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도곤족과 시리우스의 미스테리 천문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4/01/29/200401290500062/200401290500062_5.html





구릉과 암벽으로 이뤄진 도곤 마을

8월1일 일행은 젠네를 뒤로하고 도곤 마을로 향했다. 도곤 마을의 인구는 약 30만으로 말리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한다. 19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그리올 교수와 그의 연구팀이 현지답사를 통해 도곤족의 실상 을 세상에 알렸다. 그 후 그들의 전통문화, 특히 장례식과 제례의식, 각종 축제, 그리고 추상성이 강한 조각과 마스크 등 예술작품이 유럽인들에 의해 높이 평가됐다.

도곤 마을은 약 200km에 달하는 기암절벽의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다. 한 마을에 평균 3000명이 모여 사는 100여 개의 마을이 암반 구릉지대와 암벽 아래 비탈에 산재해 있다. 도곤족들은 암벽 밑의 비탈진 바위틈에 토담집을 짓고 산다. 목축과 농경이 생활수단이며 재배작물은 조, 옥수수 등이다.

도곤 거주지역의 암벽은 지구상에 흔하지 않은 환경으로 특기할 만하다. 이 암벽은 니제르강 서남쪽에 위치하며 북쪽의 방카스(Bankas)로부터 남쪽의 두엔짜(Douentza)까지 뻗어 있다. 암벽의 최북단은 말리에서 가장 높은 홈보리산(해발 1115m)이다.

   (계속)






[문화 기행]

아프리카 말리의 젠네·도곤 마을을 가다
초자연적 생명력 ‘냐마’에 순응하는 오지(奧地)의 순수

연속되는 암벽은 마치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서 있다. 암벽에는 천연동굴이 군데군데 있는데, 원래 도곤족 이전에는 체구가 아주 작고 사람을 피해 나무 위에서 살았던 원주민 예반(Yeban)족이, 다음으로는 난쟁이 피그미와 비슷한 텔렘(Tellem)족이 이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도곤족은 타 부족과의 전투를 피해 14세기경 이 지역으로 이주, 텔렘족을 몰아내고 삶의 터전으로 삼았으며, 외침이 있을 때마다 암벽 동굴에 숨어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동굴은 지금 주거용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유해를 안장하는 묘지로 이용되고 있다.



도곤 거주지역은 크게 3개 지대로 구분된다. 바위로 형성된 구릉지대, 높이 300∼600m의 암벽지대, 그리고 부르키나파소 접경의 특구지대가 그것이다. 암반 구릉지대는 불모지로 경작이 어려워 겨우 몇 개의 마을만 있을 뿐이다. 반면 암벽지대에는 가파르고 험한 절벽 밑 언저리의 바위틈에 토담집을 짓고, 약 4개월간의 우기 중 비가 내린 후 잠시나마 개울에 물이 고일 때 멀리 마을 앞의 모래밭을 일궈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부르키나 접경의 특구지대는 원래 유목민인 펠족의 거주지였으나, 도곤족이 대거 이주했으며, 이들 도곤족은 부르키나파소와 내륙 도곤 마을 사이에서 상업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다.




도곤족의 철저한 계급사회

이처럼 장구한 세월을 암벽지대에서 살아온 도곤족은 수준 높은 예술 감각을 살린 각종 공예품을 제작하는 등 그들만의 고유문화를 지니게 됐다. 도곤족은 철저한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다. 특권층은 성직자, 추장에 이어 대장장이, 금세공과 피혁을 다루는 장인, 사냥꾼 등이며 하층민은 농민이다. 또한 대가족이 모여 한 마을을 이루고, 그 중 연장자가 추장이 된다. 한편 마을 단위로 호선하여 종교지도를 맡는 성직자 호곤(Hogon)을 뽑고, 마을의 의례를 주관하는 사제 렐레(L?l?를 선정한다.



마을 호곤 위에는 전지역을 총괄하는 최고의 호곤이 있다. 호곤의 의상과 행동은 도곤족의 창세신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들 종족 집단의 사회조직과 전통문화와 직접적 연관성을 갖춘, 격이 높은 추상성이 내포돼 있다고 한다. 도곤족의 창세신화는 그리스 신화나 기독교 성서의 창세기편 이야기와 비슷하다. 태초에 창조신 암마(Amma)가 하늘나라에서 씨앗을 만들어 지상에 있는 두 개의 태반에 심었다. 그 결과 양성구유(兩性具有)의 8쌍둥이 신 놈모(Nommo)를 낳게 된다. 8쌍둥이 중에는 비를 내리게 하는 물의 신, 불을 지상으로 갖고 온 신, 대장장이 신 등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신 가이야, 천공의 신 우라노스,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신, 그리고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세계에 갖다 준 프로메테우스 같은 신들이 존재한다.



도곤족 대대로 구전돼온 신화에 따르면 창조신 암마가 지상에 내려와서 점토로 사람을 빚어 생명을 부여했으며, 흑인들은 태양의 자손이라 피부색이 검고, 유럽인들은 달의 자손이기에 피부가 희다고 믿는다. 8쌍둥이 신 놈모 형제 가운데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로 인간에게 재앙을 갖다준 것과 같은 사악한 신 율그(창백한 여우 또는 쟈칼)도 있으며, 반신반수의 괴물신이 있듯이 이들의 신화에도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뱀인 신도 등장한다. 또한 3000년 전 밤하늘의 시리우스 성좌에서 귀인이 양떼를 몰고 도곤 마을로 내려왔다는 전설도 있다.



이러한 신화와 전설을 근거로 도곤족은 장례식과 조상들에 대한 제례를 치를 때 여러 형태의 가면 춤을 추는 특유의 문화를 지니게 됐다. 또한 50∼60년 주기로 시귀이(Sigui) 축제를 갖는데 이는 시리우스 성좌에서 귀인이 내려온 것을 기념하는 행사라고 한다. 우리 일행이 야영 본거지로 삼았던 놈보리 마을에서는 1966년에 시귀이 굿을 벌였다고 하며 앞으로 30여 년 이후 다시 시귀이 축제가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아바그룹과 마스크춤

우리는 촬영을 목적으로 놈보리 마을 청년 40명을 동원, 제례의식을 재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이 춤판에 쓰고 나온 가면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시리게(Sirige)라 불리는 마스크는 높이 6∼7m나 되는 나무막대를 얇게 깎은 뒤 그 양면에 직사각형과 원형 등 각종 기하학적 무늬를 붉은색과 흰색을 번갈아 칠해 계단식으로 장식했다. 춤을 출 때는 머리 위로 치솟아 올라간 가늘고 긴 막대를 360도로 회전시킨다. 시리게 마스크 춤은 창조신 암마가 무수한 별들이 회전하는 우주를 창조한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고 또 시리우스 성좌에서 귀인이 내려올 때 시리게 마스크 모양의 긴 사다리를 타고 온 것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이 행사는 도곤족 사회에서 각 마을 단위로 성인식을 거친 청소년들로 구성된 아바(Awa) 또는 아베(Ave)라는 비밀결사조직이 전담한다. 이들 그룹은 마스크의 제작과 사용, 보관 등을 전담한다. 아바그룹을 비밀결사라 보는 것은 회원이 아닌 사람, 특히 어린이와 여성에게는 마스크의 제작, 사용을 절대 비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례 때 누가 어떤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춘다는 것까지도 비밀이라고 한다.

   (계속)






아바그룹의 구성원은 그 마을의 청소년들이다. 일단 가입한 자는 백발이 되도록 조직원으로 남아 있다가 일정한 통과의례를 거쳐 장로계층으로 승격한다. 마을 소년들이 할례의식을 마치면 가입 자격이 부여된다. 


가입 이후 2년간 선배들로부터 마스크의 제작과 관리능력을 익힌 다음 각자의 체질과 자질에 알맞은 마스크를 택하여 쓰고 춤을 추게 한다. 마스크 춤을 추려면 나이가 반드시 15세 이상이어야 한다. 아바그룹의 우두머리는 최고령자인 물로노(Mulono)이며, 물로노는 두 사람의 보좌 시지(Sigi)를 둔다. 두 사람의 시지 중 연장자가 그룹의 실제 지휘자가 된다. 그 다음 서열은 다른 한 사람의 젊은 시지고, 그 다음이 젊은 그룹원들 순서대로다.


그룹의 우두머리와 고령자들은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한다. 우두머리 물로노는 아바그룹의 비밀 아지트에 은둔하여 3개월간 시지와 비밀언어를 익히고, 도곤의 신화와 마스크에 대한 금기사항 등을 배운 다음 장로계층이 선정하는 사범(Ma븊re de la Brousse)으로 승격하고, 아바그룹은 새 우두머리를 정한다. 이런 방식으로 세대교체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는 전수됐고 오늘날까지도 도곤족의 전통이 이어져온 것이다.


금기사항으로 여성과 아이들은 아바그룹에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지만, 점쟁이 여성 야시긴(Yasigine)만은 예외다. 야시긴은 장례식이나 제례 때 주인공(상주)인 안둠불루(Andoumboulou)가 쓸 마스크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접근을 허용한다.




입체파에 도움준 도곤의 조각


우리 일행에게 주민들이 선보인 놈보리 마을의 춤은 촬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 의식이 아니라 모든 제례의식을 총괄한 것이었다. 마을의 장례식과 조상의 제사 등 행사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마스크가 등장한다. 마스크는 동물 모양도 있고 형이상학적, 기하학적 무늬도 있다. 


동물 모양 마스크는 하이에나, 치타, 크로커다일, 원숭이, 토끼, 영양, 가젤, 물소, 코끼리, 타조, 앵무새, 수탉, 암탉 등 각종 동물과 사람의 형상 등 수백 종에 달한다. 예컨대 원숭이 가면만 하더라도 흰 원숭이, 붉은 원숭이, 검은 원숭이 가면 등이 있으며, 사람 형상 가면도 처녀, 남성, 도둑, 대장장이, 사냥꾼 등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 한자의 날 출(出)자처럼 생긴 카나가(Kanaga) 마스크는 높은 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창조신 암마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암마신은 원래 스스로 회전하면서 공간을 넓혀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날 출자 모양의 윗부분은 하늘을, 아랫부분은 대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수준 높은 신화와 전설은 도곤족의 조각에도 주요 모티브가 됐다. 때문에 일찍이 유럽화가들, 특히 피카소 등 저명한 입체파 화가들은 도곤족이 만든 특이한 형태의 조각에서 영감을 얻어 입체파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놈보리 마을 학교의 아나사구 고이바(47) 교장과도 만났다. 그는 이 고장 출신이 아닌 듯 필자의 질문에 이 마을 출신 농부인 다니엘 긴도(46)에게 현지 말로 되물어 대답하곤 했다. 도곤족 청년들이 돈벌이가 좋은 외지로 나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서 전통문화를 지키는 이유를 묻자, “사실은 많은 엘리트 청년들이 외지로 돈을 벌러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 향후 도곤족의 전통문화 보존을 걱정했다.




주술사와 전통의 퇴색


하루는 한나절을 할애하여 이웃 마을 티렐리(Tireli)와 코마카니(Komakani), 그리고 이델리 나(Ydeli Na)를 차례로 방문했다. 그 마을에서는 우연히도 호곤을 만났다.


호곤은 마을의 성직자이며, 도곤족의 전통 종교지도자다. 우리가 만난 호곤은 이름이 아마 이케레(Ama Ikere)라고 하며 나이는 칠순이 넘어 보였다. 그는 주술로 점도 치고 병도 고친다고 했다. 필자는 호기심에 약간의 돈을 놓고 점을 보았다. 그는 호리병박과 조개껍데기 같은 여러 가지 주술도구를 흔들어 잠시 점괘를 보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객지에서 꽤 많은 고생을 하게 될 것이며,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고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당신 나라에서는 고명한 사람이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 당신이 귀국하기 전에 좋지 못한 소식이 전해질 것이다.”


필자는 속으로 픽 웃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귀로에 바마코에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 뉴스를 듣게 되었고, 일행 중 두 사람이 여권을 잃어버리고 6명이 항공권을 도난당하자 도곤 마을 호곤의 말을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마을에서 장로들이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는 토구나(Toguna)와 월경중인 여인을 감금하는 이색적인 집, 그리고 조상을 모시는 제당을 답사했다. 그러나 어느 마을이든 가톨릭 교회가 하나씩 세워져 있었고, 주민의 절반은 이슬람으로, 절반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지 오래됐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의 전통종교가 점차 전설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기우를 떨칠 수 없었다.



다음날에는 반디아가라에서 도곤 마을로 들어가는 남쪽 관문인 상가(Sanga)로 이동하여 포장도로를 따라 바나니(Banani) 마을로 접근했다. 그곳에서는 50여m의 높은 절벽에서 물이 떨어지는 폭포와 수없이 많은 천연동굴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 마을을 돌아다녔으나 목각과 가면 중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물건은 단 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놈보리박물관이나 바나니에 신축중인 박물관의 소장품, 그리고 여러 목각 판매 가게를 둘러봐도 그러한 예술작품이나 골동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도곤 마을을 답사한 소감은 솔직히 허탈했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도곤 문화재의 오리지널은 모두 유럽 등지로 유출돼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인류박물관,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아프리카-대양주미술박물관, 다페르박물관, 퀘 뒤 블랑리박물관 등에, 그리고 독일의 리트베르그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박물관 등에 전시돼 있다.



도곤족의 우수한 전통문화가 세계화의 거센 흐름에 밀려 현대문명과 외부의 자극에 견디지 못하고 그 순수성이 점차 퇴색되고 있다는 점도 우리 일행을 서운하게 했다. 나무로 만들던 가면은 점차 플라스틱 가면으로 바뀌고, 춤꾼들의 옷치장도 옛날의 밀짚이 아닌 인조섬유로 바뀌었다. 축제와 제례의식 때 추던 춤이 관광상품으로 전락해 아바그룹은 이제 일당을 받지 않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척박한 땅, 메마른 환경에서 가뭄과 가난에 시달리던 도곤족의 엘리트들은 돈벌이를 위해 외지로 다 떠나버렸고, 고향마을과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은 고령자와 무능한 사람들의 몫이 되어 있었다. 이런 도곤족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하기야 이것은 21세기 문턱에서 지구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곤 마을에서의 마지막 날인 8월4일, 반디아가라에서 북쪽으로 약 36km 떨어진 송고(Songho) 마을을 찾았다. 마을에 들어서자 의무적으로 유료안내원을 쓰게 했다.




안내원이 이끄는 대로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갔다. 재미있는 것은 가옥의 형태와 용도였다. 네모꼴 토담의 밀짚지붕은 보통의 살림집이고 고양이 가죽을 주렁주렁 매단 토담집은 곳간이다. 원추형 토담벽 여러 곳에 사람 형상을 부조(浮彫)로 새긴 집은 놀랍게도 월경중인 여인들을 감금하는 마을회관이라 했다. 마을 한가운데 세워진 독특한 모양의 토구나(장로들이 모여 마을의 일을 의논하는 장소) 등은 그간 놈보리에서 야영하며 둘러본 집들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마을 뒤편에 있는 원추형 토담은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제당이다. 거기서 좀더 떨어진 외딴 곳에는 같은 모양의 토담집이 또 하나 있었는데, 안내원은 그곳이 창조신 암마를 모시는 가장 신성한 신전이라고 했다.









할례에 얽힌 이야기


마을의 골목길을 벗어나 뒷산 언덕으로 올라가자 높이 30m, 폭 40m에 이르는 큼직한 바위가 마치 현대 도시의 높다란 빌딩처럼 우람하게 서 있다. 암벽 곳곳에는 수백수천을 헤아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일행의 눈길을 끌었다. 송고 마을에 거주하는 말리크 야노게(41)씨는 이 벽화의 유래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아프리카 소수민족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령계층제에 따라 도곤족도 어린이가 자라면 통과의례인 성인식을 거친다. 이곳은 성인식을 결행하는 장소로서 3년마다 인근마을의 12∼15세 소년들이 이곳에 모여 극기훈련과 할례시술을 받는다고 한다. 할례시술 열흘 전 해당 소년들을 소집하여 합숙훈련을 시작한다. 소년들은 성인이 되기 위한 체력과 인내심을 기르는데 10일간의 극기훈련이 끝나면 할례시술을 받게 된다.





우선 의식을 주관하는 사제(렐레)가 큰 뱀을 잡아 바위 밑에 갖다 모신다. 도곤 사회에서는 뱀을 신성시한다. 아마도 신화에 얽힌 네이(Nay)라는 뱀일 것이다. 


소년들은 사제의 구령에 따라 차례로 뱀에게 닭 한 마리씩을 제물로 바친다. 


던져진 닭을 뱀이 삼키면 소년들의 할례시술이 시작된다. 


이런 순서로 100여 명의 소년들이 한꺼번에 할례의식을 치른다.





시술이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암벽 옆에 있는 별도의 공간에 이들 예비성인을 한 달 동안 격리 수용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한 채 고된 훈련을 계속한다. 매일 아침수용소가 있는 바위산에서 내려가 약 500m 지점의 들판에 있는 바오밥 나무를 돌아서 다시 바위산으로 올라오는 왕복 1km의 구보를 반복한다. 구보훈련이 끝나는 마지막 날에는 경주시합을 벌인다. 경주에서 1∼3등을 한 입상자에게는 출신마을로 돌아가면 마음에 드는 처녀를 결혼상대로 골라잡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또 한 가지 시합은 암벽 밑에서 돌팔매질을 하여 높이 30m 가량의 암벽 정상까지 던져올리는 것인데 성공할 경우 역시 경주에서 입상한 것과 같은 영예를 누리게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혹독한 과정을 거치면 명실공히 어른이 되어 결혼자격을 얻고 소질에 따라서는 비밀결사 아바그룹의 회원이 되는 등 출신마을 사회에서 어엿한 한 사람의 구성원이 된다. 이 어려운 성인식 과정을 무사히 마친 소년의 부모는 감사의 표시로 이곳 암벽을 찾아와서 기념으로 그들의 가문을 상징하는 그림을 한 점씩 그린다. 도곤족 소녀들 역시 합숙장소와 방식이 다를 뿐 결혼 전에 반드시 할례시술과 성인식을 거쳐야 한다.




음핵과 전갈



아프리카 소수민족사회에서는 할례의식이 전통적으로 보편화돼 있다. 할례의식을 치르는 이유와 목적, 방식은 집단에 따라 각각 다르다. 그 중 공통된 이유와 목적은 성인이 되기 위해, 결혼 준비를 위해, 부족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청결을 위해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도곤족의 할례의식에는 색다른 이유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남녀의 성별을 확실히 구분하기 위함이다. 이들의 신화 중 할례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한다.




8쌍둥이 놈모 신들은 모두 남녀 양성을 구유한 존재였다. 


놈모 신의 후예인 인간은 그러므로 본래 양성의 영혼을 소유한다. 


즉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상이한 두 성(性)에 상응하는 두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여성적 영혼이 음경의 포피에 자리잡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 남성적 영혼이 음핵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놈모는 어쩔 수 없이 최선의 해결책을 강구했다. 


인간은 이중적 존재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 더 나은 성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마침내 놈모는 남자에게 할례를 하여 음경 포피의 여성성을 제거하도록 했다. 


이 표피는 뱀과 같은 동물로 변했다. 그것이 ‘네이’라는 동물이다. 


네이는 죽은 자의 시신 덮개처럼 흑백으로 얼룩덜룩한 도마뱀의 일종으로 그 이름은 여성의 상징 숫자인 ‘4’ 와 여성의 실체인 ‘태양’을 의미한다.






柳鍾玄
●1934년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문리대 졸업
●1958∼94년 외교부 근무
●1985∼90년 주(駐)니제르 대사 및 주세네갈 대사
●1994∼98년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아프리카박물관 부설 아프리카문화원 원장
●저서 : ‘유적따라 성지찾아 세계일주’(1996), ‘아프리카의 부족과 문화’(2000) 등















네이는 할례의 고통과 아울러 남성도 여성처럼 성기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놈모는 첫 번째 인간 부부의 남성은 여성과 결합토록 했고, 얼마 후 여성은 도곤족의 조상이 되는 8명 중에서 두 아이를 출산했다. 




때 분만의 고통이 음핵에 집중되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음핵을 절제하자 음핵은 여성의 몸에서 떨어져나가 전갈로 변했다. 


전갈의 독침과 독주머니는 인간의 내장을 상징하고, 독은 고통의 물이자 피를 의미한다. 


필자는 도곤족의 이런 특이한 할례 풍습과 전설에서 또 한번 수준 높은 그들의 전통문화를 평가할 수 있었다.


이번 답사에서 필자는 도곤족의 전통문화를 좀더 폭 넓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뜻을 갖게 됐다.



   (끝)



 글: 유종현 전 주(駐)세네갈 대사·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발행일: 2004 년 02 월 01 일 (통권 533 호)
 쪽수: 582 ~ 59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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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곤족의 미스테리 | 우리들의 이야기
미스테리 | 조회 34 | 2012/10/09 16:08:43

소위 보이니크 사본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뉴욕의 고대유물 수집가 보이니크가 로마에 가까운 어떤 옛성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는 상자속에서 이사본을 발견 하였다고 한다.
 
그 사본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이런 아리송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같은 스핑크스는 그 주인 이외의 명령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사본은 암호해독가에 의해서도 컴퓨터에 의해서도 완전히 해독 되지 못하였다.
이 사본 은 13세기 혹은 15세기에 씌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알아 볼 수 있는 내용만으로도
식물학, 천문학, 생물학적 문제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 중에는 현미경을 사용해야만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의 잎이나 뿌리의
횡단면을 그린 그림이 있는가 하면, 페가수스의 중심과 안드로메다의 띠와
카시오페아자리 등에 대한 그림이 있다고 한다.
 
1920년대에 이 그림을 연구한 펜실베니아 대학의 둘리틀은
그 그림이 틀림없이 성운을 표시한다고 단정짓기에 이르렀다.
1946년 프랑스 인류학자 그리올과 디틀렌은 당시 서부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반 디아가라 고원과 홈보리산 일대에 살고 있던 22만 명 정도의 도곤족과
인근의 세 종족의 전설을 4년여간 수집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1951년 수단 계통의 시리우스 시스템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보고는 1976년 언어학 자이며 천문학자인 템플에 의해 도곤족의 전설이 천문학적으로 입증되었다.
도곤족은 50년마다 한 번씩 시구이 축제를 벌인다.
 
이 축제의 날짜는 포톨로라는 별을 보고 정하는데,
이 별은 약 50년을 주기로 제자리에 돌아오는 별인 것이다
포라는 말은 도곤족이 먹는 곡식중 가장 알맹이가 작은 것의 이름이다.
포는 남쪽 하늘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별을 50년에 한 번씩 돈다.
그러나 그 별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별이다. 포는 별들 중에서 가장무거운 별이며
사람의 눈에 잘 보이는 별의 주위를 돌면서 그 별의 궤도를 결정하는 별이다.
 
우리는 남쪽 하늘에서 제일 밝은 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일명 개의 별, 천랑성이라고 불리는 시리우스이다.
 
고대부터 알려진 시리우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19세기의 천문학자 베쎌은
1834년, 시리우스의 궤도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후 12년에 걸쳐 시리우스를 관찰한 결과 시리우스의 궤도가
미지의 천체의 인력으로 주기 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미지의 별에 시리우스 B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상되는 위치를 끈질 기에 찾았지만
당시의 최고 성능을 지닌 망원경으로도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1862년에 클라크에 의해 제작된 73cm짜리 망원경으로 확인 되었다.
바로 이 별이 도곤족들 사이에서 전설로 전해 내려 오는 별, 포이다.
오지에 사는 이들에게 누가 천문학적 지식을 알려 주었겠는가?
그들의 추장 오고템메리는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놈모의 후예라고 한다.
하늘 나라에서 놈모는 그 곳에서 자라는 식물의 섬유를 가지고 지구에 왔다고 한다.
 
그는 땅을 만들고 식물과 동물을 만든 다음, 사람을 창조 했는데,
이들로부터 지상의 여덟개 종족이 생겨났으며 그들은 끝없이 오랜 세월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의 사실이라면 그들은 시리우스 B에서 온 외계인의 후예라는 말이 된다.
시리우스 별까지의 거리는 7, 8광년이다. 현재의 과학으로도 시리우스까지의 비행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곤족들은 놈모를 기리는 축제를 50년 마다 벌이고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shogun/4rbQ/2
원문 : 유니텔 미스테리 동호회 자료실

출처 :역사를 창조한 전투 원문보기▶ 글쓴이 : 임용관
 





http://www.universemind.org/index.php?document_srl=10882&mid=mystery1&order_type=desc&comment_srl=10168&sort_index=title

2012.09.29 09:36
) 잊혀진 황금시대
무한자
) 잊혀진 황금시대 

안데스 산중에는 티아와나코라는 폐허가 된 고대도시가 있다. 이곳은 
해발 4천미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해발에서는 인간이 생활하기 적합 
하지 않다. 그런데 이곳에서 항구의 흔적이나 조개껍질 등 바다동물의 
화석 따위가 발견되었다. 즉 이 도시가 일찍이 바다근처에 있었거나 바 
다와 같은 높이에 있었음을 말한다. 

이 티아와나코의 근처인 티티카카호수에서는 깊이 8미터 지점에서 하 
나의 무게가 200톤이나 되는 거대한 돌덩이로 만든 벽의 파편과 건물 파 
편 등이 인양된 바 있었다. 벽은 포장된 도로 양측을 따라 1킬로 이상 
이나 뻗어 있었다. 

타이와나코의 고고학연구소 소장 루벤윌레이 교수는 그 유적을 귀족의 
장례식이 행해졌던 해안사원이라고 단정지었다. 

인도에는 흑파고다라는 이름의 사원이 있는데 이 사원의 높이는 75미 
터이며 지붕은 2,000톤이 넘는 돌로 만들어져 있다. 이 정도의 무게를 
들어 올리려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기중기의 10배 이상의 힘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건물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이다. 이 등대는 기원전 3 
세기경에 프롤레마이오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팔로스 섬 위에 세워졌는 
데 그 높이가 150~200미터에 달하였다. 대략 16층 정도의 건물의 높이 
와 맞먹는 셈이다. 인류가 이렇게 높은 건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건축술 
을 익힌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외에 소멸된 고대문명의 거석 건축물은 많다. 이집트의 피라밋, 레 
바논의 바르베크에 있는 4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쥬피터 신전의 토대, 영 
국의 스톤 헨지의 규질사암열석군, 그래스톤베리 주위에 있는 30마일에 
달하는 석조 12궁 칼렌더, 바다 속까지 뻗어 있는 프랑스의 카르나크의 
거대한 입석열주, 페루의 삭크사이와만에 있는 거대하지만 완전히 다듬 
어 만든 성채등이 있다. 

고대 마야인들은 수레바퀴를 알지 못했으며 도자기나 철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정확하게 천체의 회전 주기를 알고 있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하는 시간은 그레고리오력에 의하면 365.242500일인데 비해 
마야인들은 365.24219일이라고 계산하였다. 대단히 정확한 천문기기를 
갖춘 오늘날에는 1년의 길이를 365.242198일로 보고 있다. 또한 그들은 
태음력의 길이도 0.0004일의 오차밖에 나지 않을 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 
었다. 이러한 정확한 고도의 지식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 
이 대단히 먼 과거로부터 지식이 축적되었음이 틀림없다. 

디오게네스 라엘티오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의 역사에는 일식이 
373회, 월식이 832회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횟수의 일식과 월식을 기 
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년 이상에 걸친 관측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천체관측이 시작되었음을 밝히는 자 
료도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춘분 무렵에 태양은 별자리중 물고기자리 
속에 있다. 그러나 2천년 전에는 양자리속에 있었다. 이렇게 태양은 2 
만 5천 9백 20년에 걸쳐서 천체를 일주한다. 그런데 2만 5천 9백 20년 
이라는 숫자를 수메르의 수많은 고문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수메르인들이 2만 5천 9백여년 이상 천체관측을 했음을 알리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또한 18세기에 {걸리버 여행기}를 쓴 영국소설가 스위프트는 화성에 2 
개의 위성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는 고대 학문과 고대서적 및 사본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였고, 이것들을 연구하는 도중에 그러한 사실을 깨달 
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 당시에는 태양계의 행성에 위성이 있는지 없는 
지를 분명히 볼 수 있는 성능 좋은 망원경도 없었다. 이후 156년이 지 
난 1877년에야 천문학자들에 의해 이 사실이 증명되었다. 나아가 스위 
프트가 2개 이상의 회전시간과 성격에 대해 밝힌 내용은 후에 얻어진 정 
확한 정보와 많은 유사점을 가졌다. 

소위 보이니크 사본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뉴욕의 고대 유물 수집 
가 보이니크가 로마에 가까운 어떤 옛성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는 상자 
속에서 이 사본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 사본에 붙어있는 종이에는 아 
리송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 이같은 스핑크스는 그 주인 이외의 명령 
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고. 이 사본은 암호해독가에 의해서도 컴퓨 
터에 의해서도 완전히 해독되지 못하였다. 이 사본은 13세기 혹은 15세 
기에 씌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알아 볼 수 있는 내용만으로도 식물학적, 
천문학적, 생물학적 문제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 중에 
는 현미경을 사용해야만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의 잎이나 뿌리의 횡단면을 
그린 그림이 있는가하면, 페가수스의 중심과 안드로메다의 띠와 카시오 
페아자리 등에 대한 그림이 있다고 한다. 1920년대에 이 그림을 연구한 
펜실베니아 대학의 둘리틀은 그 그림이 틀림없이 성운을 표시한다고 단 
정짓기에 이르렀다. 

1946년 프랑스 인류학자 그리올과 디틀렌은 당시 서부아프리카 말리공 
화국의 반디아가라 고원과 홈보리산 일대에 살고 있던 22만 명 정도의 
도곤족과 인근의 세 종족의 전설을 4년여간 수집하였다. 그 결과 이들 
은 1951년 {수단 계통의 시리우스 시스템}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 
르렀다. 그들의 보고는 1976년 언어학자이며 천문학자인 템플에 의해 
도곤족의 전설이 천문학적으로 입증되었다. 도곤족은 50년마다 한 번씩 
시구이 축제를 벌인다. 이 축제의 날짜는 포 톨로라는 별을 보고 정하 
는데, 이 별은 약 50년을 주기로 제자리에 돌아오는 별인 것이다. 포라 
는 말은 도곤족이 먹는 곡식중 가장 알맹이가 작은 것의 이름이다. 

{ 포는 남쪽 하늘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별을 50년에 한 번씩 돈다. 
그러나 그 별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별이다. 포는 별들중에서 가 
장 무거운 별이며 사람의 눈에 잘 보이는 별의 주위를 돌면서 그 별의 
궤도를 결정하는 별이다 } 

우리는 남쪽 하늘에서 제일 밝은 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일명 개의 
별, 천랑성이라고 불리는 시리우스이다. 고대부터 알려진 시리우스의 
정체를 파악하e 위해 19세기의 천문학자 베쎌은 1834년 시리우스의 궤 
도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였 
다. 그 후 12년에 걸쳐 시리우스를 관찰한 결과 시리우스의 궤도가 미 
지의 천체의 인력으로 주기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미 
지의 별에 시리우스 -B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상되는 위치를 끈질기에 찾 
았지만 당시의 최고 성능을 지닌 망원경으로도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1862년에 대형 망원경으로 제작으로 유명한 클라크에 의해 제 
작된 73cm짜리 망원경으로 확인되었다. e 바로 이 별이 도곤족들 사이에 
서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별, 포이다. 

오지에 사는 이들에게 누가 천문학적 지식을 알려 주었겠는가 ? 그들 
의 추장 오고템메리는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놈모의 후예라고 한다. 
하늘 나라에서 놈모는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의 섬유를 가지고 지구에 왔 
다고 한다. 그는 땅을 만들고 식물과 동물을 만든 다음 사람을 창조했 
는데, 이들로부터 지상의 여덟개 종족이 생겨났으며 그들은 끝없이 오랜 
세월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의 사실이라면 그들은 시리우스 
-B에서 온 외계인의e 후예라는 말이 된다. 

시리우스 별까지의 거리는 7, 8 광년이다. 현재의 과학으로도 시리우 
스까지의 비행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곤족들은 놈모를 기 
리는 축제를 50년마다 벌이고 있다. 

1633년 종교재판의 재판관들은 고문실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취조하 
였다. 그것은 갈릴레이가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가 우주공간을 회전하는 구라는 사실은 이미 인류사의 여명기에도 
인도, 이집트, 아메리카 각지의 경전과 고문서 속에 씌어 있었다. 특히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사실이외e〉 지구가 다른 행성들과 같은 법칙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천문기기나 이러한 결 
론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지식도 없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다. 

플라톤은 지구는 공과 같고 그것이 회전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있다고 
말했으며, 유대의 경전 {카바라}에는 인간이 사는 지구는 원처럼 회전하 
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어떤 지역이 밤일 때 다른 어떤 지역은 낮이라고 
적혀있고 그 근거로 태고의 서적을 들고 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한 코페르니e자봐뗏탕 로마 교황에게 제 
출한 논문의 서문에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고대인들이 쓴 책을 읽 
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고대인들은 조수의 간만이 달과 관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 
빌로니아의 천문학자 셀레우코스는 바다의 간만을 달의 인력에 의한 것 
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중국에서도 해면 상승의 원인이 달의 인 
력이라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았다. 로마의 시저도 만월 때 조 
수가 만조가 된다고 기록하였으며, 영국에 상륙하기 위해 조수가 만조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e 

그러나 16세기의 위대한 천문학자 케플러가 조수의 간만은 달에 의해 
일어난다는 이론을 발표했을 때 그는 몹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친척 중 한 사람이 마녀라는 이유로 화형에 처해졌 
고 그의 어머니는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죽었기 때문이다. 

슬라브인들은 먼 옛날 이 세상에는 물밖에 없었고 훗날 땅이 생겼다고 
하였다. 인도의 {리그베다}도 세계는 우주를 가득 채운 엄청난 물에서 
탄생하였다고 썼다. 중국의 고문서는 태초에 땅은 모두 물로 뒤덮여 있 
었고 후에 이 대양e【 생명이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남북아메리카의 인디오의 경전 {포플 부흐}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한 마리의 동물도 없었다. 새도 없었다. 
물고기도, 게도, 나무도, 돌도, 계곡도, 풀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하늘뿐이었다. 육지의 표면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차가운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뿐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세계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는 보기 어렵 
다. 그러나 달력에도 이러한 일치가 나타난다. 수메르, 바빌론, 고대 
이집트, 고대 인도에서는 1년을 12개월로 나누었다. 그리고 마야에서는 
1년이 360일이었고 이밖에 불행의 날, 이름이 없는 날로서 5일이 더 있 
었다. 이 동안은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무엇이든 나쁜 짓을 할 수 있 
었다. 이와 똑같은 관습이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있었다. 

2) 황금제국을 찾아서 

이밖에도 불가사의한 사실들이 있다. 그것은 지도에 관한 것이다. 
지도는 알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과거 
대륙의 모습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남겨진 지도에 
서 보면 그 제작자들은 현대인조차 20세기 중엽이 되어서야 발견한 곳을 
그려 놓았다. 

1559년에 터어키인 하지 아하마트의 지도에는 북아메리카의 해안선이 
대략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1532년에 만들어진 오론티 피나우스의 지도 
에는 남극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1513년에 만들어진 피리 레이스의 지 
도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룩한 지도이다. 이 지도에는 대서 
양의 반대측에 있는 쿠바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카리브해의 섬들이 
나, 중미 안데스 산맥을 포함한 남미대륙의 동서연안, 심지어 남극대륙 
의 일부까지 그려져 있다. 1528년에 제작된 그의 지도에는 그린랜드, 
뉴펀들랜드, 캐나다의 일부, 북아메리카의 동해안의 플로리다가 나타나 
있다. 그보다 묘한 것은 그의 지도에는 아프리카의 바로 밑까지 연장되 
어 전혀 이름이 없는 남극대륙을 표시하고 있으며, 현재는 빙하에 파묻 
힌 산들의 높이까지 표시하였는데 아직까지도 그 산들의 높이는 측량되 
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햅굿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남극대륙의 지도는 정말로 얼지 
않았을 때에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 지도에 붙은 설명 
가운데에 이 지도의 원본의 출처를 알렉산드리아라고 밝히고 있다. 이 
러한 지도는 모두 중세에는 발견되지 않았고 수세기 후에나 발견된 육지 
와 대륙에 대해서 상당히 정확한 윤곽을 묘사하였다. 

또한 이러한 지도의 작성자 자신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보관된 지 
도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시대에 만들어진 고대지도를 베꼈다고 말하 
기도 하였다. 이는 고대 지도의 작성자들이 이미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경도와 위도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세계의 곳곳을 여행하였 
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더욱이 오론티의 지도와 현대지도를 비교해보면 전자에는 남극에 많은 
하천과 그것이 흘러들어가는 피요르드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다. 그러나 현대의 남극대륙에는 하천이나 피요르드가 전혀 없다. 대 
신에 오론티의 지도에서 하천이 있던 부분에 대양으로 천천히 흘러들어 
가는 빙하가 있다. 이 사실은 오론티의 지도가 작성된 때는 빙하가 생 
기기 이전의 시대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 
시기는 기원전 4천년경 남극 대륙이 얼음에 완전히 뒤덮이기 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수수께끼의 지도들로부터 많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미지 
의 문명이 존재했었고, 대양을 향해할 수 있는 배를 가지고 있었으며, 
남극대륙과 그린랜드의 지도 제작에 필요한 천문학, 항해술, 수학 지식 
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옛 극지 탐험에 사용된 배는 크고 
견고해야 했으며 고대의 이집트, 페니키아, 그리스 또는 로마가 소유하 
고 있던 배보다 훌륭해야 하였다. 이들 지도들은 이미 알려진 여타의 
문명의 발생보다 훨씬 오래 전에 참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암시 
해 주는 증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야금술의 등장에도 의문점이 있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청 
동은 그 이전 단계인 구리시대가 거의 없이 전 유럽으로 퍼졌다. 최초 
의 청동제품은 매우 뛰어난 기술로 만들어졌으며 사람들이 이 기술을 단 
계적으로 조금씩 익혀나갔다는 흔적도 없다. 멕시코에서도 유럽의경우 
처럼 청동의 생산이 복잡한 고도의 기술적 수법을 동반한 형태로 갑자기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야금술과 금속 가공기술을 항상 자신 
의 힘으로 단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때때로 완성된 형태로 받아들이 
기도 하였다는 가설을 성립케한다. 

이러한 가설을 뒷바침하는 사실 중의 하나는 청동을 최초로 이용한 이 
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는 정련에 필요한 원료가 없었다는 점 
이다. 원료도 없는 상태에서 청동을 발명할 수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이들 문명국가들은 아연을 얻기 위해 카프카즈나 피레네 반도와 같이 엄 
청나게 먼 곳까지 원정대를 파견하였다. 이보다 더 먼곳으로는 브리튼 
제도가 있었다. 페니키아인이 브리튼제도를 아연의 섬이라고 부는 것도 
이 때문이다. 







http://www.godemn.com/xe/?mid=seek_truth&document_srl=89592&listStyle=viewer


신화조각모음
아프리카 도곤족과 시리우스의 미스테리

by Rain posted Aug 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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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까마귀





작성일 : 2013.02.04 16:07

출처 : http://cafe.naver.com/godemn/1694

 

 

 

 

 

도곤족과 시리우스의 미스테리

 

 

천문학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 가운데 하나이다. 천문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씨를 뿌리는 시기, 제를 지내는 시기 등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데 필요한 모든 역법은 천문학적 지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사회의 집권층 - 신관, 무당과 같은 이들에게 전승되는 지식은 현대 천문학자들도 놀랄만큼 

상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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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매우 특이한 부족이 있으니 바로 아프리카의 도곤족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리우스와 관련된 지식이다.

 시리우스는 천랑성이라 불리며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로 매해 7월 19일 태양과 같은날 떠오르는 특이성 때문에 세계 각 곳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어온 별이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시리우스는 하나의 별 뿐이지만 실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다른 두개의 별이 함께 있는 삼중성이다. 

 눈에 보이는 시리우스 A 주위를 시리우스 B가 돌고 있는데 이는 망원경으로만 겨우 관찰되는 매우 왜소한 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곤족의 무당들은 시리우스 B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시리우스 B는 백색이며, 매우 작은 별이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별이라는 것이다. 실제 시리우스 B는 1세제곱미터당 20,000톤의 

고밀도 별이다. 이 별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백색 왜성)도 알고 있으며, 타원의 궤도를 그리며 50년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토성이 가지고 있는 고리의 존재와 목성 주위를 도는 4개의 위성,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돌며, 태양계가 위치한 

은하가 나선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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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도곤족>


이들은 어떻게 금세기에 와서야 발견된 수많은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특히 아무런 도구도 없이 육안으로 

전혀 볼 수 없는 시리우스 B에 대한 지식이나 토성의 고리, 은하계의 나선 모양까지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에 대한 

도곤족의 무당의 대답은 '아주 오래전 수륙양서류의 창조주가 가르쳐준 지식'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창조주는 

외계에서 온 지성체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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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우스 별에 얽힌 도곤족의 이상한 전설 (1)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en28218&logNo=70151508888

 

시리우스 별에 얽힌 도곤족의 이상한 전설 (2) : http://www.kictnet.net/bbs/board.php?bo_table=sub2_2&wr_id=39&sca=&sfl=wr_subject&stx=%B5%B5%B0%EF%C1%B7&sop=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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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곤족의 미스테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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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입니다. 위에 설명된 내용을 담은 영상 같이 올리니, 참고바랍니다.

 

 

 

  

 





http://lotus.blog.seoul.co.kr/145

도곤족이 유명한 것은 시리우스 별 때문입니다. 1947년 프랑스의 인류학자가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는데 그에게 도곤족 현자는 도곤족의 오래된 지식을 들려주었다지요. 그 중 한가지가 시리우스 별에 대한 것입니다. 그 현자는 도곤족이 5천년 전부터 시리우스 별에서 온 외계인과 접촉하며 천문학 지식을 전수받았다고 했답니다. 그들은 시리우스 별이 한개가 아니라 2개이며 목성의 위성과 공전궤도, 토성의 띠 모양도 알고 있었는데 모두가 외계인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 했답니다. 지금도 10년에 한번씩 외계인과 만난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아무튼 이들은 아직도 원시시대 그대로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물교환을 해서인지 아래의 목화실 잣는 여인네는 계속 내 운동화와 양말을 달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슬리퍼와 바꾸자고요. 



이들은 돌로 곡식(주로 수수) 을 갈고, 목화로 실을 자아 천을 만듭니다.  필요한 것은 모두 만들어서 씁니다. 나무를 말려 조각을 합니다. 조각은 의자나 창문, 문짝 등의 장식으로도 쓰이지만 원래는 종교의식을 위해 가면을 조각하는데서 발달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전기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약도 없고, 화폐도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문명의 이기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만 그 인생이 그렇게 불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하늘아래 살지만 이들은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 같았습니다. 도곤족은 여전히 환생을 믿는다고 합니다.  




http://www.kictnet.net/bbs/board.php?bo_table=sub5_8&wr_id=10171

 작성일 : 11-12-25 12:50 
시리우스 별과 도곤 족의 이상한 전설(2-3)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355  

시리우스 별과 도곤 족의 이상한 전설(2) 

                                        
  조 덕 영 

시리우스 별과 도곤 족의 이상한 전설(1) 

                                        
  


  도곤족은 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한 부족이다. 말리는 33개나 되는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걸쳐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하라 사막이 이 나라를 지나간다. 말리공화국은 북쪽으로 알제리공화국, 북서쪽으로는 모리타니,서쪽으로 세네갈,동쪽으로 니제르 공화국,남쪽으로 코트디브와르, 오트볼타, 남서쪽으로 기니 등을 끼고있는 내륙국가(주:사면의 어느 곳도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나라)이다. 

  말리 공화국은 1960년 비로소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이 나라의 면적은 우리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도 5배 이상 크다.  그런데도 인구는 약 1천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독립 이후로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한 결과이다.  국토의 북쪽은 대부분 강우량이 적고 사막 지대가 많다. 남부도 건조한 초원지대가 많아 국민소득이 아주 낮은 편이다. 

  아프리카의 니제르 강이 크게 굽이쳐 흐르는 이곳 말리공화국의 남부 지방에 시리우스 별에 대한 이상한 전설을 가진 도곤족이 살고 있다. 

  이곳 남부를 흐르는 니제르 강 상류 지역은 옛부터 북서 아프리카의 교역의 중심지였다.  도곤족은 주로 이 강의 남쪽 반디아가라 고지대와 인근 홈보리 산맥의 동굴 속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대개 가난한 농민으로 수수나 조, 밭벼 등을 재배하며 살아간다. 절벽 기슭에 자리한 이들의 주거지는 매우 지저분하고 문명의 혜택을 입지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종교 의식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이들 종족은 과거부터 범상치않은 이상한 생각과 의식을 간직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50년마다 시구이라는 대축제를 개최한다. 이 축제는 최소한 12세기에도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도 이 축제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상한 가면을 쓰고 축제를 연다. 이 가면은 오랫동안 그들이 이 축제를 위해서 아주 귀중하게 보관해 온 것들이다. 

  이들의 축제는 50년을 주기로 제자리로 들아오는 어떤 별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별이 바로 천문학에서 시리우스 B라고 알려진 별이다.  도곤 족은 이 별을 <포 톨로>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 별을 기념해서 춤을 춘다. 도곤족들은 자신들의 모든 지혜가 이 별에서 온 방문객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서방 천문학자들이 처음으로 이 별의 존재를 어림풋이 알게 된 것은 1834년이었다. 그 해에 큰개 별자리의 천랑성, 즉 시리우스에서 어떤 불규칙한 움직임이 목격되었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학자들은 아직 발견되지않은 제2의 별이 잡아당기고 있어서 시리우스가 그렇게 이상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별을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오랫동안의 관측끝에 마침내 1862, 희미한 동반성 한 개를 발견했다. 이렇게 두 개의 태양으로 구성된 태양계를 쌍성계(이중성계)라고 한다. 그 중에서 밝은 별을 주성 또는 A별이라고하고 어두운 별을 동반성 또는 반성 혹은 B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주로 B별이라고 하자. 

  어쩌면 이 두 별은 서로가 서로를 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독일의 천문학자 베셀(1784-1846)이 예측한 시리우스 B였다. 베셀은 시리우스 A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궤적을 그리는 것을 발견하였음을 우리는 이미 지난 호에서 살펴본 적이 있다. 

  이것은 뱀이 움직이는 모양을 닮았다고 사행형이라고도 부른다. 그는 이것을 12년간 추적, 연구한 끝에 무언가가 잡아당기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리우스 B라고 이름을 붙이고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끝내 이 별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베셀은 이 별이 혹시 우리가 전혀 볼 수 없는 무광성(無光星:빛을 내지 않는 별)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이 별은 너무 작아서 우리의 태양보다 두배나 크고 20배나 밝은 시리우스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예측한 그대로 훗날 확인된 이 별은 매우 작았다. 

  그러나 백색왜성인 시리우스 B가 비록 작고 희미하기는 하나(백생왜성은 관측가능한 별 중에서 가장 등급이 작은 별이다) 밀도가 매우 높고 무거워서 시리우스 A에 충분히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들 백색 왜성은 지금까지 500개 이상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시리우스 B가 바로 과학자들이 찾아낸 백색왜성 가운데 제 1호 별이었다. 그런데 이들 도곤 족은 이 별에 대하여 최소한 이미 800여년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리우스 B를 가리키는 <포 톨로>라는 도곤족의 이름은 별을 뜻하는 <톨로>와 <포니오>라는 말에서 온 가장 작은 씨앗을 가리키는 <포>로 되어있다. 이 식물의 본래 이름은 디지타리아 엑실리스이다. 도곤족은 이것이 자신들이 먹는 음식 중 알이 제일 작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들 도곤 족은 이 별이 크기가 매우 작다는 것을 알고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저기 가장 작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도곤족은 “그 별은 하얀색이다. 그리고 매우 촘촘하고 묵직한 어두운 친구별이다”라고 말한다. 

  또 이들은 그 별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별인데 이 별은 흙이 아니라 <사갈라>라고 하는 매우 무거운 금속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별의 빛깔은 쇠보다 조금 밝은데 너무 무거워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도 들 수 없는 무거운 것’으로 되어있다고도 주장한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확인한 시리우스 B의 크기는 직경이 4만 1천 킬로 미터로 지구의 3배인데 그 무게는 태양만하였다.  이 별에서의 중력은 지구 표면의 5만배에 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의 1킬로 그램이 달에서는 6분의 1 무게밖에 나가지 않으나  이 별에서는 50톤에 달할 것이다.  우리 사람이 만일 이 별에 있다면 팥죽처럼 되었다가 금새 돌처럼 변해버릴 것이다. 

  도곤족에 의하면 시리우스 B는 신이 만든 최초의 별이었다.  이 별에서 모든 물질과 영혼이 생성되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들이 그린 그림에 의하면 시리우스 B의 궤도는 타원형으로 시리우스A를 타원의 한 촛점으로하여 돌고있다. 또한 이 작은 별은 지구처럼 자전도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번 도는데 50년이 걸린다. 이렇게 해서 50년에 두차례씩 100년 만에 쌍둥이가 다시 한쌍이 되어 완전하게 됨을 축하한다고 한다. 이것이 시구이라고 하는 축제이다. 

  도곤족들은 또한 시리우스계에는 두 개의 별이 더 있다고 주장한다.  제 3의 별은 <엠메 야>라고 불려진다.  이 별에는 지구처럼 달과 같은 위성도 있다고 한다.  도곤 족은 이 별이 “무게는 포 톨로의 4분지 일 밖에 안 되고 훨씬 큰 길을 여행한다”고 한다. 그 위성의 이름은 <여자의 별>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아직 이 <엠메 야>가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이 별은 무엇일까? 

  게다가 그들은 또 하나의 별이 있다고한다. 천우(天牛) 즉 <하늘에 있는 소>라는 의미를 가진 별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이 별은 엠메 야보다도 더욱 먼 곳을 그것도 엠메 야와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다. 물론 이 별의 존재나 위치에 대해서도 오늘날의 천문학자들조차도 아직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혹시 엠메 야보다도 더욱 멀리 궤도를 그리며 돌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아직 그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의 여부를 떠나 도대체 이들은 이런 지식을 어디서 얻은 것일까?  도곤족은 바로 이 엠메 야에서 온 놈모라는 생물이 자신들에게 직접 이런 지식을 전해주었다고 주장한다.    도곤 부족의 추장 오고템멜리는 자신들이 하늘에서온 놈모의 후예들이라는 것이다. 

  “놈모는 식물의 씨를 가지고 이 땅에 왔다. 그들은 땅을 만들고 동물을 만든다음 사람을 창조했다.” 

  이들로부터 8개의 부족이 생겨났는데 그것이 우리 인류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놈모는 누구란 말인가? 
  도곤족은 이들 놈모가 수륙 양서 동물(주:물과 땅 어디에서도 살 수 있는 물고기와 파충류의 중간이 되는 동물.개구리,도롱뇽 따위)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인류의 조상이나 지구의 창조주는 외계의 UFO우주선을 타고온 물고기였다는 말이 아닌가! 
  이들 도곤족은 놈모가 주었다는 또다른 천문학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달은 죽은 피처럼 메말라 죽어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토성에는 둥근 띠가 있다는 사실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목성에는 네 개의 달이 있다고 주장한다. 목성에 달이 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300여년 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한 이후였다.  그런데 이 미개한 아프리카 종족에게 어떻게 이런 이상한 천문학적 지식이 전해진 것일까? 

  이들 종족 이외에도 비슷한 신화를 가진 민족으로 세구지역의 밤바라족과 보조족 그리고 구티알라지역의 미니안카족이 있다. 밤바라족은 이 국가 최대의 부족으로 인구가 300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화는 아프리카의 여러 신화나 전설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신비하다.  이들에 의하면 우주는 창조신 암마가 우주알 또는 원시 자궁 속에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도대체 이들 도곤족의 신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걸까?  이제 이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보기로 하자(계속). 


조덕영 kict 
  

<논리 박사> 
1.지도를 보고 서사하라 사막을 찾은 다음 말리 공화국의 위치를 찾아보자. 

2.원시 부족이 천문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어떤 방법들이 있겠는가? 
  
3.정말로 외계인들이 찾아와서 도곤족에게 이상한 천문학적 지식을 줄 수 있었겠는지 생각해 보자. '




 시리우스 별에 얽힌 도곤족의 이상한 전설(3) 




  도곤족은 어떻게 시리우스 별에 관해 세밀하면서도 이상한 천문학적 지식을 얻게 된 것일까? 더욱이 그 내용 가운데는 오늘날의 과학자들도 아직 확인할 수 없는 정보까지 포함하고있다. 즉 그 전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지금은 밝힐 수가 없는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도곤족이 사는 아프리카 말리 지역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그러므로 20세기 초 유럽의 외교관이나 탐험가, 기독교 선교사 혹은 역사학자나 인류학자 등이 도곤족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 서로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 부족의 별에 관한 관심을 알게된다. 특히 시리우스에 관한 유별난 관심을 알게될 수 있다. 그리곤 장난삼아 우연히 자신이 자세히 알고있던 시리우스별에 관한 당시로서는 최신의 지식을 전해주었을 수 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같다. 도곤족들에게서 자신들의 전설이 유럽인들이 전해준 것이라거나 관련되었다는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곤족의 이웃 부족들에게도 유사한 전설들이 남아있다. 

  사람들은 아주 먼 과거에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아무런 천문학적 지식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옛부터 사람들은 많은 천문학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사실 오늘날도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천문학자들이 아니면 별들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보통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별에 관해 여러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던 것같다. 오늘날은 도로와 교통이 발달하여 어두운 밤에도 길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과거에는 전기도 번듯한 도로나 자동차도 없었다. 더 오랜 옛날에는  지도와 나침반도 없었다. 그런 옛 사람들에게 밤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별들은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옛사람들은 어쩌면 오늘날의 사람들보다도 별들의 이름과 운행에 대해서 훨씬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1884년, 요셉 사이스라는 사람은 별과 관련된 어원을 조사하여 별자리에 담긴 놀라운 사실들을 발표하였다. 

  그에 의하면 본래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자리에 창조로부터 인류의 범죄,예수님의 탄생과 부활,구원과 영생 등을 이미 계시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아직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큰개 자리의 시리우스 별을 한번 생각해 보자. 

  시리우스라는 말은 원래 왕자라는 의미의 <수>라는 말에서 나왔다. 

  성경 이사야서 9장 6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하면서 ‘평강의 왕’이라고 묘사한다. 여기에 사용된 낱말은 바로 <수>와 같은 의미인 히브리어 <사>이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이름도 왕비를 나타내는 이 말의 여성형으로부터 왔다. 오늘날 영어에서 위엄과 존경을 표시하는 <Sir>도 같은 어원에서왔다. 
  그렇다면 초봄의 남쪽 밤하늘을 빛내는 가장 크고 희며 아름다운 시리우스는 바로 메시야, 즉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라는 말이 아닌가! 
  이 점에 관해서는 아직도 풀어야할 많은 난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한 것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또 광명으로 하여금 징조와 일자와 사시와 연한을 이루게하셨다고 하였다. 여기서 광명이란 바로 별들을 말한다. 


  요셉 사이스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하늘에다가 이야기를 만들어 넣어 놓으셨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하나님이 알려주신 이야기를 아담이 자녀들에게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해서 별자리의 이름을 만들어 전했을 수도 있다.  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별자리를 처음 이름 붙인 사람은 아담의 셋째 아들 셋이었다고 한다. 창조 당시에는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성경의 말씀이 아직 사람들의 손에 주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 경우 별들은 성경이 사용되기 이전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했을 것같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를 정확히 알려주게 되면서 별에 새겨진 이야기는 조금씩 잊혀져 갔다고 추측된다. 그런 이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하여 별들의 이야기는 조금씩 애곡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자세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별들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성경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별들을 신뢰하는 일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다. 

  혹시 별자리에 그런 이야기들을 담아놓았다고 하여도 이제는 이미 그 의미가 무엇인지 소멸되어 버렸다고 볼 수 있다. 
  고대 바벨론 시대부터 별자리들은 점성술의 도구로 바뀌어져있었다. 
  성경은 또한 점성술이나 하늘 자체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하노라(신명기 4장 19절).” 

  이렇게 별에 담긴 의미 자체가 거꾸로 변질되어 버렸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별에 이상한 내용을 담고있는 이 신비한 도곤 족이 어떻게 이곳 말리 공화국에까지 와서 살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우리는 도곤족이 가진 시리우스 별에 관한 전설이 이집트의 전설과 너무도 유사하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원전 3000년 경 이전 고대의 이집트 인들은 시리우스 별이 이세상을 떠나는 영혼들의 집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 시리우스가 지구의 생명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도곤족의 전설과 너무도 비슷한 것들이다. 

  도곤족의 원래 조상들은 이집트인이거나 이집트 근처에서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도곤족들은 그곳 애굽을 떠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후 오랫동안 사막과 초원지대에 살면서 그들은 매일 밤 야영을 하며 별을 바라본다. 도곤족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전해주던 이들 별들의 전설에 유난히 애착을 갖고 기억하고 기념해 온 것은 아닐까? 

  그것도 맑은 초원에서 뚜렷히 빛나는 시리우스별이 도곤족에게는 자신들을 지켜줄 어떤 수호신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1726년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여행기에 보면 가상의 국가인 라퓨터 국의 학자가 발견하였다는 화성의 두 위성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그것은 상상해서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데이모스와 포보스라는 화성의 두 위성이 아사프 홀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정말로 발견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걸리버여행기가 나온지 100년도 더 지난 1877년이 되어서였다. 정말로 놀라운 우연의 일치였다. 위성의 운행에 관해서는 더욱더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있어서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곤족의 전설도 일부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정말 외계인들이 그들 도곤족에게 시리우스별에 관한 지식을 전해준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왜 그들 외계인들은 태양계의 중심이 태양이고 지구는 하나의 혹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정보들은 도곤족에게 전해주지 않은 것일까? 도곤족에 의하면 그들 외계인들은 물고기를 닮은 양서류라고 했는데 왜 그 이후에는 그런 이상한 동물의 흔적을 조금도 외계에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일까? 더욱이 인류의 씨가 왔다고 도곤족이 주장하는 시리우스 별 주위에 있는 제 3의 별 <엠메 야>가 정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 도곤족의 말대로라면 아마 그곳 별에 생물이 가까이 간다면 중력이 세어서 생물들이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물들도 제대로 견디지 못할 것이다. 

  도곤족들은 토성의 주위에 고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목성에는 4개의 위성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목성에서 발견된 위성은 도곤족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십수년 사이에 여러 개가 발견된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이 14개나 된다. 어떤 이들은 목성에 있는 커다란 위성만 생각해서 4개라
고 말한거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든지 도곤족의 주장이 정확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현대 천문학이 아직 발견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시리우스 주위의 별에 관한 정보까지 상세히 알고있는 도곤족의 창조설은 조금은 이상하기까지 하다. 

  도곤족들은 입구가 둥글고 바닥은 네모난 바구니를 가지고 있었다. 이 바구니의 네모난 바닥은 하늘을 상징하고 둥근 입구는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그들에 의하면 신은 지구를 만들 때 남성과 여성으로 된 쌍둥이 알로 만들었다. 이 계란이 성숙하면서 완전한 양성을 가진 한 천체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는 이 쌍둥이 중 하나가 성숙하기 전에도 껍질을 깨고 나온 것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신은 우주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서 쌍둥이 중 하나를 희생시켰다고한다. 

  시리우스에 관한 고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부족 답지 않게 도곤족의 창조 설화는 다른 민족의 설화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비과학적이다. 

  아무튼 도곤 족이 지닌 시리우스 별에 관한 지식이 어디로부터온 것인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현대 과학의 눈으로 볼 때 놀라운 것도 있고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들이 그 진실의 여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도 있다. 또 잘못된 지식들도 많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쓴이는 이 지식이 외계인들이 전해주었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사람들은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풍부하고 세밀한 과학적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별에 관해서도 그러하였다. 

  어쩌면 과거에는 시리우스 주위에 도곤족들이 말하는 다른 신기한 별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펴는 천문학자도 있다. 즉 별의 모습이 변해버렸다는 주장을 편다. 이 대답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한 과학자는 아직 없다. 

  아무튼 지구를 비추는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는 신비로운 별이다.  그것이 어쩌면 정말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전에 예수님의 오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와 같은 관심의 흔적이 이 별에 얽힌 전설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논리 박사> 
1.과거 사람들이 지금의 사람들보다 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2.도곤족이 시리우스 별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3.도곤족의 전설 중 오늘날의 과학 지식으로 볼 때 맞지 않는 것들은 무엇인가?
















http://www.ddangi.com/1-1139.html

죽은 추장들의 낙원 반디가라 동굴

 

(그림설명: 반디가라 절벽의 고대 유적지)

1947년에 세상에 알려진 신비스럽고 불가사이한 말리국의 도곤족은 고대 유적과 그들의 전해오는 독특한 신앙, 그리고 선조들에 대한 기이한 숭배 관습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fricanmuse&logNo=50132137453


http://en.wikipedia.org/wiki/Marcel_Griaule
Marcel Griaule (1898 – 1956) was a French anthropologist known for his studies of the Dogon people of West Africa, and for pioneering ethnographic field studies in France.


http://fr.wikipedia.org/wiki/Marcel_Griaule
Marcel Griaule, né à Aisy-sur-Armançon dans l'Yonne le 16mai1898 et mort à Paris le 23février19561, est un ethnologuefrançais célèbre pour ses travaux sur les Dogons.
1898-03-22 (화) 1898-03-01 무술(戊戌)년 병진(丙辰)월 갑신(甲申)일

1898-05-15 (일) 1898-03-25 (윤) 무술(戊戌)년 무인(戊寅)일
1898-05-16 (월) 1898-03-26 (윤) 무술(戊戌)년 기묘(己卯)일
1898-05-17 (화) 1898-03-27 (윤) 무술(戊戌)년 경진(庚辰)일


1956-02-22 (수) 1956-01-11 병신(丙申)년 경인(庚寅)월 기미(己未)일
1956-02-23 (목) 1956-01-12 병신(丙申)년 경인(庚寅)월 경신(庚申)일
1956-02-24 (금) 1956-01-13 병신(丙申)년 경인(庚寅)월 신유(辛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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