+
중유(中有)

중음(中陰)이라고도 한다.

윤회전생(輪廻轉生)할 때에 이 생을 끝내고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존재.

극선(極善), 극악(極惡)한 사람은 죽으면서 바로 다음 생으로 간다 한다.

 

중음(中陰)

사람이 죽은 뒤에 다음생을 받아 날 때까지의 칠칠일(七七日)까지를 중음이라 한다.

극히 선하거나 극히 악한 업을 지은 사람은 죽으면서 곧 다음 생을 받음으로 중음이 없으나 보통으로는 이 중음으로 있을 동안에 다음생의 과보가 결정된다고 함.

출처: http://studybuddha.tistory.com/2547 [불교용어 사전]



그 뒤 중국불교에서는 굶주린 아귀에게 음식을 베푸는 법회라하여, 이를 ‘시아귀회施餓鬼會’라고 불렀다. 이처럼 조령제는 윤회사상에 입각한 불교 중유설의 성립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망혼을 위한 의례에 종교적 근거를 제공하면서 시아귀회를 거쳐 오늘날의 천도재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망자를 위해 재를 올린 기록이 등장하며, 고려시대 이후 왕실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사십구재四十九齋인 칠칠재七七齋에서부터 기재忌齋에 이르기까지 상례喪禮・제례祭禮 기간에 다양한 천도재가 활발하게 치러졌다. 

이 외에도 970년(광종 21)에 수륙재水陸齋를 행한 기록과 1106년(예종 원년)에 우란분재盂蘭盆齋를 행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 시왕신앙十王信仰이 성행한 점으로 미루어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또한 고려시대에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중반까지는 망자를 위한 불교의례를 주로 ‘추천追薦’이라 불렀다. ‘천도薦度’라는 용어는 고려 말에 처음 등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혼상제를 비롯한 모든 생활규범이 유교적 질서로 대체되는 가운데 사후구제를 제시하는 천도재는 유교의 상례・제례와 더불어 나란히 존속해왔다. 1420년(세종 2)부터 불교식 상제喪祭에 해당하는 모든 천도재를 수륙재로 치르도록 하는 등 여러변화를 거치면서도 천도재는 조선시대 내내 성행하였다. 18세기 이후 기존의 문헌들을 간추려 펴낸 『범음집梵音集』・『작법귀감作法龜鑑』 등의 의식집 내용이 천도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경향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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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불교에서는 삼보에 공양을 올리고 그 공덕을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의례를 ‘재齋’라 하며, 망자를 위해 올리는 재를 ‘천도재’라 한다. 천도薦度의 ‘천薦’은 ‘천거하다’, ‘도度’는 ‘법도’의 뜻이다. 글자 자체의 뜻만으로도, 천도는 불보살의 힘으로 망혼을 극락과 같이 좋은 곳에 보내줄 것을 천거하는 법식임을 알 수 있다. 장례를 마친 이후 망혼에게 지내는 불교의례는 모두 천도재에 해당하며, 기일이나 명절에 사찰에 와서 지내는 제사도 ‘재’로 수용되면서 ‘천도’의 뜻을 지닌다. 특히 임종 후 중유에 머무는 동안 치르는 사십구재는 천도재의 핵심을 이룬다. 이 기간에 천도재를 지냄으로써, 망자의 영혼이 더욱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천도재는 의례의 목적과 양상에 따라 사십구재・수륙재・영산재・생전예수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십구재는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까지 중유로 머무는 49일 동안 치르는 천도재이며, 수륙재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위한 무차평등無遮平等의 천도재라 할 수 있다. 영산재靈山齋는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당시 법회의 환희를 재현하여 치르는 천도재이며, 생전예수재는 내세를 위해 명부세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모시고 생전에 미리 천도재를 올려 공덕을 쌓는 의례이다. 이 밖에 백중百中이자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인 음력 7월 보름에 승려들을 공양하면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우란분재의 경우는 특정한 날에 치르는 천도재에 해당한다. 이들 천도재는 대부분 고려시대부터 성행했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각 사찰에서는 명절이나 특정한 때에 다양한 천도재를 지내고 있다.

천도재는 의례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치러지지만, 기본적인 의례구조는 유사하다. 가장 간략한 구도를 살펴보면, 천도재의 대상을 의례공간으로 청해 모시고, 생전에 지은 업을 씻는 정화의식을 거친 다음, 불보살 앞으로 나아가 공양과 불공을 올리며, 망혼에게 시식施食을 대접하고 다시 돌려보냄으로써 의례를 마친다. 이때 극락천도를 위해 불보살에게 올리는 기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망혼을 향해 끊임없이 법문을 들려줌으로써 미혹한 마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천도재에는 유교제사의 음식공양과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공양法供養이 결합되어 있다. 이처럼 민간의 제사를 재에 접목했기 때문에, 망혼을 모신 영단 앞에서 치르는 시식의 단계는 제사와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불교의 재齋는 제사와 뚜렷이 구분되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재齋는 불佛・법法・승僧이라는 삼보三寶의 범주 속에서 이루어진다. 불보살[佛]을 모시고 승려[僧]의 집전과 불법[法]의 염송으로 의식을 치르므로, 영단 앞에서 유족이 올리는 의식은 일반제사와 다를 바 없으나 승려의 염송 내용이 곧 제사의 의미를 규정하는 텍스트의 구실을 한다. 둘째, 제사의 의미가 고인에 대한 추모와 효의 실천이라면, 재는 이에 더하여 망혼을 더욱 좋은 내세로 인도하기 위한 천도의 의미를 지닌다. 천도의 방식은 불보살의 가피加被를 기원함과 동시에, 망자에게 불법을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깨우침을 얻도록 하는 불교 특유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셋째, 개인을 위한 천도재라 하더라도 천도되지 못한 채 떠도는 모든 고혼孤魂과 지옥중생을 함께 의례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불교에서 중시하는 회향廻向의 실천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자신이 지은 선행의 공덕을 중생을 위해 돌리는 것이다. 넷째, 상차림에서 육류・어류와 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곧 불교 재물齋物과 일반 제물祭物의 기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특징 및 의의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후의례는 유교식 상례・제례가 주축을 이루었지만, 불교 천도재와 무속 넋굿이 각기 담당하는 영역은 비교적 뚜렷하였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의식의 변화로 사후의례가 약화됨에 따라, 천도재가 점차 전통적 죽음의례에서 통합적 구실을 담당해가고 있다. 불교적 믿음과 무관하게 탈상脫喪을 위해 사십구재를 선택하는가 하면, 집에서 제사를 치르기 힘든 이들이 사찰에 의뢰하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생전의 문제로 눈을 감지 못하는 망혼의 해원解寃은 무속의 넋굿이 맡아왔으나, 무속환경이 위축되면서 이러한 기능을 천도재에서 폭넓게 수용해가고 있다. 죽음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할지 몰라도, 죽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관념적 문제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본연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천도재는 사회적・문제적 죽음에 대응하고 여론을 환기하는 공동체적 제의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갈등으로 초래된 문제적 죽음을 맞아, 종교를 초월한 일종의 위령제로 망혼을 천도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천도재는 사찰별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주로 사회단체와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실행되고 있어, 의례의 당위성을 공감하는 공동체구성원이 모두 의례주체가 되는 천도재의 궁극적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행하는 폐쇄적 구도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나아가는 이러한 현상은, 불교의 죽음의례가 공동체의 문제를 공유하고 성찰하며 화합으로 이끄는 자생적 힘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천도재가 앞으로 어떠한 변화의 경로를 거칠지 그 행보가 주목된다.

참고문헌

불교 상제례 안내(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조계종출판사, 2011), 불교 제례의 의미와 행법-시아귀회를 중심으로(정각, 한국불교학33, 한국불교학회, 2002), 여말선초 불교의례의 축소와 천도재의 역할(이응주,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한국불교 천도재의 중층적 위상(구미래, 역사민속학28, 역사민속학회, 2008), 한국불교의 일생의례(구미래, 민족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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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 기자승인 2007.08.07 18:05댓글 10
HOME 여시아사 마성단상 우란분재에 대한 오해
마성 기자승인 2007.08.07 18:05댓글 10글씨키우기글씨줄이기메일보내기인쇄하기페이스북트위터구글카카오스토리

 마성 스님/ 동국대학교 강사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제도나 의례 가운데 붓다의 본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원래의 뜻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인도어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간혹 어떤 것은 중국에서 의도적으로 바꾼 것으로 보이는 것도 발견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란분재(盂蘭盆齋)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7월 15일을 우란분절(盂蘭盆節) 혹은 우란분재(盂蘭盆齋)라고 부른다. 또한 이 날을 백중(百衆) 혹은 백종(白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자의 우란분절은 불교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후자의 백중 혹은 백종은 우리나라의 민속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우란분절 혹은 우란분재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백중은 불교와 전혀 관계가 없는 민간 풍습인 백종일(白踵日)에서 유래된 것이다. 음력 7월 15일은 절기상으로 농한기(農閑期)이기 때문에 농민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축제일이다. 이 날 우리 조상들은 백 가지 과실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풍류를 즐겼다. 현재 경남 밀양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백중놀이가 그 대표적인 풍습이다.

불교에서의 음력 7월 15일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율장(律藏)"에 의하면, 매년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3개월 동안은 우기(雨期)이기 때문에 승려들이 한 곳에 머물면서 수행하도록 제도화하였다. 이것을 안거(安居, vassa)라고 한다. 이 안거가 끝나는 날인 음력 7월 15일에는 자자(自恣, pavārana)가 행해진다. 자자란 안거 동안에 있었던 행위에 대해 서로 충고하고 참회하는 의식을 말한다.

이처럼 음력 7월 15일은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다. 즉 출가자는 안거를 마쳤기 때문에 승려의 나이[僧臘]가 한 살 많아진다. 이른바 승려의 생일인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행을 점검해 보는 뜻 깊은 날이다. 한편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크게 공양을 올리는 날이기도 하다. 즉 승재(僧齋)와 승공(僧供)을 베푸는 날이다. 예로부터 인도인들은 똑같은 공양물일지라도 아라한이나 수행력이 뛰어난 성자에게 올리는 공양의 공덕이 더 수승하다고 믿었다. 특히 3개월간의 수행이 끝나는 날 베푸는 공양은 더욱 값진 것으로 여겼다.

이 날 자자가 끝나면 스님들은 다시 각자 유행(遊行)의 길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스님들이 유행을 떠나기 전에 재가자들은 스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또한 가사(袈裟)를 공양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 남방불교에서 2,500여 년 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인도불교의 전통이 중국에 와서는 약간 변형되었다. 이를테면 아무리 극한 죄를 지어 아비지옥에 떨어진 자라 할지라도 많은 수행자들의 법력에 의해서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좀 더 확대되어 이 날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 천도재(薦度齋)를 지내는 날로 잘못 전해진 것이다. 중국의 역대 스님들도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운서주굉(雲棲袾宏, 1535-1615) 스님이 지은 "정와집(正訛集)"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이 7월 15일에 귀신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을 우란분대재(盂蘭盆大齋)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나 이는 와전(訛傳)된 것이며, 이 날 선조(先祖)의 혼령(魂靈)과 아귀에게 공양 올리는 것은 본래의 의미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 우란분재란 무엇인가? 우란분재의 근거는 "우란분경(盂蘭盆經)"("大正藏" 16, p.779)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경에 의하면, 붓다의 십대제자 중 신통제일이었던 목련(目連)존자가 비록 육신통(六神通)을 얻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귀도에 빠진 그의 어머니를 구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붓다께 자문을 구했는데, 붓다는 목련존자에게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에 승려들에게 공양을 베풀면 그 공덕으로 선망부모를 구제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목련존자는 붓다의 가르침대로 이 날 승려들에게 공양한 결과 그의 어머니를 구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매년 승려들의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에 여러 스님들에게 공양을 베풀면, 그 공덕으로 현재의 부모는 물론 과거 7대의 부모까지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란분재의 시초이다.

‘우란분(盂蘭盆)’의 원어는 범어 ‘울람바나(Ullambana)’이다. 이 울람바나를 중국에서 ‘우란분(盂蘭盆)’ 혹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 소리 나는 대로 번역하기도 하고, ‘구도현(救倒懸)’이라고 뜻으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구도현이란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즉 우란분이란 생전에 지은 무거운 죄업으로 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심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이 날 시방의 스님들을 청해 모시고 맛있는 음식으로써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우란분경"의 핵심 요지는 승재(僧齋) 혹은 승공(僧供)의 공덕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승재의 의미는 퇴색되고, 이 날 천도재를 지내는 것으로 잘못 정착되었다. 그리고 우란분재는 불교의 효(孝)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부모에 대한 효는 365일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 특별한 날에만 실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齋)와 제사(祭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재와 제사를 혼동하고 있다. 재(齋)는 재계(齋戒)를 말한다. 이를테면 재가자가 특정월(特定月)과 특정일(特定日), 즉 삼장육재일(三長六齋日)에 여덟 가지 계율인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제사(祭祀)는 ‘신령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표하는 예절’을 말한다. 불교에서 봉행하는 49재나 천도재는 제사가 아니다. 이것은 모두 재계(齋戒)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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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2011.05.2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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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륙재(水陸齋)

 수륙회, 수륙무차평등재의, 국행수륙대재 라고도 하며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고독한 영혼과 아귀를 달래기 위해 불법(佛法)을 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 

 중국의 양무제(梁武帝)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의식문을 만들어 505년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재(齋)를 베풀었다. 송대에는 동천(東川)이 수륙문(水陸文)을 지어 널리 보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21년 갈양사(葛陽寺)에서 수륙도량을 연 것이 효시다. 
조선조에선 억불에도 불구하고 수륙재는 맥을 이어갔다. 태조 이성계는 진관사(津寬寺)를 국행(國行) 수륙재를 여는 사찰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수륙재가 국행(國行)으로 치러지는데 대해 유생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러다가 중종대에 이르러서야 국행시연이 금지된다. 이 정도로 조선 초에는 불교문화의 맥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륙재의 의식절차는 여러 가지 문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먼저 수륙재를 올리는 취지를 밝힌다. 그리고 영신(迎神)과정으로 명부사자와 오방신, 불법승 삼보를 맞이해 공양한다. 이어 호법선신(護法善神)등을 맞이해 들인다. 그후에 천도할 영혼을 청한다. 이른바 청신(請神)과정이다. 이들에게 음식을 공양하고 오신(娛神)과정으로 범패(梵唄) 등의 불교예술이 시연된다. 태징, 요령, 목탁, 피리 등 여러 악기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물가에서 많이 치러진다.


수륙재

수륙회,수륙무차평등재의,국행수륙대재,라고도 하며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으로 그 시초는 중국 양나라 무제가 유주무주의 고혼들을 널리 구제함이 제일가는 공덕이라 생각하고(일설에 의하면 양무제의 꿈에 어떤 신승이 나타나 말 하기를 육도 사생의 중생들이 한 없는 고통을 받고 있거늘, 어찌하여 수륙재를 베풀어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가? 이 들을 제도하는 것이 모든 공덕 중에 으뜸이 되느니라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스님들과 상의하여 수륙의문을 만들게 하고 그 의식문에 따라 서기 505년 중국 금산사에서 시행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륙재가 실행된 것은 고려 광종 때(971) 수원 갈양사에서 혜거(惠居)국사가 시행한 것이 그 최초의 예이며 억불정책으로 불교의식이 유교의식으로 많이 바뀌어 졌던 조선시대에도 수륙재 만큼은 국행으로 성행 하였으나 중종 때에 이르러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국행으로 실행 됨이 금지되었고 민간을 통해서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http://studybuddha.tistory.com/1337 [불교용어 사전]



아 2011.05.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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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재(盂蘭盆齋)

음력 칠월 보름 돌아가신 조상님과 외롭게 떠도는 영혼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베푸는 영가 천도재. 백중 또는 백종이라 하며 불가의 4대명절 중의 하나이다.

 우란분절, 우란분회라고도 하며 백중, 백종과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데 지옥 중생과 아귀 중생들을 제도하고 지옥고를 받고 있는 망자를 위해 불사를 행함으로서 그 괴로움으로 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 불교 행사의 하나이다. 


 

 우란분경을 보면 석가모니부처님의 수제자였던 목건련(목련존자)이 선정에 들어가 지옥을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음을 알고 그 구제방법을 부처님께 묻자 부처님께서 7월15일 즉 스님들의 안거가 끝나는 날 여러가지 음식, 과일, 등, 초 등의 공양구를 준비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어머니의 제도를 기원하며 스님대중에게 공양을 베풀면 된다고 가르쳐 주셨고 이를 그대로 행하자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지옥에서 구제되었다는 고사에서 근거하고 있다.
 
 이에 의해서 사찰에서는 매년 7월13일에서 15일까지 3일간 선조의 영을 제사하는 불사를 행 하게 되었고 이를 우란분재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이후로 성대하게 시행되어 왔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민속명절인 백중과 결합하면서 일반 민중속에서 오늘날 까지 꾸준히 전승되고 있다. 

관련글 : 우란분절



출처: http://studybuddha.tistory.com/1354 [불교용어 사전]

목건련

보통 목련존자(目連尊者)란 칭호가 따라 다닌다. 범어로 목갈라나. 목건라야나(目?羅夜那)로 쓰며 흔히 줄여서 목련(目連)이라고 한다. 신통제일(神通第一)로 불린다. 

 수보리와 더불어 마가다국의 왕사성 근처 코리가에서 태어났다. 그러던 중 마승(馬勝)비구를 만나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받았다. 사리불의 권유로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더불어 죽림정사(竹林精舍)로 가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으로 부처님의 법을 지켰다. 사리불과 더불어 부처님보다 먼저 입적했다. 

관련글 ; 십대제자





출처: http://studybuddha.tistory.com/836 [불교용어 사전]

http://folkency.nfm.go.kr/kr/topic/%EC%9A%B0%EB%9E%80%EB%B6%84%EC%9E%AC/4635
우란분재

한자명
盂蘭盆齋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정병삼(鄭炳三)
갱신일 2016-11-08

정의

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 우란분재(盂蘭盆齋)는 흔히 백중이라 부르는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 행사이다. 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우란분이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에서 나온 말인데 ‘avalambana’가 전화(轉化)하여 생긴 말로서 거꾸로 매달려 있다[倒懸]는 뜻이다.

유래

우란분재는 불교 경전인 『우란분경(盂蘭盆經)』과 『목련경(目連經)』에서 비롯되었다. 『우란분경』에 의하면, 부처의 십대 제자 중에 신통력이 뛰어난 제자인 목련(目連)은 어머니가 선행을 닦지 못해 아귀도에 떨어져 배가 고파 피골이 상접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목련이 음식을 가져다주었으나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새까맣게 타서 먹을 수가 없었다. 목련이 비통해하며 그 원인을 물으니 부처는 죄업의 뿌리가 너무 깊어 그렇게 된 것이므로, 시방의 여러 승려들의 위신력(威神力)만이 구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방법으로 모든 승려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점검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는 7월 15일에, 과거의 7세 부모와 현세의 부모 중에 재앙에 빠진 자가 있으면 밥을 비롯한 백 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우란분(盂蘭盆)에 담고 향과 촛불을 켜서 시방의 승려들에게 공양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수행하고 교화하는 모든 승려들이 이 공양을 받으면, 현재의 부모가 무병장수하며 복락을 누리고, 돌아가신 조상은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 끝없는 복락을 누린다고 하였다.

『목련경』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목련의 모친이 살아서 악행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고생하는 것을, 목련이 대승경전을 외우고 우란분재를 베풀어 지옥, 아귀, 축생으로부터 차례대로 구제하여 천상에 태어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의식을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행하는 것은, 수행 정진하는 하안거(夏安居) 석 달 동안 보고 듣고 의심하던 일들을 서로 논의하고 잘못을 고백하여 마무리 짓는 마지막 날이어서 승려들에게 공덕을 올리기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내용
7월 보름은 흔히 백중이라고 하는데, 백종(百種), 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중날 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큰 행사가 열렸다. 불교의 4대 명절을 보통 불탄절(佛誕節), 출가절, 성도절, 열반절로 꼽지만, 이에 못지않게 성행한 것이 우란분절(盂蘭盆節)이었다. 불교가 동아시아 문화권에 들어와 유교의 효(孝) 윤리와 충돌하면서 효를 실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불교 배척의 중요한 논거가 되어 왔다. 이에 대응하여 불교계에서 설정한 우란분재는 돌아간 부모가 혹 좋지 못한 과보를 받으면 후손들이 이를 천도하여 천상에 태어나도록 한다고 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따라 우란분절은 초파일의 불탄절과 함께 불교계의 가장 대표적인 명절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인 양나라 무제 때 동태사에서 처음으로 우란분재를 지낸 이후 역대 제왕들이 우란분재를 설하였다. 이 행사는 7월 15일이 아닌 다른 날에도 행해졌고, 당나라 중기 이후에는 민속화된 행사로 정착되어 승려와 일반인들이 함께 우란분재를 시행하고 공양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우란분재가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고려 이전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일본에서도 이 재를 신라의 진평왕대부터 시행해 왔으므로 신라시대부터 시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우란분재가 여러 차례 개설된 것을 찾을 수 있다. 예종 때인 1106년에 궁궐의 장령전(長齡殿)에서 선왕(先王) 숙종의 명복을 빌고 천도를 바라는 우란분재가 거행되었고, 이는 1109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의종 때인 1153년에는 봉원전(奉元殿)에서 개설되었다. 충렬왕(忠烈王) 때인 1285년에는 신효사(神孝寺)에서, 1296년에는 광명사(廣明寺)에서 거행하여 고려 말에는 궁궐에서 사찰로 개최 장소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는데, 공민왕 때인 1356년에는 다시 내전(內殿)에서 우란분재를 개설하였다. 이들은 모두 부모를 비롯한 조상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으로서 7월 15일에 열렸다. 이 밖에 왕실 밖이나 각 사찰에서도 우란분재가 널리 열렸으리라 추측된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초기에는 우란분재가 시행되었다. 『태조실록(太祖實錄)』에는 태조 7년인 1398년 7월에 흥천사(興天寺)에서 우란분재를 설하였다고 하였다. 조선 전기의 풍속과 문물을 전하는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권2에는 “7월 15일을 풍속에서 백종(百種)이라 부르는데, 승가에서는 백 가지의 꽃과 과일을 모아 우란분재를 개설한다. 서울의 비구니 사찰에서 더욱 심하다. 부녀들이 많이 모여들어 쌀과 곡식을 바치고 돌아간 조상의 영혼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 때로는 승려들이 길가에 탁자를 놓고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모두 금하게 하여 일부에 그친다.”라고 하여, 이미 15세기 말에 국가의 금령으로 우란분절 행사가 크게 위축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끊이지 않고 중요한 행사로 전승되었다. 그래서 점차 일반화되고 민속화된 우란분절은 각 사찰에서 죽은 이를 위해 재를 지내는 행사로 널리 시행되었다.

우란분재 행사는 오늘날에도 과거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시행되고 있다. 음력 7월 15일에 사찰에서는 갖은 음식과 과일을 마련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조상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한다. 특히 초파일의 불탄절에 연등을 공양하여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에 비하여, 우란분절에는 백등(白燈)을 밝혀 죽은 조상을 추모한다.

오늘날 거행하는 우란분절 법회의 의식은 불탄절 봉축법회와 같은 절차로 행하며, 다만 고혼(孤魂) 영가의 조상을 천도하는 의례가 추가된다. 조상을 천도하는 특성에 맞추어 독경은 천수경(千手徑)이나 지장경(地藏經) 또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가운데 선택해서 시행한다. 요즈음 서울의 한 사찰에서 시행하는 우란분절 행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란분절 법회는 돌아가신 부모의 천도를 위해 승려에게 공양을 올리는 사은법회로 진행한다. 1부는 부처를 모셔 올리는 차례로 관욕(灌浴)과 상단불공축원이 진행된다. 2부는 삼귀의, 보현행원, 청법가, 설법, 우란분공양, 사은사봉독, 불자대중 삼배 순으로 진행된다. 3부는 영가시식과 봉송소전으로 진행된다. 우란분공양에서는 절의 신도회가 마련한 공양물을 절에 주석하는 대중승려에게 올리고, 이어 신도들이 합장하고 사은사를 봉독하며 승려에 대한 공경의 예를 다한다. 우란분공양에 앞서 대중스님들은 우란분경을 함께 봉송한다. 신도들이 마련한 우란분에는 승려들의 내의, 양말, 면 티셔츠, 치약, 비누와 같은 일용용품을 담는다.

의의
오늘날 우란분절에 행하는 우란분재는 생명의 실상, 영혼의 의미, 천도의 공덕을 생각해보는 모임을 마련하는 기회로도 활용되고 있다. 공덕을 쌓는 방법으로 굶주리는 자에게 먹을 것을 보시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며, 외로운 자를 위로하며, 청정한 수행자를 보호하라고 한 가르침을 현대 사회에서 베풂의 공덕을 쌓는 날로 변환시킨 것이다. 돌아가신 부모와 모든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원한을 풀어 극락왕생하게 할 뿐 아니라, 고통 받는 생명이 질곡에서 해방되어 죽은 자와 산 자가 한마음으로 만나는 행사를 마련하여 우란분절의 참뜻을 새긴다. 수해로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천도재가 열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민속 행사도 열린다. 복지시설을 찾아 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봉사하여 효를 실천하며, 이웃에게 따뜻한 베풂의 자리도 마련한다. 고통에서 헤매는 모든 생명들을 해방시키자는 뜻에서 야생동물들을 산으로 돌려보내고 물고기를 놓아주는 방생 행사도 한다. 요즈음의 우란분절은 부처의 위신력과 승려들의 수행력, 신도들의 공덕을 합친 생명 해방의 날로 기념하려는 추세에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目連經, 慵齋叢話, 盂蘭盆經, 太祖實錄, 朝鮮佛敎通史 (李能和, 1918)
盂蘭盆齋와 目漣傳承의 文化史 (史在東 編, 中央人文社, 2000)




불교
종교
요즘 각 사찰에서 생전예수재 하라고 쪽지가 날라들고 있는데요,
생전예수재는 어떤 뜻이 있는지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좋은 법문 부탁드립니다.
한상운| 2013.07.16 14:41 수정됨 |조회 2,311|신고답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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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어떤 의식인가?

천주교에서 신자가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죄를 범하지 않을 결심으로 고백을 하면 죄를 용서 받는다고 가르친다.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는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참회를 해도  죄와 벌은  남게되므로 착한 일을 해야한다며 헌금을  권했다.
타락한 교회는 신자들이 헌금을 하면 교황의 이름으로 속죄증명서를 발행했다,.
이것을 면죄부라고 한다.
교회는 이돈으로 교회를 신축하거나 선교자금으로 사용했다. 자연 더 많은 면죄부가 필요해졌고  많은 면죄부를 발행하게 되었으며, 이에 루터는 그 폐단을 지적하고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종교개혁의 실마리다.

형식은 다르지만 한국불교에도 신자들에게 이와같은 비슷한 것을 요구하는 의식이 있다.
이른바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가 그것이다.
생전예수재는 글자그대로 풀이하면 살아있는 현세에 죽은 다음의 복업을 미리 닦아 예치해 둔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선인선과 악인악과라는 소박한  인과응보론에 근거를  둔 종교의식이다.
좋은 과보를 받으려면  선인을 심고 복을 지어야 한다. 그러므로 미래의 선업을  미리 닦는 것은 불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을 통해 표현하고, 거기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의 심정에 감동과 정화가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그것은 권장되어야 할 일이지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생전예수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은 못된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고 있는  생전예수재는  불교 본래의 본뜻이 살아있는  의식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생전예수재를 비롯한 많은 불교의식이 그 본래의 뜻보다는 사찰경제의 수입원으로써 행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생전예수재는 처음부터 그 본래의 뜻인 십선(十善)의 권장이라든가 악업의 금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거룩한 뜻은 권선문 속에나 들어 있을 뿐이고 실제로는 금전 은전이라 하여 종이돈을 사서 불사르는 의식이 전부다, 의런 의식이 도대체 부처님의 가르침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어떤 공덕을 짓는 것인지 필자 역시 스님이지만 궁금하다.

죄업이란  금전이나 은전을  태운다고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의식을 통해 사후가 보장된다면 인간은 더 포악해지고 난잡한 죄를 지어도 상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도둑이라도 그 돈으로 금전 은전을 사서 태우기만 하면 될테니 말이다.
이런식의 생전예수재는 타락한 중세 천주교 신자들에게 천국행을 보장하여 면죄부를 발행하여 교회를 타락 시킨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만약 지금 불교에서 하고있는 생전예수재가  중세의 기독교 면죄부와 다른 것이 있는지 누가 설명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아마도 이건 힌두교에서 빌어온 의식이 아닌가 생각된다.

몇해전 천국행 티켓을 판매한  사이비교주가 사기죄로 기소된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세상사람들을 웃게한 일이 있었다. 결코 그것에 비해 다를것이 없는 일이 불교라는 고등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 무척 염려스럽다.
불자들 가운데는  예수재를 예술제로 착각하거나 심지어는 불교에서 왜 예수의 제사를 지내느냐고 묻는 웃지못할 일까지 생기고 있다.
이런 내용 없는 의식은 결과적으로 불교를 욕되게 하고, 불교를 타락하게 만들며,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고려시대의 불교는 겉으로는  매우 화려하고 왕성한 교세를 자랑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극도의 형식화로 인한 내용의 빈곤이 고려불교의 타락을 불러왔다.
고상한 불교의 교리체계가 멋대로 해석되거나 나쁜 믿음과 결탁할 때  그 결과는 타락과 파멸뿐이다.
과거의 불교가 저질러왔던 오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빗나간 생전예수재에 대한 부끄러운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질문자께서도 다니시는 사찰에 가서 생전예수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어시기 바랍니다.
* 참고 불교평론 *
불은사노장
| 2013.07.13 | 의견 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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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제사를 미리 지내놓는 것인데 이 행사를 행함으로 졸지에 죽어도 극락에 간다고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dughdhk
| 2013.07.13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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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이 불교의 재齋 와 제사祭祀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둘이 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불교인들도 많습니다.
 49재(齋), 천도재(薦度齋) 등은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냥 망자를 보내는 불교의식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 일반사람들의 상식수준입니다. 그러나 선망(先亡) 부모 등 망자(亡者)를 위한 대중 공양이 재(齋)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천도재(薦度齋)의 기원을 살펴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목련 존자에게 존자의 모친을 천도하도록 한 날이 바로 우란분절, 혹은 백중절, 백종절입니다. 
이날 여름 안거(安居)를 마친 7월 15일 점심때에 오백 명의 대중 스님에게 재로써 공양(供養)을 올리고 법문을 듣도록 한 것이며, 목련 존자 모친의 천도(薦度)는 대중의 수행력과 법문에 힘입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재는 영가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중유(中有) 기간에 극락 세계 같은 좋은 곳으로 가길 발원하여 불보살님께 올리는 의식이며, 살아있는 사람의 큰 위안입니다. 
한편 천도재는 영가의 한(恨)을 풀어주고, 저승의 심판관들에게도 자비를 구합니다. 
유교의 제사는 망자를 불러다 잘 먹이는 것이지만, 불교의 재는 망자가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연기법을 이해하여 다음세상으로 잘 보내기위해 것으로 천지차이가 있습니다.
지장경에 이르길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경전을 읽어주고, 보시를 하고, 청정히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중공양을 하면 망자는 그 공덕의 7분의 1을 가져가고 나머지 7분의 6은 그러한 공덕을 베푼 자신이 받는다고 합니다. 이미 죽은 망자는 이승에서 복을 짓고 싶어도 복을 지을수가 없으니 더 좋은 인연을 맺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자손들이 재를 지내 조그마한 공덕을 싶어 부모에게 회향하는 것입니다.
생전예수재는 자기 자신이 살았을때 자신을 위해 이러한 공덕을 짓는 것입니다.  공덕을 짓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니 경전을 읽고 지혜를 증장시키며, 대중공양을 하거나 보시를 하는 방법이 있고, 청정하게 수행하는 수행자들을 위해 보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을 때 자신을 위해 복을 쌓아야지 죽은다음에는 이미 늦어서 공덕을 쌓고 싶어도 쌓을 수가 없으며 자손이 나를 위해 해주는 것도 장담할수 없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망자는 자손이 지어준 공덕의 7분의 1만 가져갑니다. 그런데 내가 내 자신을 위해 재를 지낸다면 그 나머지 7분의1까지도 받게 되는 것이니 무척 효율적인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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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의 마음
금메달총 획득메달토픽전문가전문 분야| 2013.07.14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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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거수 일투족이 예수재 아님이 없다.
wjdwls3
| 2013.07.15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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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보살님들이 살아 있을 때 죄를 지을 것을 미리 알고
시님을 시켜서 닦게 하여 그 죄를 깨끗하게 해 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금정산인 정견(正見)_()_
정견(正見)
| 2013.07.16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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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 생전예수재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업보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생전예수재를 하면 죄가 용서가 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불법에 어긋나는 행위이므로 따라가면 지옥행열차를 타는 것입니다.
바둑이
| 2014.10.17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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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종교쟁이들 생각하는거 하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돈벌이하는짓 좀 고만해라.
CO2생산기
| 2015.11.03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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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한국역사민속학회 > 역사민속학 > 역사민속학 제49호









흐흐...그놈의 그집...[2]계급갓서른둥이[110.xxx.xxx.xxx]15.04.11 01:02 | 1,316조회 |  4 추천
[글쑤시게 > 짱공글터 > 무서운글터]에서 금산스님님에 의해 이동된 게시물 입니다.


워?랜 저 잠수 타야 하는데 ,

그냥 얼마전 있었던 얘기 하나있어 하려고요.


그날 존 니 힘들었어.

내가 남들에게 얘긴 안했지만 사실 내겐 지병이 하나 있어.

다한증 이라하나?


잠 잘때 땀 흘리는 병이징......



얼마나 심하냐면 그냥 냉골에서 자도 담날 깨면 육수로

범벅이 될 정도 야.


어떤 어의도 그벌 못 잡아...

그냥 ...

그리 사는거지 뭐...,


잘때 육수만 ㅈ니 뽑는 히안한 병 이지만 만만히 보면 곤란함.

아침에 깨면 사하라 사막 1주일 헤맨거만큼 존니 힘들거든?

삼다수 1.8 리터 한병은 까야 살아남.


거기다 땀내 쩔어. ㅋㅋㅋ

내가 싸우나 광팬인건 그래서얔!!ㅋㅋㅋ

총각인데.....

혼자 사는데.....

꼴랑 주먹 만한 암개시키 한 마리 키울 뿐인데....

여친, 앤도 있는데.....


몸에서 땀내나면 곤란 하잖아?


힝!...

그날도 그래서 수신제가를 하러 목간통엘 갔어.

내가 가는 목간통이 어딘지는 아시는 분은 다 아실 뀨.

거기가 살벌한 터 인거도 아실꺼임.


잇힝...

존니 때를 벅였어요.

하수구 막힐만큼.....ㅋㅋㅋ


묵은 때가 좀 많터라구...ㅋ

그렇게 공사를 끝내고 나왔지. ,


상쾌하고 깨운은 하더구만.


나오는데 신호가 오는거야

ㅋㅋ....

사람드른 내가 얘길 막 뽑아내는줄 알지만

나도 고심해 쓰는거야.

ㅆㅂㅆ불.....


남들은 평생 한번도 하기 힘든 경험 이겠지만

난,

거의 맨날 겪는 일상 이거든?

님들,

매일 먹는 밥상 이나 똥 때리는 거나 방구 뀌는거 일밀히

다 기억 하는 사람 있음 얘기 좀 해..


네이밍 센쓰가 지금 보니...참!..

신호와서 2층 화장실로 갔어.

거기 어딘지는 아는 사람은 알지?


시설이 깨끗해서 자주 이용 하지만,

싸한 곳 이지.

거기서 용변보는 사람은 다 알꺼임.


한판 찌면서 담배하나 물었지.

내 나쁜 습관이 밥먹고 난후나 화장실 가면 꼭 담배하나 

물어야 하는거야.

요즘 흡연자들이 설 공간이 없어.

지난번 사우나서 담배 피는데 옆자리 ㅆ댕이 지리?ㄹ을 하더군.

나도 욕나오ㅏㅆ지만 따지면 내가 잘못 한거라 참았어.


어쩌겠어?

담배 못 끊은 내 죄인걸...

편히 고구마 찌면서 담배 한대 때릴수있는 공간은 2층 화장실

뿐이라 똥꼬에 힘 주고 2층으로 갔어.


그러곤 아랫짱 까고 담배하나 물었다?

요즘 담배 아무대서나 피우기 힘든건 알지?

귀신은 맛은 못봐.

대신,

흠향 이라고 냄새를 맛보지.

제사 음식 차리며ㄴ 조상이 맛보는게 아니라 냄새 맡고

가는거야.

영양가 쪽...빨아 들이면서.


그날 ,

똥 때리는 내 머리위엔 동네 골조 귀신들 총 집합 했어.

그거 안보려고 떨리는 손으로 담배 폈어.

꽁초 끝까지...필터 탈때까지.....

위가 얼마나 시끄럽던지....

한까치 225원 이다!




[귀신이야기-오유 갓서른둥이님 글 펌] 골목길의 향 냄새.
writing 2014/08/28 15:14

음마......
 
나의 사랑 오유에 뭔 일이래요?
 
오늘 잠자리가 시원치 않아 새벽에 깨서는 할일도 없길래 오유에 글 하나 더 쓸라구 왔더니......뜨악!!!!!!!!!!
 
뭔일이래유?
 
빨리 평온한 오유로 돌아 갔으면 해요.
 
꼭 작년 겨울 판에서 벌어졌던 레떼님 사건을 보는거 같아요.......ㅠㅠ
 
제가 판에서 레떼님 유령으로 몰려서 오유로 망명 했는데.....
 
 
 
 
 
새벽잠을 잃은 서른둥이가 얘기 하나 더 해줄께.
 
 
 
아!!!...............
 
요즘 몇일 사이에 오유에 겁나게 부러운 분이 하나 생겼어.
 
검둥이 똘이 얘기 쓰신 분......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봐요.
 
그 귀한 개 수호령을 거느리시다니.......
 
소인 그저 부럽고도 부러울 따름 입니다.
 
 
 
동물령이 수호령으로 붙는 경우는 정말 희귀한 경우랍니다.
 
수호령으로 붙는 동물로는 흔하게 개와 고양이가 있어요.
 
수호령이 동물인 경우는 정말 수호령중 0.5%쯤 되고요.
 
 
 
그거도 대부분 개 수호령이고 고양이가 수호령인 경우는 0.5%의 10% 미만 입니다.
 
거의 없는 경우죠.
 
 
 
개랑 고양이 수호령은 하는 짓도 완전 달라요.
 
고양이 수호령은 평소엔 쌩까다가 정말 주인에게 위험이 닥치면 한번 도와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개 수호령은 안그렇커든요.
 
개 수호령은 정말 개가 죽기전에 주인을 엄청나게 집착하고 미치도록 사랑 해야만 가능하거든요.
 
정말 세상에 내 주인 밖엔 없다 정도의 수준이라야 죽어서 주인 곁에 머물러요.
 
개의 품성답게 주인밖엔 모름.
 
한시도 주인곁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근데 이 개 수호령이 얼마나 충성스러우냐하면 오직 주인의 안전 이외엔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잡귀같은건 몇이 있어도 개 수호령을 이기지 못해요.
 
충성심 덩어리니깐.
 
 
 
내가 정말 개 수호령 한번 가져 볼라구 얼마나 공을 많이 들였는데.....
 
근 20년 넘게 갖은 공 다 들였어도 아직 없는게 개 수호령 이네요.....ㅠㅠ
 
 
씨!!!...............................
 
개 수호령만 있음 부적의 힘을 덜 빌려도 잘 살수 있는데........
 
둥이 어린시절부터 수 많은 개를 키웠어요.
 
이모의 권유로.....
 
진짜 갖은 정성 다 해서 나 먹을꺼 까지 양보하며 키웠지만,
 
아직까지 키웠던 애들은 현세에서 충성을 다하면 무지개 다리 건너곤 쌩까고 저승으로 가버리던데........ㅠㅠ
 
간혹 꿈에 나타나서 인사하고 가는 놈은 있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한마리도 곁에 안 있어 줬거든요.
 
 
개도 사람이랑 비슷해서 천성이 있거든요.
 
수호견이 될 강쥐는 주인이 푸대접해도 죽어서 곁을 지키지만 그럴 품성이 안되면 제살 먹여 키워도 죽으면 떠난답니다.
 
껌둥이 똘이 주인님......ㅠㅠ
 
정말 개부럽습니다...잉잉....
 
 
 
 
개 수호령이 지켜주는 분 중에 유명한 탈렌트도 한분 계신데....
 
바로 탈렌트 노주현씹니다.^^
 
 
예전에 이모가 굿을 하러 가셨다 오시면서 우연히 그 아저씨를 목격한적이 있으셨다고 해요.
 
근데 이모 말씀으론,
 
"하고야!!!! 서른둥이야!"
 
"내가 탈렌트 노주현이를 실제로 봤어야!"
 
"응...근데 이모?"
 
"그런데 그 양반은 무슨 황소만한 시커먼 개가 두마리나 따라다니냐?"
 
" 그 양반은 죽을때 까지 이상한거 볼 일은 없겠더라..."
 
" 우리 서른둥이 옆에 그런 놈 한마리만 붙어 있으면 아무걱정 없을껀데....."
 
 
 
없는 걸 어쩌라구......ㅠㅠ
 
노주현씨 아주 유명하신 애견가죠?
 
우리 이몬 그때도 그분이 그런 분인줄 몰랐었답니다...ㅋㅋㅋ
 
 
오늘의 짧은 얘기는 수호신도 없고 수호견도 없는 주제에 부적도 안가지고 나갔다가 동네서 완전 ㅈ 될뻔한 둥이 얘기 입니다.
 
제가 추적자 귀신 얘길 언젠가 할거라고 랬잖아?
 
그게 올 구정 연휴 후에 생긴 일이거든.
 
그놈의 부서회식 때문에..................
 
나쁜놈의 부장......
 
나 잘못되면 꼭 복수할꺼임 ....ㅡ..ㅡ*
 
 
 
그때 간이 배밖으로 나와 우리동네 악귀형을 놀린 댓가로 둥이는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어.
 
맨날 해 떨어지면 집에 콕 쳐박혀서는 담날 해뜰때까지 두문불출하는 강제로 바른생활 맨이 된거야.
 
이 얘기가 한 두달쯤 전에 일이고 귀신때문에 욕본 가장 최근의 일중 하나야.
 
 
그날도 퇴근을 하곤 집에 틀어박혀 티비랑 밀애를 즐기던 날이었어.
 
심심해 죽겠는데 거기다 그날은 불타는 금요일이었거든.....ㅠㅠ
 
난 집에 있는 재료를 조리해서 안주를 만들고 혼자서 술판을 벌였지.
 
근데 준비한 술이 조금 모자랐던거야....ㅋㅋㅋㅋㅋ
 
한참 기분이 좋아지고 있던 참에 술이 떨어진 둥이는 또 간이 배밖으로 나온 짓을 했어.
 
밤중에 술을 사러 슈퍼를 간거야...ㅋㅋㅋㅋ
 
우리집이 ㄱ자 골목인데,
 
ㄱ자의 밑부분 위치가 우리집이라면 슈퍼는 ㄱ자의 처음 시작하는 부분에 있거든.
 
우리집서 슈퍼까지는 고작 7-80미터쯤 되고.....
 
슈퍼 바로전엔 우리집과 평행으로 골목이 또 하나 있어.
 
그러니까 정확히는 ㄲ자 형태거든.
 
설명이 좀 되나?
 
 
 
난 슈퍼로 술을 사러 갔어.
 
그 시간이 저녁 10시쯤이라 아직 추적자 양아치도 안 나올 시간이고.....
 
 
 
그 추적자는 항상 새벽 1시경부터 다니거든.....나  잡으러....
 
간혹 집에서 몰래 보면 나 찾아 골목길을 쏘다니는 추적자를 목격할때가 많거든...ㅋㅋㅋ
 
빨리 다녀오려고 집을 나섰는데...반쯤가서 알아차린거야.
 
부적이든 지갑을 놓고 온거지.
 
 
원래 내가 부적을 똑 같은걸 2벌 가지고 다녀.
 
한벌은 지갑에.
 
한벌은 꽁꽁 싸서 뒷봉창에.
 
혹시 지갑을 잃어버릴때를 대비해서 말야.
 
 
근데 지갑을 집에 놓고 온거야.
 
거기다 바지도 집에 있는거라 편한 바지로 갈아 입은 상태고.....
 
어쩌지 하다가 바로앞에 있는 슈펀데 뭔일 있겠나 싶어 빠른 걸음으로 슈퍼를 가는데.......
 
쌍기역 자의 가운데 골목을 지날때 였어.
 
 
 
슈퍼까지는 5미터 정도밖엔 안남았었는데 갑자기 코끝에 향냄새가 확 풍기더라구......
 
향냄새....그거 좋은거 아니거든.
 
집에서 제사때 이외에 향 피우지 말어.
 
 
제사땐 조상님들 부르는 거라 향 냄새 맡은 잡귀들이 와도 조상신들께 쫓겨 가지만
 
평소에 향 피우면 다른 귀신이 꼬이는거거든...ㅎㄷㄷㄷㄷ
 
집에 냄새난다고 향 막 피우고 그러는 분들 계신데 그거 큰일난다?
 
그런데 우리 동네엔 무당집도 없고 그날 그 시간이면 제사지낼 시간도 아닌데 말야.
 
그렇다고 누가 돌아가시지도 않아서 향 냄새가 날일이 없는데 향냄새가 확 나더라구....ㅠㅠ
 
 
내머린 복잡하게 돌아갔어.
 
술이 확 깨더라구.
 
집으로 튈까도 생각 했는데 슈퍼도 바로 앞이고(5미터도 안됨) 무엇보다 옆으로 뭔가 이상한것들이 스물 스물 나타나더라구....엉엉엉!!!!
 
 
그땐 못본척 하는게 장땡 이거든.
 
놀라거나 보이는 기미가 있으면 다 달려들껀데.......
 
부적도 안가지고 나왔는데........ㅜㅜ
 
 
난 슈퍼로가서 1분만에 소주한병이랑 담배한갑 물 한병 사들고 아무렇치도 않은듯 다시 나왔어.
 
근데 이번엔 골목을 지나는데 향 냄새가 훨씬 진하게 풍기는거야.
 
그리고 옆눈질한 골목에선 조금전 보다 더 늘어난 네다섯개의 잡것들이 보이고....
 
그때 내가 가진거라곤 핸드폰(그 와중에 핸드폰은 챙겨 나왔네..ㅋㅋ)케이스에 붙어있는 부적 달랑 한장뿐.
 
난 핸드폰 케이스를 권총 겨누듯 들고 겨누면서 뒷걸음질로 간신히 집에 왔어.
 
우리집은 요새라서 들어 오진 못하고 앞에 옹기종기 모여드는데.........어휴!!!!!
 
집에 들어와서 자물쇠를 잠궜는데 소중이 밑이 얼마나 놀랐는지 축축 하더라구....ㅠㅠ
 
그나마 스맛폰도 안들고 나갔으면 내가 이 글이나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ㅠㅠ
 
 
 
예전에 이모에게 이렇게 질문 한적이 있어.
 
잼나게 얘기하자면 대충 이런식.
 
 
 
 
"이모, 나 부적 안가지고 다니면 어떻게 돼?"
 
"죽어"
 
"헐!!~~~ 난 귀신이 어떤식으로 생각해?"
 
"음....서른둥이 치킨좋아해?"
 
"ㅇㅇ 치느님은 진리지....."
 
"그래.......잘 익은 치킨 한마리가 고소한 냄새 풀풀 풍기면서 배고픈 귀신들 사이에서 뛰어 다니고 있음 걔들이 무슨 생각 할까?"
 
"그나마 냄새도 덜나고 벗기기도 힘들라고 이모가 부적으로 꽁꽁 포장해 놓은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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