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몸에 양성 갖고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문옥정씨와 탤런트 고두심의 남다른 인연 다른나라와 사회




   [기막힌 인생]

  한몸에 양성 갖고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문옥정씨와 탤런트 고두심의 남다른 인연

 “우린 둘 다 평생 가슴에 바람 맞으며 사는 제주여자답게 주어진 운명에 최선 다하며 달려왔어요”


남자성기와 여자성기를 동시에 갖고 태어난 기이한 운명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인이 있다. 





촉망받는 한국무용가에서 양공주, 기생, 야쿠자의 정부 등의 삶을 산 그의 굴곡진 인생사와 최고의 연기자로 인정받는 고두심과의 남다른 인연을 독점 취재했다.


 

마지막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던 지난 2월18일 아침, 서대문구 아현시장 한쪽에선 드라마 ‘한강수타령’ 촬영이 한창이었다. 초로의 여인이 촬영장을 서성이는 것을 발견한 탤런트 고두심(54)이 촬영 중간 짬을 내 한걸음에 달려왔다.

“문 선생님.”

40여 년 만에 해후를 하는 고두심과 초로의 여인의 눈가엔 반가운 미소와 옛시절을 떠올리며 가슴을 적시는 물기가 함께했다. 초로의 여인은 최근 자전소설 ‘이젠 말할 수 있다’를 펴낸 문옥정씨(59). 남자에서 여자로, 촉망받는 한국무용가에서 양공주로, 기생으로, 스트립 댄서로, 야쿠자의 정부로, 정치자금 돈세탁 역할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나온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그건 그의 남다른 운명에서 비롯되었다.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성기를 함께 갖고 태어난 것. 남녀의 성기를 동시에 갖고 태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조 때 숱한 양반가 아녀자들과 애정행각을 벌여 임금이 직접 문초를 할 정도로 당시 최대의 스캔들을 일으킨 ‘사방지’라는 인물이 가장 유명하다.

문승일, 문명희, 문숙희, 에레나, 스잔나…. 많은 이름만큼이나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를 만났다. 험난했던 인생을 살았던 만큼 환갑에 다다른 나이는 속일 수 없었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와 또렷한 이목구비는 젊었을 때 무척 미인이었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문승일. 그게 제 본명이에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내아이였죠. 남자형제들을 형이라고, 여자형제들을 누나라고 불렀으니까요.”

그가 처음 자신의 몸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이 발가벗고 수영을 하던 동찬이란 친구가 그에게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는 말을 하면서였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어망, 동찬이는 아무래도 내가 이상하댄마시’ 하자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듯 ‘무신 거가’ 하시더라고요. 제가 손가락으로 아랫도리를 가리키자 어머니가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숨을 깊게 내쉬는 거예요. 그리곤 제 손을 꼭 잡고 ‘승일아, 너 그런 말 아무헌티도 하지 마라’며 다짐을 받으셨어요.”

어머니의 깊은 한숨에서 자신이 뭔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만 더 이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버지 없이 혼자서 가난한 살림에 6남매를 키우느라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쉬지 않고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새로운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로 다른 사람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말을 못하고 혼자 자신의 몸에 대한 비밀을 지키며 까닭 모를 두려움에 떨었다. 그는 자연 말이 없어지고 소극적인 아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어요. 하지만 가난한 살림에 어떻게 조치를 취할 엄두를 못낸 채 세월만 끌어오셨던 거예요. 그래도 고추가 달렸으니까 절 남자로 키우신 거죠.”

중학교 때 하루아침에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어

그는 중학교도 당연히 남자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여자애보다도 더 예쁘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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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옥정씨는 고두심에게 무용을 가르친 인연이 있다.

“동네에선 귀여운 사내아이로 통했어요. 다른 애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수염이 나기 시작했지만 저는 수염은커녕 골격도 여자 같았거든요. 지나던 노스님까지 저를 보면 귀엽다며 뽀뽀를 했을 정도였죠.”

그를 귀여워하는 사람 중에 부산과 제주를 오가며 사업을 하는 안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곧잘 영화도 보여주고 제과점에 데려가 빵도 사주곤 했던 안씨가 어느 날 낚시를 하러 가자고 했다. 그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그리곤 배를 타고 바다낚시를 하다 멀미 때문에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리면서 흐릿하게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강렬한 조명 때문에 눈도 뜰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고, 깨어났을 땐 아랫도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안씨가 자기 욕심을 채우려 절 일본으로 데려가 남자의 성기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킨 거였어요. 사내로 자라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자가 되어버린 거죠.”

안씨는 그를 일본의 한 집에 머물게 하면서 몸이 회복되도록 극진히 간호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을 무렵 무참하게 그를 짓밟았다.

“저에게 평생 같이 살자며 애원도 하고 협박도 했어요. 하지만 전 그럴 생각이 없었어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죠. 몸이 회복된 후 감시하던 그의 눈을 피해 도망쳐 나와 겨우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제주도로 돌아왔지만 그는 더 이상 ‘남자’ 문승일일 수 없었다. 다시 남자중학교에 다니며 남자처럼 행동했지만 이미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봉긋 가슴이 나오기 시작한 것. 평소엔 조심하면 남들이 알아챌 수 없었지만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체육시간은 난감했다. 그때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곤 했지만 오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학교라는 통제된 공간에서 비밀은 없는 법. 옆에 앉은 친구와 장난을 치다 그만 친구의 손이 그의 가슴에 닿는 일이 벌어졌다. 그 순간 친구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만 소문은 삽시간에 이웃 여학교까지 퍼졌다.

“가슴 달린 남자라고 아이들이 놀렸죠. 그때 절 지켜주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 그 친구와 친해졌는데, 서로 어렴풋한 이성의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친구는 제가 남자인 줄 알고 있었어요. 첫 키스를 하고 난 후 자기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았어요.”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 제주를 떠났다. 하지만 남자도 여자도 아닌 자기가 갈 곳이 어디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 끝에 속세를 떠나 머리를 깎고 스님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그곳에서도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비구니로서의 삶을 살던 어느 날이었다. 큰 비가 내리던 새벽에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별 생각 없이 문을 열었어요. 곡차(술)에 취한 스님 한 분이 제 방문 앞에 서 있었는데, 당시 시인으로 꽤 이름을 날리던 분이었어요. 반쯤 풀어진 눈으로 저를 쳐다보던 스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와락 끌어안더군요. 스님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남자의 욕정을 느끼고 아차 싶었지만 그때는 이미 성인 남자, 그것도 욕정으로 불타오르는 성인 남자의 완력을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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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과 문옥정씨가 ‘한강수타령’ 촬영장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때마침 수소문 끝에 그가 있는 절까지 찾아온 어머니 손에 이끌려 문씨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제주에 돌아온 그는 탁구선수로 활동하는 동생의 유학길에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국립국악원 산하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승무의 이매방, 살풀이의 한영숙 등 쟁쟁한 무용가들로부터 한국무용을 배웠고 그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대학에 들어가 무용을 더 배우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시 집안 형편이 나빠져 제가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래서 국악고를 졸업하자마자 제주도로 내려와 무용학원을 열었어요.”

그때 그가 가르쳤던 아이들 중 한 명이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로 인정받고 있는 탤런트 고두심이었다고 한다. 당시 고두심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기 때문에 몇 달 배우다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그만두었지만 함께 합숙훈련을 하며 정이 많이 들었다고.

“당시 학생들하고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양반놀이’를 출품하기로 하고 연습을 했어요.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마당극이라 할 수 있는 가면놀이였죠. 그때 다른 애들은 주인공인 양반 역할을 잘 소화하지 못했는데, 갓 들어온 두심이가 마치 자기 역할이라는 듯 소화를 잘했어요. 특히 양반춤을 너무 잘 추었죠. 두심이 때문에 그때 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에게 “고두심이 춤에도 끼가 많았냐”고 묻자 “한국무용은 그다지 소질이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국무용은 정적인 데 반해 고두심은 동적인 면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양반놀이에서 빛을 발했던 것처럼 두심이는 동적인 춤에 재능이 있었어요. 그때 두심이가 저에게 더 춤을 배웠더라면 양주산대놀이나 별산굿 같은 탈춤을 익히게 했을 거예요. 만약 그랬다면 두심이는 그 방면의 대가가 되었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만큼 끼가 많은 아이였어요.”

그는 고두심이 무용 제자일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 더욱 정이 간다고 했다.

“두심이는 학교 교사를 했던 제 친오빠의 제자이기도 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왔죠. 또래 아이들 중 가장 얼굴이 예쁘고 성격 또한 명랑해서 웃음소리가 밝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때도 예의가 참 바른 아이였죠.”

그때 집으로 자주 찾아오던 친오빠의 제자들 중 고두심 말고도 윤영희라는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한때 신상옥 감독과 결혼했다 마흔두 살에 요절한 비운의 영화배우 오수미의 본명이 바로 윤영희다.

탤런트 고두심이 말하는 문옥정 

 “춤출 때 선이 고왔던 선생님으로 기억해요”


-문옥정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요?

“선생님은 제 무용 스승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선생님 위에 형, 아니 이제 오빠지(웃음), 오빠가 제 학교 체육선생님이셨어요. 참 좋은 분이셨어요. 그래서 졸업한 후에도 체육선생님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때 문 선생님도 같이 생각나고 그랬어요. 가끔 체육선생님을 만나거나 연락을 할 때 문 선생님 근황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못했어요. 언뜻 들은 이야기가 있어 체육선생님 가족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요.”

-당시 무용을 배울 때는 문옥정씨가 남자 아니었나요?

“그때도 우리 학생들 사이에선 중성이란 소문이 있었어요(웃음). 여성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그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학교 무용선생님도 남자였지만 굉장히 여성스럽게 춤을 추셨거든요. 그래서 무용하는 사람은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배웠나요?

“오래된 일이라 잘 모르겠네요. 6개월 정도 했나? 선생님과 학생 사이라 어렵게 느껴져 개인적으로 사연은 많지 않아요. 합숙훈련을 하며 재미있게 춤을 배웠다는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또한 선생님 말고도 춤을 잘 추시는 분들이 우리를 가르쳐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배운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때 문옥정씨는 어땠나요?

“춤을 출 때 선이 무척 고왔어요. 그리고 자기 춤 세계에 심취해 춤에 취하는 스타일이셨죠. 그런 선생님 춤을 보며 따라 배우곤 했어요.”

-‘이젠 말할 수 있다’를 읽어 보셨나요?

“읽다가 가슴이 아파서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어요. 선생님은 제가 어릴 때 제주도를 떠났고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어요. 이번에 책을 통해 미처 몰랐던 사연을 알게 되었죠. 선생님이 살아오신 슬픔과 아픔을 읽으며 어떻게 인생을 이겨내고 살았을까 싶었어요. 몇 번이고 목숨을 버리고 싶었을 그 사연들을 겪어내며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오신 게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인데, 느낌이 어떤가요?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고 정말 반가웠어요. 이제 앞으로 자주 만나야죠. 전 옛날 제주도에 살 때 알던 사람을 만날 때가 가장 좋아요. 전에 할머니 살아 계실 때도, 어머니 살아 계실 때도 제주도 내려가면 제가 아는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곤 했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았어요. 가장 순수한 만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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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과거 청산하고 탁구와 사회봉사하며 살아


그는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3년 만에 끝이 났다. 몸은 여자가 됐지만 법적으로는 남자였기에 신검통지서가 날아왔던 것. 결국 그는 군의관들 앞에서 아랫도리를 내려야 하는 치욕을 겪은 후 제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그 후 그의 삶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우연히 자기처럼 남자인데 여자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태원을 찾아갔고 거기서 미군을 상대로 양공주 생활을 하게 됐다. 한때 대학교수와 만나 가정을 꾸리기도 했지만 남자가 도박에 빠지는 바람에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다시 먹고살기 위해 들어간 곳이 국일관. 거기서 호스티스 생활과 스트립댄서를 하던 그는 착실하게 돈을 모아 작은 요정을 직접 경영하기도 했다.

“국일관에서 일할 때가 70년대 초반이었어요. 당시 그곳은 정치인과 경제인 등 우리나라 실권자들과 젊은 여자 연예인들의 질펀한 밤 문화가 펼쳐지던 곳이었죠.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당시 인기 여자 연예인들이 그곳에서 많이 활동했어요. 지금은 밝힐 수 없지만 나중에 당시 밤 문화를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싶어요.”

그는 우연히 만난 일본 야쿠자 두목의 내연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야쿠자의 돈을 이용해 국내 검은 정치자금을 세탁해 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을 계기로 그늘진 생활을 청산하고 지금은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보람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대표 탁구선수였던 동생을 보살피며 알게 된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등 탁구인들과 탁구동우회를 만들어 탁구를 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책을 통해 털어놓고 난 후 한동안 몸이 많이 아팠어요. 하지만 이젠 건강해졌어요. 부끄럽게만 생각했던 과거가 돌이켜 생각하니 부끄러울 게 없더라고요. 이젠 말하고 싶어요. 주어진 운명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그의 말에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고두심이 “문 선생님은 가슴으로 세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천상 제주여자”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비뇨기과 전문의 이윤수 박사가 속시원히 설명해줬다! 

 “남녀 성기를 동시에 가진 ‘사방지’ 몇만명 중에 한명 꼴로 있다”

-문옥정씨처럼 양쪽의 성기를 함께 갖고 태어날 수 있나?

몇만명 중에 한명 꼴로 드물게 있다. 남자인데 여자의 성기 모양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 여자인데 남자의 성기 모양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두개의 성기를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 두 개의 성기를 다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가?

XX 염색체를 가진 여성인데 음핵이 과도하게 커서 남자의 성기로 오인될 수 있다. 음핵이 남자의 성기랑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질)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심한 경우 질 입구가 막혀 있어 여성인데도 남자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가 있나?

우리 병원 환자 중에도 있었다. 이 사람은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이 안돼 불임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염색체 검사를 해보니까 여자였다. 음핵이 큰데다 질 입구까지 막혀 있어 남자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인데 여성의 성기를 갖는 경우도 있나?

한 여중생이 찾아왔다. 자기는 여자로 알고 자랐고 중학교도 여자중학교를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과 달리 생리도 없고, 가슴도 안 크고 해서 산부인과에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염색체 검사 결과 남자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성기를 남자로 만들어주고 호적까지 바꿨다.
   (끝)


■ 글·최호열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발행일: 2005 년 03 월 01 일 (495 호)

 쪽수: 644 ~ 647 쪽



두가지 성(性)을 갖고 태어나 질곡의 삶 살아온 문옥정의 인생고백
레이디경향 | 입력 2005.03.15 09:52

“세 번의 결혼과 열두 가지의 이름으로 살아온 인생, 이제는 봉사하는 삶 살고 싶어요!”세상에는 여자와 남자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끔은 두 가지 성(性)을 모두 가진 사람들도 있다.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탄생부터 축복받기는커녕 힘든 인생을 안고 질곡의 세월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문옥정씨는 두 가지 성(性)을 갖고 태어나 본의 아니게 여성이 되어 양공주, 기생, 스트립댄서 등의 삶을 살았다. 이제 생활 탁구 전도사로, 희망찬 미래를 희망하는 그녀의 인생 스토리. 사실 내가 사내아이였는지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 내 몸의 비밀이야 어떻든 간에, 그렇게 나는 평범한 사내아이로 커갔다. 그리하여 내 삶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아는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간 일본“눈을 떠보니 여자가 되어 있었어요”봄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날씨가 따뜻한 것은 아니다. 한겨울 칼바람이 무색 할 만큼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이 다시 오는 건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자신의 인생을 담은 자전 소설을 낸 문옥정(59)씨를 만난 날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지난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30년 전의 기억을 더듬던 문옥정씨는 “광화문은 언제 걸어도 추억의 향기가 묻어나는 길”이라며 칼바람에도 아랑곳없이 두꺼운 코트를 벗어던지고는 사진기 앞에 섰다. “내가 예전에 해녀도 했었어요. 추운 겨울에 전복따러 바닷물에도 들어갔는데 이까짓 바람은 우습지 뭐. 내가 옛날에는…” 질문을 하지 않아도 그녀의 입에서는 지난 인생이 흘러 나왔다. 제주도 출생인 그녀는 세상에 나온 그 순간부터 평탄치 않은 인생을 걸어왔다.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둘 다 가지고 태어난 그녀의 어렸을 적 이름은 ‘승일’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이 남아있던 시절, 그녀의 부모는 문승일이라는 남자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그녀와 그녀의 부모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엉뚱한 사람에 의해 문승일이라는 사내아이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어정쩡한 인생을 살게 됐다.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까까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곤 했지. 그중에는 동네 사람들하고도 잘 알고 지내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나한테 참 잘해줬어요.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불러서는 빵도 사주고 영화 구경도 시켜줬지. 서울에서 유명한 항공 회사를 하는 회장님과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는데 제주도 사람은 아니었어.”안학순 이라는 이름의 그 아저씨는 어느 날 배를 빌려와서는 뱃놀이를 가자고 했다. 그녀는 평소 잘 대해주는 아저씨를 따라 뱃놀이를 하다가 배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이상한 말이 귀에 들렸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일본의 병원이었고 그녀는 이미 남자가 아닌 여자의 육체로 수술이 끝난 후였다.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마취도 안 깬 상태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엉금엉금 일어섰는데 가랑이 사이에 고무호스가 끼어있더라구. 내 옆에는 그 아저씨밖에 없는 거예요. 그때가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엄마도 없고, 동생, 언니도 없는데서 너무 무서웠어요.”며칠동안 병원에 누워있다 퇴원한 그녀는 아저씨를 따라 일본인 집에서 기거했다. 제주도 집에 보내달라는 그녀에게 아저씨는 양과자와 장남감 등을 사주며 달랬고 그렇게 이상한 동거가 시작됐다. 일본에 머물며 계속되던 병원 치료가 끝나자 아저씨는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간 하코네의 여관에서 아저씨는 중학교 1학년 밖에 되지 않은 어린 그녀에게 몹쓸 짓을 했다.

“많이 울었어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여자가 된 것도 무서운데 아저씨한테 몹쓸 짓까지 당하고 나니까 살고 싶은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그래도 집에 가서 엄마를 보고 싶다는 마음에, 엄마한테 다 얘기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지요.”하지만 아저씨는 그녀와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코네 온천을 다녀온 후부터 그녀에게 병적으로 집착했다. 어린 그녀는 아저씨의 마음을 안심시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저씨는 살면서 그녀는 사육을 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기회가 왔다. 아저씨가 집을 비운 사이 아저씨의 비상금을 털어 집을 탈출했다.

“무작정 택시를 탔어요. 택시 운전사가 일본 말로 물어보는데 아무 대답도 못하니까 이상했든지 나를 경찰서로 데려갔어요. 거기서 일본 경찰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경찰관을 데려와서는 자초지종을 묻더라구요. 아저씨가 나를 납치해서 여기까지 온 사정을 다 말했죠. 하지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어요. 어린 마음에도 그건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문옥정씨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다시 제주도의 집으로 돌아왔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중학생때 같은 반 친구에게서 느낀 첫사랑가출 후 춤과 노래를 배우며 끼 발견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다시 문승일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다녔다. 남자였기 때문에 남자 중학교에 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신체는 남학교에 적합하지 않았다. 특히 체육 시간과 화장실에 가는 일은 고역이었다. 등교하기 전에는 늘 붕대로 가슴을 꼭 감싸야만 했다. 그래도 체육시간에는 아프다는 핑계로 빠지기 일쑤였고 화장실은 못 참을 순간까지 참다가만 큰일을 보는 척하며 갔다.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서 화장실에 가는데도 어떻게 아는지, 짖궂은 아이들이 문을 발로 차고 문 너머로 물을 뿌리고… 아무튼 심한 장난을 다 당했어요. 마침 지나가는 선생님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고스란히 당하는 거지 뭐.”그러던 어느날 규민이라는 친구가 그녀 앞에 흑기사처럼 나타났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던 그녀를 도와준 것이다. 그후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덕분에 규민이는 친구들에게 이상한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단짝이 되어 방과 후에도 함께 숙제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규민이가 그녀에게 “너가 좋다”는 고백을 했다. 그리고 입맞춤도 했다. 두 사람 사이는 친한 친구에서 특별한 친구 사이가 됐고 학교 전체에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규민이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기도했다. 이 사건 후 큰오빠는 그녀에게 책임을 물었다. 모든 것이 그녀 탓이라는 것이었다.

“그 일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을 했어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 순이에게 빵을 사주고는 마음속으로 이별을 했죠. 그리고는 부산을 거쳐 논산에 도착했어요. 그곳에서 며칠 지내며 논산극장에서 여성 국극을 봤는데 그 무대가 어찌난 감동적이었든지 눈을 감아도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모습만 떠올랐어요. 그러다가 대전의 수도원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곳의 원장님이 국악원에 입학시켜줬어요. 그때 무용도 배우고 가야금, 장구도 배우고 민요랑 소리 공부도 했어요. 춤을 추는 동안은 세상 시름을 다 잊을 수 있었어요.”춤을 배우던 그녀는 장날, 약장수들의 흥을 돋우는 춤판에서 같이 춤을 추다가 아는 분의 눈에 띄어 다시 제주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춤과 노래에 대한 열정이 활활 타고 있었다.

문옥정씨는 2남 4녀 중 다섯째. 오빠 둘은 제주도에서도 알아주는 수재들로 서울로 유학을 다녀와 제주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명석한 두뇌와 잘 생긴 외모… 세상이 부러울 것 없는 오빠들에게 단 하나의 아킬레스건은 그녀였다. 그녀의 몸이 성숙할수록 주변에서는 ‘남자냐, 여자냐’를 두고 쑥덕거렸다. 밖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빠들은 화가 났고 급기야 그녀에게 손찌검을 했다. 그녀가 다시 제주도로 돌아간 후 오빠들의 손찌검 횟수가 늘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빠들과의 싸움으로 경찰서까지 다녀온 그녀는 어느 날 새벽 조용히 짐을 싸 김녕에 있는 백년사로 갔다, 새벽 다섯 시, 처마 끝에 매달린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전에 채비를 마친 그녀는 낙엽을 쓸고 밥을 짓고 물을 길었다. 잡념이 떠오를 때는 ‘몸이 부서져‘라는 심정으로 백팔배를 했다. 절에서 지내며 그녀는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비 오는 밤, 술에 취한 스님이 방문을 두드렸다. 당시 시인으로 꽤나 유명세를 타던 스님이었기에 큰 의심없이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방문을 열기가 무섭게 곡차 향이 진동을 했고 스님은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그녀에게 껴안고 쓰러졌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그녀에게 어른 남자의 힘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절에서 마음을 정화하며 살고 싶다던 그녀의 꿈은 또다시 산산조각이 났고 때마침 찾아온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녀는 다시 제주도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학교를 다닐 나이였지만 그녀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여학교에도 남학교에도 갈 수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이 즈음부터 집에서는 ‘승일’이라는 이름 대신 ‘명희’라 불렀다. 가족들이 그녀를 여자로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밖에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수군거렸다. 그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던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제주도를 떠나고 싶었다. 당시 동생 순이는 제주도에서 유명한 탁구 선수로 성장하고 있었다. 순이의 실력은 제주도에 갇혀 있기에는 아까웠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거쳐 순이를 서울로  전학을 시키기로 했다.

“내 동생 순이 생각만 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그 아이를 내 몸보다 더 사랑했거든. 지금은 동경에서 음식점을 해요. 제주도에서 사업하다 부도가 나서 교도소에서 8개월을 살았는데 그때 내 가슴이 숯검댕이가 됐지. 언니가 돼서는 동생을 그렇게 고생시켰으니… 그때 탁구 유학을 떠나는 순이를 따라 나도 서울로 왔지.” 서울살이는 그녀에게 새로운 인생을 안겨주었다. 바로 국립국악원 산하의 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노래와 춤이라면 빠지지 않던 그녀에게 국악고등학교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정식으로 춤을 배우는 것 만해도 행운인데 그곳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녀는 이곳저곳에서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 일쑤였다. 한번은 춤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통금시간이 지난 것도 모르고 김구선생 묘지 옆 으슥한 곳에서 춤 연습을 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렇게 춤에 몰두한 덕분에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급기야 제주도의 여고에서 무용을 가르치며 작은 무용학원도 차렸다.

“제가 가르친 제자 중에는 탤런트 고두심씨도 있어요. 원래 (고)두심이는 우리 오빠들의 제자였기 때문에 친하게 지냈어요. 두심이는 그 또래 아이들 중에서 얼굴도 깨끗하고 성격 또한 명랑해서 웃음소리가 참 밝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또 윤영희라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나중에 ‘오수미’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배우가 됐죠. 붙임성이나 인간성이 참 좋았던 아이예요.”청천벽력같은 군대 신체검사 통지서군의관 앞에서 옷 벗은 후 수치심에 자살 기도제주도에서 무용을 가르치며 지내던 어느 날 뜻밖이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군대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아든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녀는 신체검사 바로 전날 군의관들이 머무는 여관엘 찾아갔다.

“그러니까 자네가 여자란 말이지? 그런데 여자란 것을 어떻게 증명할 거야? 흠… 벗어봐!” 아무리 사정 얘기를 해도 군의관은 단호했고 그녀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군의관은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벗은 내 몸을 마치 신기한 동물 보듯이 살피더니 구석구석을 만지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수치스러웠든지. 그리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온 제주도에 소문을 냈어요. 내가 여자라고.”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인생. 이상한 분위기에서 신체검사를 받은 후 그녀는 자살을 결심했다. 사라봉에 있는 절의 대웅전에 들어가 목 놓아 울고는 별도봉 자살바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려는 찰나, 갑자기 눈앞으로 검은 옷을 입고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북방 서울로 가거라”고 한 것. 그 길로 그녀는 다시 서울로 떠났다.

요정에 나가는 친구 집에서 지내던 고향 동생을 통해 그녀처럼 ‘남자면서 여자로 살거나, 여자면서 남자처럼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태원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색시 ‘문숙희’가 되었다.

여자 포주는 그녀에게 방을 하나 주었고 수입을 반씩 나누기로 했다. 이미 오빠들과의 불화로 돌아갈 곳도 없는 그녀에게 이태원은 유일한 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포주와의 관계, 한 명의 미군이라도 더 받으려 치열하게 싸우고 욕을 해대는 현장에서 버틸만큼 버텼다고 생각되자 그녀는 독립을 했다. 그리고 그토록 보고싶던 동생 순이를 다시 만났다. 이태원을 떠나 후암동에 집을 마련한 후 밤에는 남자들을 상대했지만 낮에는 동생과 함께 탁구를 배웠다. 이때 공화당 남산당사에서 종종 탁구를 쳤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종로의 요정에 초대를 받아 술도 마시고 정일권, 이후락 같은 거물급 정계 인사들과도 어울리게 되었다.

이 즈음 그녀는 현재의 ‘문옥정’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개명을 했다. 이유는 결혼을 했기 때문.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 남자는 가정법원 부장판사를 하다 부정한 사건으로 퇴임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두 사람은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새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은 도박중독자였다. 그로 인해 가정법원에서 퇴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여자로서의 행복을 경험한 그녀는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국일관 왕초 마담을 찾아갔다. 국일관은 자유당 때 이기붕이 지배인으로 있었던 곳으로 김소산 같은 석사 출신 기생이나 인텔리 기생들을 포함해 백 명이 넘는 기생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고품격 일류 요정이었다. 70년 대 국일관 같은 유명 요정들의 손님들은 웬만큼 떵떵거리는 지위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곳이었다, 그렇게 사회 고위층들이 요정을 찾는 이유는 단지 기생들이 따라주는 술과 웃음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요정은 휴흥의 공간이면서도 또한 크고 비밀스런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었으며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다. 요정에서는 사회 지도층으로 손꼽히는 이들이 어떻게 돈과 권력을 유지하고 키워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에 그곳에서 벌어진 어두운 거래와 담합이 어떠한 것인지 그 실체를 알게 된다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만한 것도 많았다. T화학, M식품, W그룹 등등. 하룻밤 술자리로 기업 하나가 흥하고 망하기도 했다. 그런 현장에는 믿을 만한 아가씨가 배치되는데 그녀는 웬만한 일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때 국일관에는 일본에서 오는 손님도 많았다. 이중 고베에서 날아온 할아버지 손님이 자주 찾아오곤 했는데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와서는 ‘며느리를 삼고 싶다’고 했다. 화류계에 몸담고 있는 그녀를 며느리 삼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며칠 후 그녀는 할아버지의 며느리가 되기 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새로 시작한 인생. 그러나 그 인생도 평탄하지 못했다. 결혼 후 몇날 며칠이 흘러도 남편은 혼자서 잠을 청할 뿐 그녀 옆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몇 번을 불어봤지만 대답이 없었고 시간이 흐르자 그녀를 대하는 식구들의 태도 또한 변해갔다. 궁금함이 극에 달했을 때 남편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야구를 하다가 야구공에 맞았어. 그 후부터 온전하게 발기가 되지 않아. 속이고 싶진 않았지만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았어. 미안해.”그날 이후 그녀는 남편과 함께 그의 남성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남편과의 잠자리 문제만 빼고 모든 것은 순조로웠고 일상생활에서 행복한 감정도 느꼈다. 그러나 온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 하코네에서 시아버지에게 겁탈을 당했다. 그녀는 자신의 더러운 운명을 저주하며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이 마흔 살에 스트립댄서로 변신제주도에서 역학으로 유명세 떨치기도 국일관에서 다시 기생 생활을 시작했지만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는 후배의 제안으로 쇼걸 ‘스잔나’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춤이라면 두각을 나타낸 만큼 그녀의 이름은 전국에서 유명해졌다. 전국의 나이트크럽에서 출연 제의가 쏟아져 전국 공연을 다니다가 그녀는 다시 제주도에 정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았다. 바로 역학 공부를 시작한 것. 그러던 중 다시 한번 소개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의 의처증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다시 파탄을 맞았다.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 후 그녀는 역학 공부에 매진해 한동안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성업을 이루었다. 이미 인생에서 두 번씩이나 관음보살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녀의 영험함은 정평이 나있었다. 제주뿐 아니라 서울에서 유명한 기업가들도 찾아올 만큼 그녀는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역학으로 유명세를 타던 그녀의 인생도 한 남자로 인해 암흑기로 접어섰다.

“야쿠샤 오야붕이었어요. 필리핀 이멜다 여사의 집에서 파티가 있었는데 지인의 초대로 갔죠. 거기서 스즈키라는 일본 사람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야쿠샤인 줄 몰랐어요. 몇 번 만난 후에야 그가 야쿠샤 거물이라는 걸 알았죠.”그와의 만남은 악연이었던 듯하다. 평소 천식으로 고생한 그녀에게 스즈키는 약을 권했는데 그 약은 효과가 좋았다. 기침 때문에 괴로워하다가도 스즈키가 건넨 약만 먹으면 편안해졌다. 그 약이 마약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그녀는 중독이 된 후였다. 마약에 중독 된 후 그녀는 점을 칠 수 없게 됐다. 그녀의 머릿속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스즈키는 그녀를 너무도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촛농, 담뱃불 등으로 온몸을 태우고 지졌다. 그러면서 “요시키, 넌 내 거야. 절대 다른 놈에게 보내지 않을 거야”라며 그녀를 고통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래도 그녀는 스즈키가 가여웠고 그토록 고통스런 사랑이라도 채워넣어야 했던 그녀 자신이 불쌍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날도 스즈키는 그녀를 침대에 묶어놓고 가슴과 배에 촛농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모습을 자신의 부하인 스기하라에게 비디오로 촬영하도록 했다. 그녀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자 이런 장면을 수없이 보아온 스기하라가 한마디 던졌다.

“오야붕, 이건 아닙니다. 너무 심합니다”스기하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즈키는 칼을 뽑아들고 스기하라를 찔렀다. 그러나 스기하라 역시 칼을 뽑아 스즈키를 찔렀기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칼에 찔려 숨을 거두었다. 두 사람의 죽음 후 그녀 역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억센 운명은 그녀에게 죽음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현재 그녀는 수락산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혼자 지내고 있다. 인터뷰 중 동생 순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동생이 사업 실패로 부도를 맞았을 때 도와주지 못한 것을 천추의 한으로 담고 있었다.

“다시 역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젠 머리도 맑아졌고 몸도 마음도 많이 좋아져서 다시 공부를 하면 점을 칠 수 있을 거 같아요. 오전내내 기도와 명상, 선을 하고 오후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탁구를 치러갑니다. 탁구를 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옥정이라는 이름도 탁구 때문에 만들어진 거예요. 어찌나 열심히 탁구를 치는지 다들 ‘독종’이라는 하는 것을 옥정으로 바꾼거죠.”탁구 생활 전도사로 밝은 미래를 살아가는 문옥정씨의 마지막 소원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평범하지 않은 출생으로 인해 힘든 인생을 살아온 그녀의 미래가 따뜻한 봄 햇살과 같기를 희망해 본다.

글 / 경영오 기자  사진 / 최병준 















진짜배기 탁구메니아 문옥정 동호인.| 탁구인 소식
까꿍|조회 30|추천 0|2009.02.26. 14:15
진짜배기 탁구마니아
문옥정 동호인
 
 
 
우리는 탁구를 매개로 인연을 맺고 있는 중이다. 모두가 한결같이 탁구를 좋아하고, 만나면 탁구에 대한 얘기만 나누며, 탁구공 하나에 일희일비한다. 탁구인의 DNA에는 탁구 유전자가 태생적으로 존재할 거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렇듯 탁구 얘기만 나오면 물 만난 고기처럼 활기에 넘치는 이들은 분명 탁구마니아이다. 생활의 중심이 탁구일 것 같은 그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마니아이다. 탁구를 업으로 하는 경우라면 마니아인 게 당연하다. 하지만 취미 정도로 즐기는데 주변에서 마니아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진짜배기이다.
 
주말마다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탁구 시합장에는 수많은 마니아들이 참가를 한다. 탁구가 생활체육으로서 자리매김한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에 참가 동호인의 숫자도 꾸준하게 늘어왔다. 각종 대회 입상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일정 부분은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느 대회건 상위 8강 정도에 이르면 늘 같은 얼굴이 남는다는 얘기이다. 그만큼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 소개할 주인공은 바로 그렇게 탁구 시합장에서 입상자로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았던 동호인이다. 탁구가 생활체육에 명함을 내밀고 존재감을 가지기 이전부터 시작해 아직까지도 탁구를 즐기고 있는 진짜배기 탁구마니아. 바로 문옥정 동호인이다. 전국탁구연합회 주관대회 복식, 단식 등 17번 우승, 지자체 주관대회 20여회 우승, 한국여성스포츠회장배 SBS탁구대회 복식우승 5회 등 수많은 대회를 통해 생활탁구 고수로서 이름을 굳힌 그는 탁구인들 사이에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기에 또 다른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듯하다. 몇 해 전 ‘이젠 말할 수 있다’라는 자서전을 통해 커밍아웃을 선언한 문옥정 동호인. 하리수, 홍석천 이후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등 성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경직에서 어느 정도 완화된 모습 속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마음고생을 과연 누가 알까? 그런 속에서 그에게 탁구는 어떤 의미였을까?
 
 
 





 
문승일, 문명희, 문숙희, 에레나, 스잔나……

그가 지금껏 살아온 과거 속 이름들. 문승일은 제주도 태생인 그에게 제일 먼저 붙여진 이름이다. 성(性)에 있어 우리 모두는 남자 혹은 여자라는 각각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그는 남녀의 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우선 눈에 띄는 건 남성이기 때문에 남자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출생의 비밀을 알았지만 부모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성(性) 정체성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다. 평소 그를 귀엽다며 살갑게 대해주던 어떤 아저씨에 의해 일본으로 납치돼 그곳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성 제거 수술을 받게 된 것.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가 중학교 1학년. 파란만장한 삶의 시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남자를 피해 다시 제주도로 돌아온 그는 학교생활로 돌아갔지만 예전 같을 수는 없었다. 체육시간이면 가슴을 숨기기 위해 붕대로 칭칭 동여매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늘 자신을 위해 변호를 해주던 친구가 그와의 동성애 소문으로 괴로워하다 자살해 버리는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린다. 주변의 지탄 대상이 된 그는 모두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결국 가출을 감행한다. 그때 부산을 거쳐 도착한 논산에서 생전 처음 본 여성국극은 그가 나중에 무용과 국악공부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어 서울로 올라오면서 국립국악원 산하 국악고등학교에서 전문교육을 받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춤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제주도로 돌아온 뒤 무용학원을 운영했는데 그 때의 제자가 제주 출신의 ‘국민배우’ 고두심과 ‘오수미’라는 예명의 영화배우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신검통지서와 자살기도 그리고 화류계 진출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군대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고민하던 그는 신검 전날, 군의관들이 머무는 여관으로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제주도 전체에 그가 여자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는 군의관 앞에서 옷을 벗어 보인 수치심에 자살을 시도하지만 영험한 기운을 느껴 중단하고 만다. 그리고 이후 ‘문숙희’라는 이름으로 이태원으로 진출해 돈을 물 쓰듯 하는 생활에 빠지게 된다. 한때 그런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계기도 있었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중년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 것. 하지만 그런 행복도 잠시로 끝났다. 그 남자는 도박중독자였고, 도박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결국 결혼 생활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상심한 그는 당대 최고 요정인 국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만 찾는다는 그곳에서 우리 사회의 검은 그림자를 심심찮게 체험한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기업을 한다는 단골손님의 며느리가 되기도 했지만 항상 결말은 안 좋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4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춤으로 유명한 쇼걸 ‘스잔나’가 되어 있었다. 그 즈음 전국의 출연제의로 곳곳을 다니며 공연을 하다 다시 제주도에 발을 붙였다. 그리고 역학공부를 시작해 철학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신통력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등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고. 그러나 한 일본인 조직세력의 거물과의 관계가 정신적으로 그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거기서 헤어 나오기까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탁구는 내 삶의 목표의식
부귀영화, 희로애락, 인생의 쓴맛, 단맛을 뼈저리게 경험했을 것 같은 그에게 고비 때 마다 가장 힘이 되어준 건 바로 ‘탁구’였다고 고백한다. 만약 탁구를 하지 않았다면 사는 자체가 힘들어 운명이 잘못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탁구에 대한 애정이 깊고도 다른 의미라는 것. 동생이 1968년 싱가포르 아시아대회 때 탁구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됐을 때 자신도 탁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이후 70년대 초반부터 라켓을 잡고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아가며 운동을 했었다는 것. 그런 탓에 그는 일본에서도 사회체육 탁구선수로 등록이 되어있고, 입상경력도 꽤 된다고 한다. 

지난해에도 일본 오사카 대회에 참가해 단체전 우승을 했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건 시선을 많이 받는 편이어서일까? 가끔은 그와 관계된 일이 가십거리가 될 경우도 종종 있다.

“젊을 땐 누구나 그런 기질 있잖아요? 나도 예전엔 자기주장이 많았던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해 두 해 시간이 자꾸 지나가면서 왜 그랬나 싶어요. 그저 탁구 공 하나로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면 족한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구설에 오르내림을 별로 개의치 않고 언제든 할 말은 하는 스타일로 잘 알려진 그의 이미지만 생각한다면 그의 컨셉은 ‘자유’일 것 같다. 무엇에도 속박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것 같은 그가 얼마 전 탁구장을 오픈했다. 

서울 중랑구 면목8동에 위치한 ‘해바라기탁구장’이다.
 
“내 원래 역마살이 껴서 왔다 갔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주변에서 그럽디다. 이제 좀 정착해서 차분하게 지내라고…… 그래, 주변 지인들 도움으로 함께 이 탁구장을 열게 됐어요. 앞으로 좋은 어머니 선수 배출할 수 있도록 좋은 훈련장으로서 역할을 해야지요. 또, 실력으로 1, 2위가 아니라 인격이나 인품을 나누는 도장 역할도 필요하고요, 탁구인이 아닌 사회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탁구인 만들기에도 열심히 해야 하겠고요(웃음).”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명상을 통해 하루를 시작한다. 현재 89세 김교환 옹이 최고령 회원으로 열심히 운동중이라 그는 실버 탁구인들에게도 뭔가 특별한 혜택을 마련 중에 있다고 한다. 

우선은 매달 마지막 화요일에 회원 전원이 참여하는 대회를 여는 게 가장 우선적으로 마련된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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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희(옥정) 여사님의 탁구..인생관 그리고 삶의 철학조회 수 2129 추천 수 0 2013.03.19 16:24:17

문숙희(옥정) 여사님의 탁구..인생관 그리고 삶의 철학
 
금년 봄인가 봅니다
서울 시 어느 구인지는 기억이 희미 합니다 만
아무튼 단체전 참가를 위해 대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시합장 모퉁이에서 단체전 출전 팀들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 문숙희 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아! 예 주인백이라 합니다
주 선생님 말씀은 익히 들었습니다
잘 좀 지도해 주세요
제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요…..
 
자그마한 키에
갸냘픈 몸매
깔끔한 옷차림
뭔지는 모르지만 예사 분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스쳐간다
더욱더 놀라운 건 눈빛이었다
잔잔한 미소 속에 강한 기를 느끼게 하는 그런 눈빛이다
사람은 만남에서 눈빛 하나로 그 사람을 대충 판단 한다 하는데
정말 예사롭지가 않다
 
그날 준결승에서 남자분께 지시더니 얼마나 미안해 하시던지
그 후론 시합장에서 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복식은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전에서는 지금까지 전승 이셨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모든 게임이 길어야 4 세트에서 끝난다
언젠가는 5세트 경기를 함 보고 싶다
 
시합 후 뒤 풀이를 마치고 헤어졌지만
나는 그분이 그렇게 대단 하신 분 인지 전혀 몰랐다
 
27년간 탁구를 쉬는 동안 내가 아는 것은
유명 선수 이름 몇 몇
같이 탁구 하던 선배 ..동료 그리고 후배 몇 몇 분
그리고 탁구를 지도 해준 은사님
 
그런 나로서는 그 분의 존재와 위치가 그리 높은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 하면 아찔해진다
하지만 그 분은 그런 사실을 아직 모르신다
다행 이다…..
 
SBS 배 대회
복식 7번 도전에 5번 우승
그것도 자신보다 조금  부족한 선수와 출전 5년 우승
한 중 일 친선 대회
각종 대회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다……
 
그 분의 위치는 나보다 엄청 높다
상상이 안 되는 위치다
그런데 그분은 항상 나보다 밑에 계신다
어쩔 땐 민망스러울 정도다
 
나 한테 만이 아니다
모든 만난 분에게 항상 그리 하신다
항상 자신을 낮추신다
참 존경스럽다…..
 
탁구!!!
그 분 만큼 사랑 하는 분 있을까.
항상 그러신다
살인을 하던 뭐를 하던 나는 탁구를 한다면
탁구를 하는 사람은 미워 하지 않는다 하신다
그 만큼 탁구와 탁구인을 좋아 하신다
 
그분에게는
몇 가지 원칙이 있으신 것 같다
- 들은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나눈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이다
 
- 그 친구는 밉더라 하시지만 진정 미워하지 않는다
 
- 먼저 배푸신다
 정도 많고 눈물이 많으신 분이다
 하지만 도리에 어긋나면 그냥 안 계신다
 
- 시합에 임 하면 져서는 안 된다 하신다
최선을 다하라 하신다
그리고 지면 탓 하지 말라 하신다
 
- 모든 것을 하늘의 뜻이라 하신다
순리대로 살라 하신다
 
 
그 분이 시합에 임 하면 많은 분들이 지켜 본다
만남을 가진 이후로 나도 거의 관전 해 보았다
하지만 많은 분 들이 그분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분이 치는 모습
칼을 들고 생사를 겨루는 듯한 자세와
달관한 여유로움 보다는
이어지는 기술에 찬사를 보내고 박수를 친다
 
하지만 아직 그분의 진정한 기술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자세히 보았으면 한다
그분은
1회전 과 2회전 3회전 ..
각 회전마다 치는 형태가 달라진다
이점을 대부분 모르는 것 같다
머리와 마음으로 탁구를 하신다
 
1 회전에 했던 내용을 참고 삼아
2 회전 대처 요령을 스스로 바꾸신다
2 회전  이어서 3회전
전부 달라진다
 
그 분에게 벤치에 코치도 감독도 없다
관전 하는 모든 분이 감독이고 코치다
 
시합 때 그분의 눈을 자세히 보았다면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그 분은 시합 때
상대의 라켓 잡은 팔 모양과
어깨 각도를 예리하게 바라 본다
 
그분에게는 탁구대 아래에 있는 상대의 발 움직임까지 보이나 보다
서있는 자세와 라켓을 든 모습에 따라 서브가 전부 달라진다
그리고 바로 자세를 바꾸어 기술을 푼다
하지만 관전 하는 분 이것을 못 보는 것 같다
마음과 머리로 탁구를 하신다
 
그래서 보지 못한 5세트가 보고 싶다
하지만 보여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에찌나 넷트로 인한 득점시 상대에 대한 배려
회전이 바뀌고 테이블을 바꾼 후의 모습
시합 전 후를 잘 보세요
 
그 분에게는 본인이 철학을 하시듯 탁구에도 철학이 있나 봅니다
참 존경스럽다 아니 할 수 없네요
 
 
지금도 가끔 저를 찾으신다
그러면 달려간다
그리고 제가 와달라면 그분도 꼭 오신다
한참 동생인 저에게 꼭 주 선생님이라 하신다
이젠 안 그랬으면 하는데 듣지 않으신다
 
그런 그분이
사무실을 차리셨다 한다
도봉산장 가는 길에
147 번 1127 번 종점 맞은편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마련 하셨다 한다
호가 송천 (松泉) 인 문숙희 (옥정) 여사님 사무실이다
부르시기 전에 먼저 가 뵈야 하는데….
 
며칠 전 만남에서 주위 분 들게
우리 12월에 모든 것 다 잊고
2007년 좋은 한해 맞자꾸나
하신다
 
2007년 좋은 해 되시구요
년말 전에 함 뵈요………….주 인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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