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 Outline of U.S.Economy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과 책 글 말

2010-05-29 ㅡ Outline of U.S.Economy

 

Outline of U.S.Economy

 

미국의 경제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과

 

http://usembassy.state.gov/seoul

 

미국의 경제

American Economy

 

 

 

         CONTENTS

 

                        1장   지속과 변화

                        2장   미국 경제는 어떻게 움직이나

                        3장   미국 경제의 역사

                        4장   소기업과 주식회사

                        5장   주식과 상품, 그리고 시장

                        6장   미국 경제와 연방정부의 역할

                        7장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8장   미국의 농업, 그 중대한 변화

                        9장   미국의 노동력과 근로자의 역할

                       10장   해외무역과 글로벌 경제정책

 

후기

경제 용어 풀이

 

 

 

CHAPTER_1

지속과 변화

 

21세기에 들어 미국의 경제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세기 전반부에는 두 차례의 세계 전쟁과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는40년 동안 소련과의 냉전 수위가 높아지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고실업, 과도한 재정 적자를 경험했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경제적 안정기를 누릴 수 있었다. 물가는 안정되었고 실업률도 근30년 이래로 가장 낮아졌다. 또한 정부는 흑자 예산으로 돌아섰고 주식시장도 전례 없이 호황을 누렸다.

1998년 미국의 국내 총샌산량(Gross Domestic Product:물건과 서비스의 총샌산량)은8조5천억 달러를 넘었다. 이로써 미국은 세계인구의5퍼센트 미만에 불과하지만 경제 생산량은2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던 일본도 미국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일본과 다른 국가들은1990년대에 저성장과 기타 문제로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혔다. 그러나 미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가장 오랫동안 경제 성장기를 구가했다. 그러나21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국은 의미심장한 경제적 변화를 겪었다. 컴퓨터와 통신, 생명공학과 같은 기술혁신의 물결은 미국인들의 일과 여가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와 함께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의 붕괴, 서유럽의 경제 성장, 아시아에서의 경제 강국 출현,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확대되는 경제 기회, 비즈니스와 금융 부문에서 나타난 세계적인 통합의 물결은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위험 요소를 안겨주었다. 이런 변화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산업구조의 재편에서부터 정부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재검토하도록 요구했다. 아마도 그때의 경험 때문에 많은 근로자들이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면서도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경제 또한 장기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경제적 안정을 얻고 상당한 부를 축적했음에도 소수의 소외된 사람들, 특히 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계속 가난하게 살았다. 다른 나라처럼 심각할 정도는 아니어도 부의 편중은 점점 더 심해졌다. 환경의 질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상당수 미국인들이 의료보호 혜택을 받지 못했다. 전후 베이비 붐 세대의 노령화는 기금 고갈로21세기 초반에 국민연금과 의료보호 시스템에 발생할 혼란을 우려하게 했다. 게다가 세계 경제 통합은 이점도 많았지만 혼란도 불러일으켰다 특히 전통적인 제조업의 후퇴를 초래했고, 국가는 해외교역에서 대규모의 적자를 감수해야만 했다.

계속되는 변화를 겪으면서도 정부는 경제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 몇 가지 기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이‘시장경제’를 표방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인들은 정부 또는 힘있는 개인의 이익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개인들의 수요와 공급을 통해 어떤 물건을 만들 것이며, 또 그 물건을 만들 때 소요되는 생산비에 따라 가격이 정해질 때 경제가 가장 잘 돌아간다고 믿는다.이러한 자유시장 체제에서 가격은 그 물건의 진짜 가치를 반영하며, 따라서 가격은 가장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훌륭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인들은 자유시장이 경제 효율성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다원주의에 기여하고 과도한 권력집중을 막음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정부 지도자들은1970년대와1980년대,그리고1990년대에 항공,철도,트럭 회사들과 금융 기관, 통신회사 심지어는 전기회사의 독점권을 보호하는 규정을 철폐함으로써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미국은 다른 나라도 자유시장 경제의 원리를 더욱더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자유기업’에 대한 확신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인들은 이따금 시장세력에 도전할 만큼 강력한 지배력을 키워나갈 것처럼 보이는 기업이 나타나면 정부가 나서서 그 기업을 해체하거나 규제해주길 바란다. 또한 민간 경제가 간과할 수 있는 문제, 이를테면 교육이나 환경보호와 같은 문제들은 정부가 관여해주기를 원한다. 그리고 시장원리를 옹호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자국 기업을 경쟁에서 보호해주는 일에도 정부가 나서주길 원한다.

이처럼 미국인들이 규제에 대해 일관적이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경제에서도 정부의 역할에 대해 모순된 사고를 갖고 있다. 정부는1930년대부터1970년대까지 광법위하고 적극적으로 경제 묹에 개입했다. 하지만1960년대와1970년대 들어 경제불황을 겪은 미국인들은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처리하는 정부의 능력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에도 은퇴 후 연금을 보장해주는 사회보장과 노인들을 위한 국민의료보험 같은 중요한 사회 프로그램에 대한 확신은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1980년대 들어 연방정부의 성장 속도는 상당히 느려졌다.

미국인들의 실용주의와 유연성은 보기 드물게 역동적인 경제라는 결과로 표출되었다. 미국 경제는 점점 풍요로워져서 그렇든, 기술혁신을 이루거나 해외교역이 증가해서 그렇든 간에 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그 결과, 100년 아니50년 전만 해도 농업국가였던 미국은 오늘날 도시의 성격이 강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이 더욱 중요해졌다. 어떤 산업 부문에서는 대량생산이 쇠퇴하고 다품종과 주문생산을 강조하는 특화된 생산방식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대기업이 등장했다가 작은 규모로 분할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재편되고 있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지금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고용주들은 가부장적 요소를 줄이고 직원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있다. 게다가 정부와 재계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경제적 성장을 위해 점점 더 고도로 숙련된 기술과 다양한 능력을 지닌 노동력을 길러내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책에서는 미국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탐험해보고자 한다. 2장에서는 미국 경제의 기본적인 특성을 폭넓은 시각으로 알아보고, 3장에서는 오늘날 미국 경제가 있기까지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4장에서는 소규모 자영업에서부터 현대의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 형태를 알아보려고 한다. 5장에서는 주식시장의 역할과 여타 금융시장의 역할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6장과7장에서는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6장에서는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기업을 형성하고 규제하는 것에 대해, 7장에서는 정부가 물가안정과 성장,고용률 상승을 위해 전반적인 경제활동의 속도를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8장에서는 미국 농업정책의 발자취에 대해 알아본다. 9장에서는 미국 경제에서 노동자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10장에서는 국제무역에 있어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각 장에서 분명히 언급하겠지만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미국의 노력은 21세기의 여명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성장중이다.

 

CHAPTER_2 미국 경제는 어떻게 움직이나

 

미국의 경제 시스템은 민간기업과 정부가 다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흔히 ‘혼합 경제’라고 표현된다. 물론 미국인들은 자유로운 이윤 추구와 정부의 통제, 두 가지를 어느 정도로 조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 통일된 견해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들이 발전시킨 혼합 경제가 가장 성공적인 체제라고 확신한다.

 

모든 경제 시스템에서 기업가와 관리자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기 위해 천연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기술력을 결합시킨다. 그러나 이처럼 서로 다른 요소들을 조직하고 이용하는 방식은 국가의 정치적 이상과 문화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미국을 가리켜 흔히 ‘자본주의’ 경제라고 한다.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칼 마르크스가 만들어낸‘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자본을 장악한 소수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체제를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를‘사회주의’경제와 대비시켰다. 마르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이 권력까지 장악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열을 올린다고 비난했다.그와 반대로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정부가 사회자원의 공평한 분배처럼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경제를 장악하는 부분이 많다.

지나치게 단순화함 점도 있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당시 사람들에겐 진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만일 마르크스가 정의했던 순수한 자본주의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했더라면 오늘날 미국이나 다른 국가의 정부가 개인의 무한한 상업적 이윤에 의한 권력집중화를 막았을 것이며,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경제에 간섭하는 모습은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경제는 정부가 개인의 이윤 추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혼합’ 경제로 정의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미국인들은 자유로운 이윤 추구와 정부의 통제, 두 가지를 어느 정도로 조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 통일된 견해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자신들이 발전시킨 혼합 경제가 가장 성공적인 체제라고 확신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기본 요소

 

국가 경제체제의 첫 번째 요소는 천연자원이다. 미국은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농토가 비옥하다. 게다가 기후가 온난하다는 축복까지 받았다. 또한 대서양과 태평양에 면하는 드넓은 해안선과 멕시코만 또한 미국의 영토이다. 내륙에서 바다로 흐르는 강과5대호(미국과 캐나다 접경 지역에 있는5개의 거대한 내륙 호수)는 물자를 수송하는 중요한 운송로가 되고 있다. 이들 거대한 수로는 오랜 세월 미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50개 주 洲 가 하나의 경제적 단위로 통합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두 번째 요소는 천연자원을 재화로 만드는 노동력이다. 숙련돈 노동자들의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의 건전성을 결정짓는 노동생산성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노동력은 꾸준히 발전해왔고, 그 결과 지속적으로 경제 규모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대부분의 노동력은 유럽 이민자와 그들의 후손, 그리고 미국에 노예로 팔려온 조상을 둔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이었다. 20세기 초반이 되자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왔고, 그 후에는 라틴계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왔다.

한동안 실업률이 높았던 적도 있고 노동력이 부족했던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일자리가 많아질 때에는 이민자들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민자들은 고국에서 받는 임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낮은 임금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일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부강해졌으며, 더 많은 이민자들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유효노동력의 질(사람들이 스스로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얼마나 숙련된 기술을 가졌느냐로 결정된다)은 노동력의 양만큼이나 국가 경제의 성패를 가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의 초창기 개척자들은 고되게 일해야 했으며 청교도적 근로윤리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 외에는 기술과 직업교육을 비롯한 국민교육을 중시한 점도 미국 경제가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노동력의 이동성 또한 미국 경제가 변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부 해안 지역의 인력시장에 이민자들이 넘쳐나자 많은 사람들이 내륙으로 이동했고, 그들은 거기에서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농장일을 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마찬가지로20세기 초반 북부 대도시 공장지대에 경제적 기회가 생기자 남부의 흑인들이 그곳으로 이동했다.

노동력의 질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날에도 미국인들은 치열한 첨단기술 산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열쇠가‘인력자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 지도자들이나 경제 관료들은 컴퓨터와 텔레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새로운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천연자원과 노동력도 경제 시스템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고 관리해야 한다. 미국 경제에서 관리자들은 시장에서 보내는 신호에 주의를 기울인다. 미국의 전통적인 관리조직은 상명하달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업 전반을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경영해야 할 책임을 맡고 있는 이 사회의 최고경영자가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은 여러 부서의 통합 책임을 맡고 있는 중간 직급의 관리조직에게 전달된 후 다시 최하위의 매장 점원에게 전달된다. 또 수많은 업무들이 각 부서와 개인별로 세분화되어 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이러한 전문화 혹은 노동력의 분화를 체계적인 분석에 의거한‘과학 경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이런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직을 경영하고 있지만 일부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특히 국가간 경쟁에 직면한 사업들일수록 더욱 유연한 조직을 구성하고 한다. 숙련된 기술자를 고용해서 재빨리 새 제품을 개발해내고 주문 제작하는 첨단기업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지나치게 복잡한 서열 구조와 노동력의 분화가 창의력을 저해한다는 인식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래서 관리자의 수를 줄이고 부서장급에게 결정권을 위임하는 등 조직 구조를‘단순화(슬림화)’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물론 어떤 조직이 제품을 생산해내려면 그 전에 사업체를 조직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주식호사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기존의 사업을 확장할 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인정받아왔다. 주식회사는 일명 주주라고 하는 자발적인 소유주(오너)의 연합으로, 그들은 복잡한 법률 절차에 따라 회사를 만든다.

주식회사가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려면 재정적인 원천이 있어야 한다. 주로 보험회사나 은행, 연기금, 개인 또는 기타 투자자들에게 주식(투자액에 따라 소유권을 배분한다)이나 채권(장기적으로 돈을 빌릴 때 발행한다)을 팔아서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이런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건전성을 확보하고 투자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자유로운 정보 접근을 보장하는 법률이나 규제를 상세히 마련해놓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그 해에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총량을 가리킨다. 미국의GDP는1983년3조4천억 달러에서1998년8조5천억 달러로 증가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런 수치로는 경제의 건전성은 측정할 수 있지만 국가의 복지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다. 국내총생산은 경제가 생산해내는 재화와 용역의 시장가치를 말해주지만 국내총생산은 경제가 생산해내는 재화와 용역의 시장가치를 말해주지만 국민들이 누리는 삶의 질을 얘기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개인의 행복과 안전, 또는 깨끗한 환경이나 건강과 같은 더 중요한 변수는 그 영역 너머에 존재한다.

 

 

 

혼합경제 : 시장의 역할

미국의 경제 시스템은 민간기업과 정부가 다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흔히 혼합 경제라고 표현된다. 사실 미국 경제 역사상 가장 지속적인 논쟁거리는 바로 공적,사적 부문의 상호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자유기업 시스템의 개인의 소유권을 강조한다. 개인 기업은 최선을 다해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고, 국가 총 경제생산량의4분의2가2가 개인적인 용도로 개인에게 돌아간다(나머지3분의1은 정부나 기업에서 구매한다). 이처럼 소비자의 역할이 큰 국가는 특징상‘소비자 경제’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처럼 개인의 소유권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인들은 국가를 수립할 때부터 정부의 지나친 권력을 경계해왔고,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개인에 대한 정부의 권한도 제한하려고 노력해왔다. 더욱이 미국인들은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경제가 정부주도형 경제보다 더 효과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다.

왜 그럴까? 미국인들은 경제 시스템이 자유로우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건과 서비스의 값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거꾸로 말하면 가격은 기업에게 어떤 물건을 얼마큼 생산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만일 사람들이 그 경제가 생산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하면 가격은 올라간다. 그러면 이윤 추구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새로운 기업이나 경쟁기업은 구미가 당겨서 더 많은 양을 생산해 낸다. 그러는 한편 사람들이 그 물건을 별로 원하지 않게 되면 가격은 떨어지고 경쟁사들은 그 사업을 포기하고 다른 물건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런 시스템을 시장경제라고 한다. 그와 반대 개념이 사회주의 경제는 정부의 소유권과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라는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사회주의 경제가 그다기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수(tax revenue)에 의존하는 정부는 아무래도 가격 시그널에 주의를 기울이고 시장세력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민간기업보다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기업에도 한계는 있다. 미국인들도 어떤 일은 민간기업보다 정부가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왔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재판이나 교육(비록 사립학교나 학원이 많이 있긴 하지만), 철도 시스템, 사회통계, 국방과 같은 사업은 정부에서 직접 관여한다.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가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에는 정부가 개입하여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 받는다. 예컨대‘자연적인 독점(naturl monopoly)’ 을 규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정부는 독점금지법을 이용하여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들과 연합하여 시장세력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지는 것을 막는다. 또한 정부는 시장세력이 할 수 없는 문제를 처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개인적인 문제나 경제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복지와 실업보조금을 지급한다. 노령자나 빈곤층에게는 의료비의 상담부분을 대신 부담한다. 대기나 수질오염을 막기 위해 민간기업의 활동을 규제하기도 한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낮은 금리로 융자해주기도 한다. 민간기업이 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우주탐사 계획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런 혼합 경제에서는 개인이 소비자로서 선택을 할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입법부에 대한 투표권을 이용해서 경제를 이끌어가는 데 참여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안전한 제품, 특정 산업에 의한 환경오염, 건강에 위협하는 요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전반적인 공적 복지를 증진시킴으로써 그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또한 다른 식으로도 변화하고 있다. 농촌에서 도시로, 들판에서 공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서비스 산업으로 인구와 노동력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오늘날의 경제에서는 사적,공적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농업이나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더 많아지고 있다. 또 경제가 더 복잡하게 성장함에 따라 지난1세기 동안 자영업자에서 다른 사람 밑에 고용되는 쪽으로 고용 형태가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정부의 역할

 

 

소비자와 생산자가 경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결정을 내리지만, 미국 경제에서 정부는 적어도 네 가지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안정과 성장

정부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연방정부는 지속적인 성장과 높은 고용률, 물가안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경제활동의 전반적인 속도를 조절한다.지출과 세율을 조정하거나(재정정책) 통화의 공급을 관리하고 신용거래의 이용을 통제함으로써(통화정책) 그 과정에서 물가의 고용에 영향을 주는 경제성장률을 늦추거나 빠르게 할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몇 년 동안은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경기침체가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처럼 여겨졌다. 위기감이 점점 고조되자 정부는 지출을 늘리거나 감세정책을 통해, 또 통화량을 급속히 늘려서 소비자들이 더 많이 지출하게 함으로써 경제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했다. 1970년대에는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자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출을 줄이고 감세정책을 중단하여 통화량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당장의 경기 후퇴를 각오하면서까지 인플레이션 조절에 더욱더 총력을 기울였다.

경제를 안정시키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1960년대에서1990년대로 오면서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에는 정부가 재정정책(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세입을 조절하는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또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지출과 세율을 조절하게 된 이후로는 이런 선출직 관료들이 경제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고인플레이션과 고실업률, 그리고 정부의 예산에까지 막대한 적자가 나자 경제활동의 전반적인 속도를 조절하는 도구로서의 재정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 대신 금리 등의 장치를 통해 통화공급을 조절하는 통화정책이 더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통화정책은 대통령이나 의회로부터 꽤 독립적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Federal Reserve Board)라고 하는 국가 중앙은행이 지휘한다.

 

규제와 통제

미국 연방정부는 여러 지 방법으로 민간기업을 규제한다. 규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 경제적 규제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전통적으로 전기회사 같은 독점기업이 적절한 이윤을 확보하는 것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이따금 정부는 다른 종류의 산업에도 경제적인 통제를 가해왔다. 대공황 이후에는 수요와 공급이 급격히 변함에 따라 가격이 요동 치는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복잡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트럭운송이나 항공과 같은 산업은 가격을 터무니없이 할인하지 않도록 규제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적 규제의 또다른 형태인 반독점금지법은 시장세력을 강화하여 직접적인 규제가 불필요하도록 만든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경쟁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책략(영업)이나 합병을 시도할 때 정부와 각 정당들은 반독점금지법을 이용하여 저지한다.

정부는 또한 공공 보건과 안전,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유지하는 등 사회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민간기업을 통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식품의약국(FDA:Food and Drug Adminstration)은 몸에 해로운 약물 판매를 금지한다. 또 산업안정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ion)은 근로자가 작업현장에서 재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미국 환경청은 수질과 대기 오염을 통제한다.

규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태도는 20세기의 마지막30년 동안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 정책입안자들은 그동안 소비자의 희생을 무릅쓰고 항공이나 트럭운송 분야의 무능력한 기업들을 보호해온 경제 규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때마친 기술 발점으로 과거에는 자연적으로 독점할 수밖에 없었던 텔레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산업에서도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부는 당연히 경제 규제를 약화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그리고1990년대에는 양당의 정치지도자들이 대체로 경제적인 규제 철폐에 동의했지만 사회적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에 대해서는 합의가 덜 이루어져 있었다. 사회적 규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의 몇 년과1960년대와1970년대에 와서야 그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재임할 당시에는 규제가 기업의 자유를 방해하고 비즈니스 비용을 증가시킨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를 풀어주는 바람에 인플ㄹ이션이 가중되기도 했다. 한편 미국인들은 여전히 환경보호를 비롯해 특정 분야에서 새로운 규제를 만들도록 촉구하며, 계속해서 특정한 사건이나 추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시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국회의원이 특정 사안에 대해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는다고 법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1990년대 몇몇 개인들이, 그리고 나중에는 정부까지 나서서 건강을 해칠 위험이 많은 담배회사를 법원에 제소하였다. 그 결과 흡연과 관련된 질병 치료 때문에 장기간 의료비용을 부담해 왔던 주정부는 거액의 재정적 보상을 받게 되었다.

 

 

직접적인 서비스

정부는 각 단계마다 직접적인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한다. 예를 들어 연방정부는 국가 방위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에 비용을 지원하고, 우주탐사 계획을 주도하며, 근로자들의 직업훈련과 실업자들의 구직활동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러한 정부의 지출은 지역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경제활성화의 전체적인 속도에도 영향을 준다.

또한 주정부는 도로를 건설하고 유치 보수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주정부와 농촌 혹은 도시의 지방자치단체는 공립학교의 재정과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방자치단체(local government)는 주로 치안과 화재 예방의 책임을 맡는다. 이들 각 단계의 정부가 지출하는 비용은 지방과 지역 경제에 영향을 준다. 물론 연방정부의 결정이 경제적으로 더 큰 효과를 가져오지만 말이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그리고 지역자치단체의 지출을 1997년의 경우 국내총샌산의18퍼센트에 달했다.

 

 

직접적인 지원

정부는 기업과 개인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한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거나 소규모 기업에게는 기술적인 지원을 해주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도 대출을 해준다. 정부가 후원하는 기업이 주택금융 기관으로부터 저당채권을 산 후 이를 일반 투자가들이 거래할 수 있는 유동화 증권으로 바꿀 수 있게 함으로써 주택 대출을 장려한다.또한 정부는 수출을 적극적을오 장려 하고,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것을 제한하는 무역장벽을 철폐하도록 촉구한다.

정부는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도와준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사회보장제도는 은퇴한 노인들의 수입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호 프로그램인 메디케어(Medicare)는 의료비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대신 부담해주는 것이다.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의료보호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주정부에서는 정신질환자나 중증 장애인을 수용할 수 있는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빈곤한 가정에서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푸드 스탬프(Food Stamp)를 제공하며,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아이가 있는 저소득층 부모에게 생활보조금을 주고 있다.

사회보장을 포함하여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뉴딜’ 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루스벨트는1933년부터1945년까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루스벨트 개혁의 열쇠는 가난이 개인의 무능력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이런 신념은 뉴잉글랜드 청교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성공은 하느님에게 은총을 받은 증거이며 실패는 하느님에게 노여움을 산 증거라는 보편적인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루스벨트의 신념은 미국인의 사회적,경제적 관념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특정한 문제, 특히 복지정책을 둘러싼 토론에서는 과거의 신념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를 비롯해 개인과 가정을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은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1963~1969 재임)의‘가난과의 전쟁’ 에서 출발하였다. 비록 그 프로그램 중에 어떤 것은1990년대에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 다양한 개혁안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미국 주요 정당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실직했으면서도 부유한 개인에 대한 복지혜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의존성만 키우게 된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리하여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1993~2001 재임) 때 발효된‘미복지개혁입법(Welfare reform legislation)’ 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받는 만큼 일할 것을 요구하고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가난과 불평등

미국인들은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 모든 국민들에게 잘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미국 곳곳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빈곤은 이러한 자부심에 먹구름을 드리우기도 한다. 가난을 퇴치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다소 진전이 있었지만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더 많은 일자리와 높은 임금을 제공해주는 경제호황기에도 가난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연방정부는 4인 가족의 기초생활 유지에 필요한 최저생계비를 책정해놓고 잇다.이는 생활비와 거주지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1998년에는4인 가족의1년 생계비가16,530달러 이하일 때 빈곤층으로 분류되었다.

빈곤층의 비율은 1959녀22.4퍼센트에서1978년11.4퍼센트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소폭의 변화만 있었다. 오히려1998년에는12.7퍼센트로 증가했다.

게다가 전체적인 수치는 더 심각해진 빈곤층의 주머니 사정을 드러나지 않게 만든다. 1998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4분의1 이상(26.1퍼센트)이 빈곤하게 살았다. 비참하기는 하지만 이 수치는1979년보다 조금 나아진 것이다. 1979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31퍼센트가 공식적으로 빈민층으로 분류되었고 그나마도1959년 이후로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특히 편모 가정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쉽다 이런 실정을 증명해주듯1997년에는 아이들5명당1명(18.9퍼센트)이 빈곤층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들이36.7퍼센트, 남미계 어린이들은34.4퍼센트를 차지했다.

어떤 분석가들은 공식적인 빈곤층 비율이 실제보다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 수치는 현금 수입을 기준으로 측정했고, 푸드 스탬프나 의료보장, 공영주택처럼 정부에서 제공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정부의 복지 프로그램으로는 필요한 식량과 의료혜택을 완전히 해결하기 어려울뿐더러 공영주택의 보급률도 턱없이 낮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수입이 공식적인 최저생계비보다 많은 가정들도 주택대출금이나 의료보험을 납부하기도 어렵고, 이따금 굶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빈곤층 중에도 임시직이나 공식적인 통계로는 집계되지 않은‘지하’경제 부문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고 지적한다.

어쨌든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 대가를 공평하게 배분해주는 것은 아니다. 1997년,워싱턴에 있는 경제정책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전체 가족의5분의1을 차지하는 부유층이 국가 수입의47.2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통계가 나왔다. 이와 반대로5분의1에 해당하는 극빈곤층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국가 수입의4.2퍼센트밖에 차지 하지 않았고, 40퍼센트의 빈곤층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총수입의14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1980년대와1990년대에도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었다. 세계적인 경쟁이 지속되면서 전통적인 제조업에 종사하던 근로자들이 일자리에 대한 위협을 받았으며, 임금도 계속 그 자리에서 맴돌았다. 게다가 연방정부는 부유층의 희생으로 저소득층의 혜택을 늘리는 세금정책을 멀리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국내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을 줄였다. 그러는 사이에 부유층 가정들은 주식시장의 호황으로 더 많은 부를 쌓아갔다.

1990년대 말에 임금 수준이 급격히 높아짐에 따라, 특히 빈곤층에서 위와 같은 패턴의 역전되는 기미가 조금씩 엿보였다. 하지만 그러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정부의 성장

미국 정부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재임 시절부터 실질 적으로 성장했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대공황의 실업과 가난을 종식시키기 위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했고 기존의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정부의 외형은 더욱 성장했다. 때마침 전 후에 도시와 교외 지역이 활발히 개발되면서 공적인 서비스를 더욱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을 정부로부터 학교와 대학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이끌어냈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과학과 기술 발전에 전폭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새로운 국가 기관이 신설되고, 1960년대에는 우주탐사부터 의료보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공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리고20세기 초반에는 마련되지 않았던 의료보장과 은퇴 프로그램에 대해 미국인들의 의존성이 높아지자 연방정부의 지출을 더욱더 많이 늘어났다.

미국인들은 워싱턴에 있는 연방정부가 지나치게 비대해졌다고 느끼지만 사실 고용률을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정부의 고용 인원이 눈에 띄게 증가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주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채용한 인원때문이다. 1960년대에서1990년까지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용한 사람들은640만명에서1,520만 명으로 증가한 반면 연방정부의 소속의 공무원은240만 명에서300만 명으로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1998년에는 연방정부가 축소되면서 인력이270만명 정도로 줄었다. 그런데 주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고용한 인력은 연방정부의 축소분만큼 충원되어1998녀에는1,600만 명으로 증원되었다(미국 군인의 숫자는 베트남전쟁이 격렬했던1968년에 최고를 기록하는데 당시 인원이360만 명 정도였다. 그후로는 계속 줄어들어1998년에는140만 명이 된다).

확대된 정부 서비스로 인한 세금 인상, ‘큰 정부(big government)’에 대하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반감, 게다가 점점 더 강력해지는 공공 노조로 인해1970년대와1980년대, 1990년대의 정책입안자들은‘과연 정부가 필요한 서비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주체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민영화(privatization)’ 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정부의 특정 기능을 민간 부문으로 돌리는 세계적인 추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민영화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댈러스, 피니스 같은 주요 도시에서는 원래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하던 가로등 보수에서부터 쓰레기 소각, 데이터 처리, 교도소 운영까지 각종 업무를 개인업자나 비영리 단체에 이양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연방 기관은 민간기업처럼 운영방식을 바꾸는 것까지 모색했다. 예를 들어 우체국은 세금에 의존하기보다 자신들의 수익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공적인 서비스의 민영화는 모순점을 안고 있다. 옹호하는 사람들은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인다고 주장하지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민간업자들에게 필수적인 수익성이 떨어지고, 또 민간업자들이 더 생산적이라는 근거도 없다고 주장한다.공공 부문의 노조가 민영화에 반대하는 것도 예상했던 일이다. 그들은 민간업자들이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일단 낮은 입찰가격에 굴복하지마 나중에는 가격을 올린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옹호론자들은 경쟁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민영화가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고 응수한다. 정부는 이따금 민영화를 위협 수단으로 삼아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려고도 한다.

규제나 정부 지출, 복지개혁안에 대한 논란과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미국이 독립국가가 된 이후로200년 넘게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CHAPTER_3

미국 경제의 역사

 

미국 경제는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20세기를 헤쳐오면서 더욱 튼튼해졌다. 원격 통신과 컴퓨터 네트워킹 분야의 기술혁신은 방대한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을 발전시켰고 기업들의 운영방식에 혁신을 가져왔다.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기업의 수익은 놀랄 만큼 증가했다.

미국 경제의 뿌리는 16세기와17세기, 18세기의 경제적 안정을 찾아 유럽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대륙은 처음엔 가까스로 수지가 맞는 식민지경제에서 소규모의 독립적인 농업경제로, 나중에는 매우 복잡한 산업경제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경제적 진화에 발맞추어 미국은 복잡하고 다양한 기구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면서도 정부의 개입 정도는 점점 더 커졌다.

북아메리카의 첫번째 주민은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 그들은 오늘날 베링 해협이 있는 아시아에서 육로를 통해2만 년 전에 아메리카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유럽 탐험가들은 미국에 첫발을 디뎠을 때 그곳이 인도인 줄로만 알고 그들은‘인디언 이라고 불렀다. 이 토착 종족들은 소수의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어떤 경우엔 다른 부족과 연합하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 물물교환을 했고 다른 대륙의 사람들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심지어 유럽 이민자들이 정착하기 전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과도 말이다. 원주민들이 발달시켰던 경제 시스템은 그곳에 정착한 유럽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미국을 가장 먼저 ‘발견’ 한 유럽인은 바이킹이었다. 그러나1,000년경에 일어난 그 사건은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유럽 사회는 대부분 농업과 지주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아직 상업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터라 바이킹들은 북아메리카를 탐험하거나 정착할 만한 동기를 갖지 못했다.

1942년 이탈리아 출신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깃발을 배에 꽂고 아시아로 가기 위해 남서쪽 항로를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신대륙’을 발견하였다. 그 후100년 동안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의 탐험가들이 신대륙의 황금과 부, 명예와 영광을 찾아 유럽 대륙에서 건너왔다.

그러나 초기 개척자들은 북아메리카의 황무지에서 영광도 금도 찾지 못했으며, 대부분 정착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결국 북미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은 나중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1607년에 한 무리의 영국인들이 훗날 미국의 모태가 된 최초의 정착촌을 건설했다. 제임스타운이라고 부르는 정착촌은 오늘날의 버지니아에 위치한다.

 

 

식민지 건설

 

초기의 정착민들은 다양한 이유로 신대륙에 건너왔다. 매사추세츠의 최초 이주자들은 신앙심이 두텁고 자기절제가 강한 영국인들로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버지니아를 비롯해 다른 이주민촌의 사람들은 주로 사업적인 모험을 위해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종교적 자유와 부, 이 모두를 얻으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영국인들이 정착에 성공하여 나중에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은 특허회사(charter company)를 이용한 덕분이었다. 특허회사는 개인의 경제적 이익과 영국의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주주들(보통 상인과 부유한 지주들이었다)이 세운 회사였다. 왕은 그들이 회사를 세우기 위해 자금을 조달할 때 경제적 권리뿐만 아니라 정치적,사법적 권위도 허가하거나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생각만큼 수익을 거두지 못하자 영국 투자가들은 식민지개발 허가증을 정착민들한테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비록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도 한 몫 했다. 어쨌든 식민주의자들은 그곳에 남았고 자신들의 삶과, 자신들의 마을과, 자신들의 경제를 일궈나갔다. 더 나아가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세우기 시작했다.

초기 식민지의 번영은 모피 가공 무역 덕분이었다. 수산업도 매사추세츠가 부를 축적하게 된 일차적인 원천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전체로 보면 주로 소규모 농장을 경영하면서 생활했고,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해했다. 몇몇 소도시나 북캘리포니아, 남캘리포니아, 버지니아의 대규모 농장에서는 담배나 쌀, 인디고(푸른색 염료)를 수출하고 생필품이나 사치품을 수입하기도 했다.

식민지가 성장하면서 보조적인 산업도 발달했다. 전문적인 제재소와 제분소도 여럿 등장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고기잡이 배, 그리고 나중엔 교역용 배도 만들기 위해 조선소를 세웠다. 또한 소규모 제련소도 설립했다. 18세기까지 지역마다 발전의 패턴을 달리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뉴잉글랜드의 식민지는 조선을 주업으로 하고 항해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메릴랜드나 버지니아,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농장(많으 농장이 노예를 이용했다)에서는 담배와 쌀, 인디고 농사를 했다. 뉴욕과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델라웨어 같은 중부의 식민지는 곡물과 모피를 배로 수출했다. 노예를 제외한 일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점차로 나아졌다. 사실은 영국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생활수준이 높았다. 영국인 투자가들이 철수했기 때문에 식민지는 이주민들 중에서 기업가들에게 개방되었다.

1770년경 북아메리카의 식민지는, 제임스1세(1603~1625) 이후 영국의 정가를 뒤흔들었던 자치정부 운동에 동조할 만큼 정치적,경제적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미국과 영국은 세금과 여타 문제를 두고 불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영국이 정한 세율과 법규를 자신들의 뜻대로 고쳐줄 것을 요구했다. 영국 정부와의 분쟁이 격화 되자 어떤 사람들은 영국과 전쟁을 벌이면 식민지가 독립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17세기와 18세기의 영국의 정치적 혼란과 마찬가지로 미국혁명(1775~1783)은‘생명과 자유와 부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 를 부르짖는 중산층이 등장함으로써 가능했다. 이 구호는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의<시민정부에 대한 제2논고(Second Treatise on Civill For government)>(1690)에서 인용한 것이다. 전쟁은1775년4월에 벌어진 사건에 의해 촉발되었다. 영국 군인들이 매사추세츠 콩코드의 한 식민지군 무기보급소를 공격하여 식민지 민병대와 충돌했다. 그때 누군가가(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총을 쏘았고,그것을 기화로8년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국이라는 국가를 세우는 것이 전쟁의 중요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새로운 국가의 경제

 

1787년에 제정되어 지금도 효력을 발휘하는 미국 헌법은 여러 면에서 독창적인 천재의 작품이었다. 메인주부터 조지아, 애틀랜틱 해에서 미시시피밸리까지 전국에 설치되었던 경제특별허가지역은 이를테면 단일화된‘공동’ 시장이었다. 이곳에서는 관세도 없었고 주간의 거래에 붙는 세금도 없었다. 그 외에도 헌법은 연방정부가 해외교역이나 주 간의 교역을 중재하고, 단일화된 파산법을 만들고 화폐를 발행하여 그 가치를 통제하고, 표준화된 도량형을 정비하고, 우체국과 철도를 건설하고, 특허권과 저작권을 관리하는 규정을 세우도록 명시해놓았다. 특히20세기 말에야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지적 재산권’의 가치도 당시 사람들은 일찍이 깨닫고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이자 초대 재무부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연방정부가 공개적인 보조금을 제공하고 수입품에 대한 보호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걸음마 단계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경제발전 계획을 옹호했다.또한 그는 연방정부가 국립은행을 세우고 혁명전쟁시에 식민지가 떠안았던 공적 부채를 부담하라고 촉구했다. 새로운 정부는 해밀턴의 제안 중 몇 가지에 대해선 주저하기도 했지만, 관세 조항은 미국의 중요한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처음에 농부들은 국립은행이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부자들의 뒤를 봐주는 게 아니라 걱정했다. 하지만 최초의 국립은행은1791년에 허가를 받아1811년까지 영업을 계속했고, 그 후에는 후발 은행이 허가를 받아 영업을 시작했다.

해밀턴은 미국이 운송,제조,금융 등 다양한 산업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밀턴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토마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은 일반 국민들을 정치적, 경제적 독재로ㅜ터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 철학을 갖고 있었다. 특히 소농을‘가장 귀한 시민’ 으로 칭송하였다. 1801년 제퍼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1801~1809 재임) 그는 더욱더 지방분권의 중농민주주의를 장려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가자, 서남부로

 

면화는 남부에서 가장 먼저 소규모로 생산했는데, 1793년 엘리 휘트니(Eli Whitney)가 원면에서 씨앗과 불순물을 분리하는 조면기계를 개발한 후로 면화 재배가 붐을 이루기 시작했다. 남부의 농장주들은 당시 서쪽으로 이주해가던 농민들에게 땅을 사들였다. 그런 다음 노예들을 이용해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을 했고 몇몇 가문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그 당시 서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모두 남부 출신들은 아니었다. 동부에서는 마을 전체가 이주하여 중서부의 비옥한 농토에 새롭게 정착하기도 했다. 흔히 서부에 정착한 사람들은 거칠고 독립적인 성격에다 정부의 지배나 간섭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받았다. 정부가 건설한 컴벌랜드 파이크(Cumberland Pike, 1818년)나 이리 운하(Erie Canal, 1825년) 같은 국립 도로와 수로는 새로운 정착민들이 서쪽으로 이주하고 훗날 서부의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이든 많은 미국인들은 1829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앤드류잭슨을 영웅으로 여겼다. 그가 변두리 지역의 통나무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잭슨 대통령(1829~1837 재임)은 해밀턴이 세운 국립은행의 후발 은행을 설립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농민들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으로 재선되었을 때 잭슨은 은행의 허가권을 부활시키는 데 반대했으며 의회의 지지도 얻어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국가의 금융제도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었고1834년과1837년에는 산업계에 공황이 일어났다.

19세기 들어 미국 경제는 주기적인 경제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급속히 성장했다. 새로운 발명품과 금전적 투자가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고 경제성장을 일구어냈다.교통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끊임없이 개방되었다. 증기선 덕분에 강을 이용한 운송이 더 저렴하고 빨라졌지만 철도의 발달만큼 파급효과가 크지는 못했다. 전국으로 뻗어나는 철로 덕분에 새로운 영토가 계속 개발되었다. 운하나 도로와 마찬가지로 철도 역시 초기에 건설될 때에는 정부에서 토지를 무상불하해주는 식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더욱이 철도는 다른 교통수단과 달리 국내는 물론이고 유럽의 개인 투자가들이 구미를 당겼다.

변화무쌍한 시대답게 일확천금을 노리는 계획들이 난무했다. 금융에 통달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큰돈을 벌었지만, 동시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저축했던 돈을 날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비전과 외국인 투자가 결합되고 금의 발견과 미국의 공적,사적 부가 투입되어 국가는 대규모로 철도를 건설하고 국가 산업화를 위한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산업의 성장

 

유럽의 경우 산업혁명은 18세기 말이나19세고 초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아주 빠른 속도로 미국으로 확산되었다.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 인구의16퍼센트는 도시 지역에 살았으며, 국가 수입의3분의1은 제조업에서 나왔다. 도시화된 산업을 주로 북동부에 몰려 있었다. 신발제조업, 모직과 면직물 산업이 주도적이었고 기계류 산업도 활발하게 발달했다. 노동력의 상당수는 이민자 출신들이었다. 1845년과1855년 사이에30만 명의 유럽 이민자들이 해마다 이주해왔다.그들은 대부분 가난했으며, 배를 타고 처음 도착한 항구 근처에 있는 동부의 도시에서 살았다.

한편 남부는 농업지대로, 자본과 공산품 등을 북부에 의존했다. 노예제도를 비롯해 남부의 경제적 수익은 남부가 연방정부를 장악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정치 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1856년에는 산업화된 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이 창당되었다. 1860년, 공화주의자들과 그들의 대통령 후보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도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지만 경제정책에 관해선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1861년 그들은 보호관세의 채택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1862년에는 최초의 퍼시픽 레일로드를 건설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1863년과1864년에는 국립은행 규약의 초안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남북전쟁(1861~1865)에서 북부가 승리하자 국가의 운명과 경제적 시스템은 하나로 통합되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자 남부의 대규모 목화 플랜테이션은 과거만큼 많은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에 북부의 산업을 전쟁 수요로 급격히 팽창하였다.산업주의자들은 사회나 정치 문제를 비롯해 국가의 여러 분야를 장악하기 시작 했다. 또 남부의 농업귀족들은, 그로부터70년 후에 만들어진 고전적인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감상적으로 묘사되었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발명과 발전, 그리고 실업계의 거물

 

남북전쟁 이후 급속히 이루어진 경제 발전은 현대 미국 산업경제의 초석이 되었다. 새로운 발견과 발명품이 급증하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제2의 산업혁명’ 이라고 불렀다. 서부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석유가 발견되었다. 타자기도 발명되었다. 철도에서는 냉동차가 생겨났다. 전화와 사진, 전구도 발명되었다. 그리고20세기 초에는 마차를 대신하는 자동차가 발명되었고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기 시작했다.

이런 빛나는 위업과 함께 국가의 산업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펜실베이니아 남부에서 켄터키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산맥에는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드웨스트 위쪽의 레이크 슈피리어 지역에서는 대규모 철광석 광산이 개발되었다. 이 두 가지 원료를 한군대로 모아 철강을 생산해내는 제철소도 번성했다. 대규모 동과 은 광산도 개발되었고, 뒤이어 납과 시멘트 공장들도 생겨났다.

산업이 번성함에 따라 대량생산 방식도 개발되었다. 19세기 말, 과학적 경영의 개척자인 프레드릭W. 테일러(Frederick W. Taylor)는 근로자들에게 다양한 업무를 배분한 다음 좀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진정한 대량생산 방식은1913년 헨리 포드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그는 자동차를 생산할 때 종업원들이 한가지의 간단한 작업만 담당하는 작업 라인을 설치하였다. 게다가 헨리 포드는 종업원들에게 일당5달러라는 비교적 후한 임금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만든 자동차를 사도록 함으로써 사업을 확장하였다. 당시로서는 선견지명이 있는 경영방식이었다).

19세기 후반부의 ‘부호의 시대’에는 재계 거물의 신기원을 열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거대한 재정왕국을 건설한 재계 거물을 이상적인 인물로 영웅시했다. 그들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잠재력 있는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었다. 존D.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석유를 그렇게 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경제적 성공과 권력 추구라는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경쟁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록펠러나 포드 외에도 제이 굴드(Jay Gould)는 철도로 많은 돈을 벌었고J. 피어포트 모건(J. Pierpont Morgan)은 금융업으로,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철강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어떤 거물은 그 시대의 사업상 도의를 따르는 정직한 사람이었는가 하면 어떤 거물은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힘과 뇌물과 배신을 이용하기도 했다. 좋은 나쁘든 사업상의 이권은 정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모건은 가장 화려한 명성을 누렸던 기업가로, 개인으로도 사업가로도 대단한 번영을 구가했다. 그와 동료들은 도박을 하고 요트를 타고 사치스런 파티를 열고 호화로운 저택을 지었으며 유럽의 예술 작품들을 사들였다. 반대로, 록펠러나 포드 같은 사람들은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은 소박한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고수했으며, 독실한 신도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꼈다. 인간적인 덕을 쌓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근면과 절약을 신조로 삼았다. 훗날 그들이 남긴 유산은 미국에서 가장 큰 자선 재단을 설립하는 기금으로 쓰였다.

유럽의 상류층 지식인들은 대체로 사업을 경멸하는 편이었지만, 비교적 유동적인 조직사회에서 살고 있었던 미국인들은 돈 버는 방법이라면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그들은 사업적인 모함과 흥미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생활수준의 향상 또는 안락한 삶 같은 잠재적 대가를 즐겼고 성공이 가져다 줄 갈채를 마음껏 누릴 줄 알았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미국 경제가 성숙 단계로 접어들자 자유분방하던 재계 거물들은 미국인의 우상으로 그 빛을 잃었다. 주식회사의 등장과 함께 재계 판도에도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곳은 철도 사업이었으며, 이후 여러 분야에서 생겨났다. 경제계의 귀족들은 월급을 많이 받는 관리자이자 나중에는 회사의 대표가 되는‘전문가 출신 관리자’들로 대체되었다. 한편 주식회사가 부상하면서 조직화된 노동운동은 비즈니스의 권력과 영향력에 반작용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기술혁명은 새로운 기업가문화를 낳았으며, 또 한차례 부호의 시대를 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판매하여 어마어마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게이츠가 얼마나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야말로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1990년대 말 그의 회사는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규제국에 의해 경쟁사를 협박하고 독점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제소되었다. 하지만 게이츠는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자선기금 기부자 명단에서도 최고가 되었다. 게이츠처럼 오늘날의 미국 사업가들은 대부분 고자세로 살지 않는다. 그들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지만 학교나 자선단체의 이사로 봉사하기도 한다. 또한 국가 경제나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정부 관료와 의논하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날아간다. 틀림없이 그들은 정부에 영향을 주지만 부호 시대의 몇몇 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정부의 개입

 

미국 역사상 초기에는 대부분의 정치지도자들이 교통을 제외한 민간 부문의 사업에 연방정부가 깊숙이 관여하는 것을 꺼렸다. 그들은 정부와 법을 제정하고 질서 유지에 필요한 일이 아닌 한 경제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하는 레세페르(laissez-faire, 무간섭주의)를 받아 들였다. 이러한 태도는19세기 후반 소규모 자영업자나 농민, 노동 단체가 정부에게 자신들의 이익을 중재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중산층이 생겨났다. 그들은 비즈니스 엘리트와 급진적인 정치운동을 벌이는 중서부 및 서부의 농부, 노동자들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진보당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사람들은 경쟁과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정부가 경제 문제에 개입하길 원했다. 한편 그들은 공공 분야에서 벌어지는 부패와도 맞서 싸웠다.

1887년 의회는 철도회사의 관행을 규제하는 주간통상법(the Interstate Commerce Act)을 제정했고, 1890년에는 한 개의 대기업이 하나의 사업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셔먼 반 독점법, Sher-man Antitrust Act)을 발효시켰다. 그러나 이런 법은1900년과1920년 사이에 공화당 대통령 테오도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901~1909 재임)과 기타 진보당의 이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기 저에는 강력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오늘날 미국의 규제 기관인 주간통상위원회(the Interstate Commerce Commission), 식품 의약국,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와 같은 기관들은 모두 그 시기에 창설되었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일은 특히 1930년대 뉴딜 정책이 시행되던 기간에 많이 증가하였다. 1929년의 증권시장 붕괴는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적 혼란기인 대공황(1929~1940)을 초래했다. 프랭클린D. 루스벨트 대통령은 비상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펼쳤다.

오늘날 미국 경제를 특징짓는 주요 법안이나 기관들이 탄생한 것은 대부분 뉴딜 시대였다. 뉴딜 법안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금융, 농업, 공공복지 분야까지 확대시켰다.그리고 시간당 수당에 대한 최소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철강이나 자동차, 고무산업으로 노동운동이 확대되는 데 촉매 역할을 했다. 오늘날 국가가 경제를 움직이는 데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기관들은 거의 그 시기에 창설되었다. 여기에는 주식시장을 감독하는 증권거래위원회, 은행 예금을 보증하는 연방예금보험공사, 그리고 노인들이 젊었을 때 납부한 기금을 가지고 연금 형태로 지급하는 사회보장 시스템 등이 있다.

뉴딜 법안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면 기업과 정부가 서로 깊은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고심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 중 일부는 제2대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고심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 중 일부는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폐기되기도 했다. 뉴딜 법안 가운데 생명력이 가장 짧았던 것은 국가산업부흥법(the 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으로, 국가의 감독하에 기업의 관리자와 근로자들이 갈등을 해소하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법안이었다. 미국에서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기업과 노동자와 정부가 타협했던 것처럼 전체주의로 기울었던 적은 없지만, 뉴딜 정책의 제안자들은 기업과 노동자와 정부라는 경제 주체들 사이에 새로운 권력을 분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미국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일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더욱 심해졌다. 당시에 전시생산국(the War Production Board)은 군수품 조달이 최우선으로 이루어지도록 국가의 생산능력을 조절하였다. 따라서 소비자들 위주로 생필품을 생산하던 공장에서 군사용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공장에서는 탱크와 비행기를 만들었고 미국은‘민주주의 국가의 무기고’가 되었다. 국가의 수입이 증가하자 정부는 생필품 부족으로 인플레이션이 유발되는 것을 막으려고 물가관리국(Office of Price Administration)을 신설하여 주택임대료를 억제하고 설탕에서 석유까지 모든 생필품을 배급제로 바꾸었으며 다른 경우에도 물가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후경제 : 1945~1960년

 

많은 미국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군사비 지출이 삭감되면서 곧장 대공황 때의 시련기로 되돌아가는 게 아닐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억눌려왔던 소비욕구가 분출하면서 전후 경제성장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자동차산업은 성공적으로 원래의 자동차를 만드는 일로 다시 돌아갔고, 항공기 제작이나 전자제품 생산과 같은 새로운 산업이 성큼성큼 성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군에서 제대한 군인들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주택자금을 쉽게 대출해주자 주택건설 붐이 일어났다. 국가의 총생산량이1940년의2천억 달러에서1950년이 되자3천억 달러로, 그리고1960년에는5천억 달러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와 함께‘베이비 붐’ 이라고 하는 전후 출산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그리고 더 많은 미국인이 중산층 대열에 합류했다.

군수품 생산의 필요성을 군수산업을 거대하고 복잡하게 발전시켰다(군수산업이라는 용어는1953년부터1961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드와이트D.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만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젅쟁의 위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유럽에는 철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미국은 소련과 냉전체제에 돌입함으로써 실질적인 전투능력을 유지해야 했다. 또 수소폭탄 같은 정교한 무기를 연구하기 위해 군사비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더욱이 마샬 플랜(Marshall Plan)에 따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 국가에 경제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미국 물자의 시장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또한 정부는 경제적인 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1946년에 제정된 고용법은‘고용과 생산과 구매력을 최대한 장려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미국은 전후에 국제적인 통화관리를 재구축할 필요성을 느끼고 선두에 서서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게은행(World Bank)을 설립하는 데 앞장섰다.이 기구들은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개방경제를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세워졌다.

그러는 사이 기업은 합병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기업들은 거대하고 다양한 복합기업으로 합병되었다. 예를 들어 국제 전신전화회사(International Telephone and Telegraph)는 쉐라톤 호텔과 콘티넨탈 은행, 하트포드 화재보험, 아비스 렌터카 등의 여러 기업을 사들였다.

노동력의 성격도 크게 변화하였다. 1950년대 들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숫자에 육박하더니 얼마 안 있어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더 많아졌다. 1956년경 미국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생산직보다 화이트칼라 위주였다.동시에 노동조합은 장기고용 계약을 맺고 직원들에게 다양한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농민들에게는 어려운 시기가 닥쳐왔다. 농업이 대규모로 기업화됨에 따라 곡물이 필요 이상으로 과잉생산 되었다. 소규모 가족영농은 점점 더 경쟁력을 잃었고,결국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났다. 그 결과, 1947년에는790만 명이던 농업인구가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더니1998년에는 겨우340만 명이 농업 관련 일에 종사했다.

농민이 아닌 사람들도 생활 근거지를 옮겼다. 핵가족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도심을 떠나 교외로 이주했다. 에어컨이 발명되자 남부와 남서부의 휴스턴, 애틀랜다, 마이애미, 피닉스와 같은 이른바‘선 벨트(Sun belt)’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정부의 주도하에 고속도로가 건설되자 교외 지역으로 나가는 일이 한결 쉬워졌으며 산업 형태도 변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에는8개밖에 없던 쇼핑센터가1960년에는3,840개로 엄청나게 늘어났다. 사람들이 교외로 이주하고 많은 산업들도 이를 뒤따라가자 자연스럽게 도시공동화가 진행되었다.

 

변화의 계절 : 1960년대와1970년대

 

미국인들에게 1950년대는 만족스러웠던 시기인 반면, 1960년대와1970년대는 대격변의 시대였다. 세계적으로 전쟁국가가 탄생했으며 기존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반란이 일어났고, 미국에 맞먹을 만큼 경제적인 강국으로 성장한 나라도 생겨났다. 또한 경제력 있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함으로써 군사력만이 성장과 확대의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인식이 점점 커져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1961~1963 재임)은 강력한 통치력을 지니기 위해 행동주의자적인 접근방법을 활용했던 선도적인 인물이다. 그는1960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미국인들에게‘새로운 프런티어’의 도전에 대응하라고 외쳤다. 대통령이 된 그는 정부 지출을 늘리고 세금을 삭감함으로써 강력한 경제성장책을 썼으며, 노령자를 위한 의료 지원을 강력히 지시하고 대도시 빈민촌을 구제하며 교육 기금을 확충했다. 미국인을 개발도상국으로 파견하여 지원하려는 케네디의 비전은 평화봉사단의 설립으로 현실화되긴 했지만 그가 제안한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실행으로 옮겨지진 못했다. 또 케네디는 미국의 우주개발계획에 착수했다. 그가 죽은 후에 미국의 우주개발계획은 소련을 뛰어넘었고1969년에는 미국인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63년 케네디의 암살로 국회는 그의 입법안을 대부분 법률화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후임인 린든 베인즈 존슨(Lyndon Baines Johnson, 1963~1969 재임)은 더 많은 시민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나누어주는‘그레이트 소사이어티(Great Society)’ 정책을 펼쳤다. 정부가 메디케어(고령자를 위한 의료보험제도), 푸드 스탬프(빈곤층을 위한 식량지원), 수많은 교육사업(학교나 대학 설립은 물론 학생들을 지원 하는 사업)과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시하다 보니 연방정부의 지출은 급격히 늘어났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여하면서 군사비 지출도 늘어났다. 케네디가 재임할 당시엔 소규모 국지전으로 시작했던 것이 존슨 재임 기간에는 군사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비 지출이 점점 더 커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난과의 전쟁과 베트남전쟁 모두 단기간에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1960년대 말, 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책으로 세금을 인상하는 데 실패하면서 성장률이 후ㅚ하기 시작했다. 1973년과1974년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회원들 간에 석유생산량을 줄이기로 결정함에 따라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에너지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심지어 생산량 감축이 끝난 후에도 에너지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고, 거기다 인플레이션까지 겹쳐서 실업률도 높아졌다. 연방정부 예산은 적자였고 외국과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주식시장을 침제되었다.

베트남전쟁은 지지부진하게 1975년까지 계속되었고 탄핵 위기에 처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Richard Nixon, 1969~1974 재임)은 사임했고, 미국인들이1년 넘게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인질로 잡혀 있는 사건이 발견했다. 국가는 경제문제를 비롯해 어떠한 사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동차에서부터 강철,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은 수입품들이 늘어나자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서 기업활동이 침체되고 실업률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경제 상황을 가리켜 ‘스테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한다. 사실 인플레이션은 그 자체로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 많다. 사람들은 물건 가격이 계속해서 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더 많이 사들인다. ㅇ렇게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도 상승하고,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도 생겨나며 물가는 더욱 오르고 다시 수요와 가격 등이 따라서 올라가게 된다. 근로계약서에는 생계비에 관한 항목이 자동으로 들어가게 되고, 정부는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척도인 소비자 물가지수에 따라 사회보장 따 따위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런 정책은 근로자나 퇴직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도록 도와주긴 했지만 끝없는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방치한 꼴이었다. 정부가 필요로 하는 기금은 자꾸만 늘어나서 적자 예싼이 되었고, 정부는 차관을 사용하는 바람에 이자 압박을 받으며, 기업과 국민들의 부담은 더욱 증가했다. 에너지 가격과 이자율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투자는 감소하고 실업률은 위험수위까지 올랐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취임한 지미 카터(Jimmy carter, 1977~1981 재임) 대통령은 경제의 악순환을 타파하고 정부 지출을 늘려 실업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했으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근로자들이 스스로 임금을 내리고 생산자가 가격을 낮추도록 정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별다른 성공을 거두기 못했다. 대신 항공, 화물트럭, 철도를 비롯해 여러 산업의‘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완만하게 인플레이션을 잡았던 것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 산업은 그동안 요금이나 노선 등에서 정부의 철저한 보호와 규제를 받아왔다. 이러한 규제 철폐는 카터 행정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80년대에는 정부가 은행 이율이나 장거리 통신 요금에 대한 통제를 완화시켰으며1990년대에는 지역전화 요금에 대한 규제마저 풀어주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1979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통화 공급을 단속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통화량의 공급을 억제함으로써 이율을 올렸다. 그 결과, 소비자 지출과 기업 대출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경제는 곧 깊은 침체 속으로 빠져들었다.

 

1980년대 경제

 

1982년 내내 미국은 깊은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전년도에 기업은 50퍼센트나 도산했다. 특히 농민들이 타격을 많이 입었다. 농산물 수출이 줄어들고곡물 가격이 떨어졌으며 이자는 올라갔다. 이에 정부는 급히 해결책을 모색했다. 경기 하락을 해결하기 위해 급히 처방한 치료약은 삼키기엔 힘이 들었지만, 경제가 처해 있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었다. 1983년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경제는 반등하기 시작했으며 경제성장도 그런대로 유지되었다. 하지만1980년대 내내, 그리고1990년대 들어서도 인플레이션 비율은5퍼센트 아래를 밑돌았다.

1970년대의 경제 격변은 중요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왓다. 미국인들은1980년에 카터를 낙선시키고, 헐리우드 배우이지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1981~1989 재임)을 대통령에 당선시킴으로써 연방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레이건 정부는 세율을 줄여서 수입을 늘리는 공급 측면 경제학 이론에 충실한 경제 정책 기조로 나아갔다. 이 이론은 세율을 낮춤으로써 사람들이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도록 하고, 이렇게 하면 결국 더 많은 저축과 부자가 이루어져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레이건이 추진한 감세정책은 주로 미국의 부유층에게로 이익이 돌아갔지만, 감세정책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은 기업투자가 많이 이루어지면 새로운 일자리도 많아지고 임금도 올라가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이건이 생각했던 국가적 아젠다의 중심주제는 연방정부가 그동안 너무 비대해졌고 경제에도 지나치게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1980년대 초에 그는 세금을 삭감하는 동시에 사회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대수술에 들어갔다. 또 임기 내내 소비자나 근로현장, 그리고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규제를 줄이거나 철폐하는 데 주력 했다. 한편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의 전철을 밟아 군사력 증강에 소홀해질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국방비 예산을 크게 늘렸다.

감세에다 높은 국방비 지출은 국내 정책에 지출해야 할 예산을 더욱더 삭감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결국 연방 예사적자는1980년대 초의 경기침체기 때보다 훨씬 불어나게 되었다. 연방정부의 적자는1980년에740억 달러에서1986년에는2,210억 달러에 이르렀다. 1987년에는1,500억 달러로 떨어졌지만 이후 다시 증가 하기 시작했다.어떤 경제학자들은 연방정부의 과다한 지출과 차입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유발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물가상승을 조절하기 위해 불침법을 서면서 위험신호가 보일 때마다 재빨리 이자율을 인상했다. 의장인 폴 볼커(Paul Volcker)와 그의 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의 지휘하에 연방 준비제도이사회는 경제의 교통경찰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가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데 의회나 대통령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1980년대에 비로소 경제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농민들, 특히 소규모 가족영농을 하는 농민들은 계속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특히1986년과1988년에 미국의 중부 지방에 심각한 가뭄이 닥쳤고 몇 년 후에는 홍수를 겪었다. 몇몇 은행은 금융 경색에 무분별한 대출 관행으로, 특히 저축대부조합이라고 하는 곳은 부부적인 규제완화 이후 흥청망청 대출을 남발하다가 휘청거리기도 했다. 연방정부는 이런 금융 기관들의 문을 닫게 하고, 납세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치면서 예금자들에게 예금액을 지급해주었다.

레이건과 그의 후임자 조지 부시(1989~1993 재임) 대통령 임기중에는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했고, 1980년대에도1970년대에 국가를 괴롭혔던 경제적 병폐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은1970년대 들어서는10년 중7년 동안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1980년대를 거치면서 무역적자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게다가 빠르게 성장한 아시아는 경제의 발전소였던 아메리카 대륙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특히 장기적인 경제계획과 기업, 정부, 금융이 긴밀히 관계를 맺고 효율적으로 협력했던 일본은 미국을 대신해 경제성장의 대안적인 모델처럼 보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기업들의 주식 가격을 끌어내린 뒤 재가공하여 경영권을 되팔거나 분해하는 ‘기업사냥꾼’이 등장했다. 기업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자기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거나, 아예 기업사냥꾼에게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이런 다툼을 우려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은 기업사냥꾼이 좋은 기업을 망가뜨리고 근로자들에게 슬픔을 안겨주며 기업을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냥꾼이 경제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이 부실한 기업을 인수하여 조직을 슬림화한 후 다시 수익을 내는 회사로 변신시키거나, 투자자들에게 되팔아서 이익을 얻을 수도 있게 하고 그들이 재투자하여 생산성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1990년대를 지나서

 

1990년대에는 새로운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 1993~2001 재임)이 있었다. 신중하고 온건한 민주당원이었던 클린턴은 전임 대통령들과 몇몇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의료보험 수혜자를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의회에 의해 좌절된 후 클린턴은 미국에서‘큰 정부’ 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는 몇몇 부문에서 시장 세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지하면서 의회와 함께 지역 통신 서비스를 경쟁체제로 개방하였다. 또한 복지혜택을 줄이기 ㅜ이해 공화당과 손을 잡기도 했다. 클린턴은 지속적으로 연방정부의 업무 영역은 줄여나갔지만 국가 경제에서 정부의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뉴딜 정책의 중요한 혁신 과제 대부분과 그레이트 소사이어티 정책의 장점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계속해서 경제활성화의 전반적인 속도를 조절하고 인플레이션이 재발되는 징후가 보이는지 감시하게 했다.

그러는 사이 경제는 1990년대를 통과하면서 급속히 튼튼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1980년대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정권이 몰락하면서 그들과 교역할 기회가 바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기술 발전은 복잡하고 새로운 전자제품의 영역을 넓혀주었다. 원격통신과 컴퓨터 네트워킹 분야의 기술혁신은 방대한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산업을 발전시켰고 기업들의 운영방식에 혁신을 가져왔다.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기업의 수익은 놀랄 만큼 증가했다. 낮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실업률, 거기에다 높은 수익성으로 주식시장이 폭등했다. 다우존스 산업지수는1970년대에 겨우1000포인트였던 것이1999년에는11,000포인트를 기록했고,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부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반면에 1980년대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던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로 돌입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더 유연하고 덜 계획적이고 더 경쟁적인 미국 방식이 새로운 세계경제 통합 환경에는 더 나은 전략이라고 결론지었다.

미국의 노동력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특색 있게 변화했다. 장기적인 추세에 따라 농민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력은 얼마 되지 않았고,더 많은 사람들이 가게 점원에서 재정분석가 까지 다양한 서비스직에 종사하게 되었다.더 이상 철강과 신발이 미국의 제조업을 이끌어가지 않았으며 컴퓨터와 소프트웨어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1992년에는 2,900억 달러로 최고를 기록한 후 연방예산은 경제 성장으로 세수는 늘어났지만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1998년 정부는30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비록 베이비 붐 세대에게 지급할 미래의 사회보장기금 형태로 많으 빚을 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빠른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낮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자 이에 놀란 경제학자들이 지난40년 간의 경험을 근거로 들며 과연 미국의‘새로운 경제’ 가 언제까지 빠른 성장을 유지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마지막으로 미국 경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세계경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클린턴은 전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무역장벽을 없애는 정책을 추진했다. 북아메리카 자유무역협정(NAFTA)은 미국과 가장 큰 교역상대국인 캐나다와 멕시코 간의 경제적 유대를 한층 더 돈독히 했다. 1980년대에 급속히 성장한 아시아는 유럽과 함께 완성품의 주요 공급자이자 미국 수출품의 중요한 시장이 되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세계 통신 시스템은 세계의 자본시장을 하나로 연결시켜주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세계경제 통합이 모든 나라에 이익이 되지만 상호의존도가 깊어지면 그만큼 혼란스러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첨단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근로자들(미국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은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지만 전통적인 제조업 부문에서는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임금 수준이 내려가는 추세이다. 1990년대 말 일본과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이 휘청거리자 세계 금융 시스템에 충격파가 밀려왔다.미국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국내 경제의 방향을 잡는 데 있어 세계경제의 상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여전히 미국인들은 자신감을 회복한 채 1990년대를 마감했다. 1991년3월부터1999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미국 경제는 역사상 가장 긴 평화기를 누렸다. 1999년11월 현재 실업률을 겨우4.1퍼센트로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소비자물가는1998년 겨우16퍼센트 상승했고(1964년 이후1년을 제외하고 계속 해서 조금씩 증가했다), 1999년에 다소 빠르게 상승했다(10월에2.4퍼센트). 여전히 많은 도전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미국은20세기를 헤쳐오면서 더욱 튼튼해졌다.



http://usa.usembassy.de/etexts/oecon/index.htm

 This volume was prepared for the U.S. Department of State by Christopher Conte, a former editor and reporter for the Wall Street Journal, with Albert R. Karr, a former Wall Street Journal reporter. It updates several previous editions that had been issued by the U.S. Information Agency beginning in 1981.

   An Outline

      of the

          U.S.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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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y pressed vigorously for other countries to reform their economies to operate more on market principles too.

나아가 미국은 다른 나라도 자유시장 경제의 원리를 더욱더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압력을 넣었다.

 

CHAPTER 1


  Continuity

      and

         Change

The United States entered the 21st century with an economy that was bigger, and by many measures more successful, than ever. 

21세기에 들어 미국의 경제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Not only had it endured two world wars and a global depression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but it had surmounted challenges ranging from a 40-year Cold War with the Soviet Union to extended bouts of sharp inflation, high unemployment, and enormous government budget deficits in the second half of the century. 

20세기 전반부에는 두 차례의 세계 전쟁과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후반부에는40년 동안 소련과의 냉전 수위가 높아지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고실업, 과도한 재정 적자를 경험했다.

The nation finally enjoyed a period of economic calm in the 1990s: prices were stable, unemployment dropped to its lowest level in almost 30 years, the government posted a budget surplus, and the stock market experienced an unprecedented boom.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경제적 안정기를 누릴 수 있었다.

물가는 안정되었고 실업률도 근30년 이래로 가장 낮아졌다. 

또한 정부는 흑자 예산으로 돌아섰고 주식시장도 전례 없이 호황을 누렸다.

     In 1998, America's gross domestic product -- the total output of goods and services -- exceeded $8.5 trillion. 

1998년 미국의 국내 총샌산량(Gross Domestic Product:물건과 서비스의 총샌산량)은8조5천억 달러를 넘었다. 

Though the United States held less than 5 percent of the world's population, it accounted for more than 25 percent of the world's economic output. 

이로써 미국은 세계인구의5퍼센트 미만에 불과하지만 경제 생산량은2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Japan, the world's second largest economy, produced about half as much. 

당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하던 일본도 미국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And while Japan and many of the world's other economies grappled with slow growth and other problems in the 1990s, the American economy recorded the longest uninterrupted period of expansion in its history.

일본과 다른 국가들은1990년대에 저성장과 기타 문제로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혔다. 

그러나 미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가장 오랫동안 경제 성장기를 구가했다.

     As in earlier periods, however, the United States had been undergoing profound economic change at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그러나21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국은 의미심장한 경제적 변화를 겪었다.

A wave of technological innovations in computing, telecommunications, and the biological sciences were profoundly affecting how Americans work and play. 

컴퓨터와 통신, 생명공학과 같은 기술혁신의 물결은 미국인들의 일과 여가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At the same time, the collapse of communism in the Soviet Union and Eastern Europe, 

the growing economic strength of Western Europe, 

the emergence of powerful economies in Asia, 

expanding economic opportunities in Latin America and Africa, 

and the increased global integration of business and finance posed new opportunities as well as risks. 

그와 함께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의 붕괴, 

서유럽의 경제 성장, 

아시아에서의 경제 강국 출현,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확대되는 경제 기회, 

비즈니스와 금융 부문에서 나타난 세계적인 통합의 물결은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위험 요소를 안겨주었다.

All of these changes were leading Americans to re-examine everything from how they organize their workplaces to the role of government. 

이런 변화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산업구조의 재편에서부터 정부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재검토하도록 요구했다. 

Perhaps as a result, many workers, while content with their current status, looked to the future with uncertainty.

아마도 그때의 경험 때문에 많은 근로자들이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면서도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The economy also faced some continuing long-term challenges. 

경제 또한 장기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Although many Americans had achieved economic security and some had accumulated great wealth, 

significant numbers -- especially unmarried mothers and their children -- continued to live in poverty. 

많은 미국인들이 경제적 안정을 얻고 상당한 부를 축적했음에도 

소수의 소외된 사람들, 특히 미혼모와 그 자녀들은 계속 가난하게 살았다.

Disparities in wealth, while not as great as in some other countries, were larger than in many. 

다른 나라처럼 심각할 정도는 아니어도 부의 편중은 점점 더 심해졌다. 

Environmental quality remained a major concern. 

환경의 질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Substantial numbers of Americans lacked health insurance. 

상당수 미국인들이 의료보호 혜택을 받지 못했다. 

The aging of the large post-World War II baby-boom generation promised to tax the nation's pension and health-care systems early in the 21st century. 

전후 베이비 붐 세대의 노령화는 기금 고갈로21세기 초반에 국민연금과 의료보호 시스템에 발생할 혼란을 우려하게 했다.

And global economic integration had brought some dislocation along with many advantages. 

게다가 세계 경제 통합은 이점도 많았지만 혼란도 불러일으켰다 

In particular, traditional manufacturing industries had suffered setbacks, and the nation had a large and seemingly irreversible deficit in its trade with other countries.

특히 전통적인 제조업의 후퇴를 초래했고, 국가는 해외교역에서 대규모의 적자를 감수해야만 했다.

     Throughout the continuing upheaval, the nation has adhered to some bedrock principles in its approach to economic affairs. 

계속되는 변화를 겪으면서도 정부는 경제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 몇 가지 기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First, and most important, the United States remains a "market economy." 

가장 중요한 점은 미국이‘시장경제’를 표방한다는 사실이다.

Americans continue to believe that an economy generally operates best when decisions about what to produce and what prices to charge for goods are made through the give-and-take of millions of independent buyers and sellers, not by government or by powerful private interests. 

미국인들은 정부 또는 힘있는 개인의 이익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개인들의 수요와 공급을 통해 어떤 물건을 만들 것이며, 또 그 물건을 만들 때 소요되는 생산비에 따라 가격이 정해질 때 경제가 가장 잘 돌아간다고 믿는다.

In a free market system, Americans believe, prices are most likely to reflect the true value of things, and thus can best guide the economy to produce what is most needed.

이러한 자유시장 체제에서 가격은 그 물건의 진짜 가치를 반영하며, 따라서 가격은 가장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훌륭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Besides believing that free markets promote economic efficiency, Americans see them as a way of promoting their political values as well -- especially, their commitment to individual freedom and political pluralism and their opposition to undue concentrations of power. 

미국인들은 자유시장이 경제 효율성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다원주의에 기여하고 과도한 권력집중을 막음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Indeed, government leaders showed a renewed commitment to market forces in the 1970s, 1980s, and 1990s by dismantling regulations that had sheltered airlines, railroads, trucking companies, banks, telephone monopolies, and even electric utilities from market competition. 

사실상 정부 지도자들은1970년대와1980년대,그리고1990년대에 항공,철도,트럭 회사들과 금융 기관, 통신회사 심지어는 전기회사의 독점권을 보호하는 규정을 철폐함으로써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보여주었다.

And they pressed vigorously for other countries to reform their economies to operate more on market principles too.

나아가 미국은 다른 나라도 자유시장 경제의 원리를 더욱더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압력을 넣었다.

     The American belief in "free enterprise" has not precluded a major role for government, however. Americans at times have looked to government to break up or regulate companies that appeared to be developing so much power that they could defy market forces. 






companies : 동료, 교제, 회사, 친구들,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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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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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저자사항. 미국의 경제/ 크리스토퍼, 콩트; 앨버트 R. 카 [같이]지음; 이은정 옮김. 여러형태의 표제. Outline of U.S. econo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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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ibrary.pcu.ac.kr/volcanoi/global/docs/s_detail.html?mastid=536029&p_hanja_display=

 

 

항목   서지사항
 
ISBN   899028743X 04940
ISBN   8990287391(세트)
언어부호   본문언어 - kor, 원저작언어 - eng
청구기호    330.973 미17kㅇ
서명/저자   미국의 경제 = American economy / 크리스토퍼 콩트 ; 앨버트 R. 카 [공]지음 ; 이은정 옮김
발행사항   서울 :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 2004
형태사항   231 p. : 삽도 ; 22 cm.
주기사항   미국 국무부에서 발행된 자료의 한국어판임
원저자   Conte, Christopher
원서명   Outline of U.S. economy
기타저자   Karr, Albert R.
기타저자   이은정
기타저자   United States. Dept. of State
가격   ₩비매품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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